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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Jan 30. 2024

후쿠오카 여행기 1

미미와 미미

  H, E과 함께하는 여행은 걱정이 없다. 그녀들은 YES만을 외치는 긍정걸이기 때문이다. 내가 뭘 한다고 해도 오케이다. 그 안에는 방구마저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 나도 자연스럽게 뭐든 괜찮아진다. 아무렴 어떤 여행은 변수가 많다. 그래서 유쾌하다.


  저녁 비행기로 출발을 해서 숙소에 도착하니 밤 10시였다. 서둘러 짐을 풀어 캐리어 속 향수를 찾았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만든 향수인데, 일본에서 뿌리려고 향도 안 맡아봤던 것이다. 향이 좋았다. 좋다 못해 일본과 꼭 맞는 향처럼 느껴졌다. 프랑스를 다녀온 후 혼자 ‘파리향’이라고 부르는 향이 나를 스쳐 지나갈 때마다 그 향을 진하게 맡았던 거리가 떠오른다. 사람이 많은 서울에 가면 그 향을 심심찮게 맡을 수 있어서 속으로 므흣하게 웃곤 했다. 이번엔 후쿠오카향이라고 해야 하나, 방을 나서기도 전에 들떴다. 외출을 위한 짐을 꾸렸다. 지갑, 여권, 립스틱과 디카를 챙겼다. 이번 여행에서는 사진을 많이 찍고 싶어서 며칠 전 세운상가에 가서 산 카메라이다.(몇 시간 뒤 이 카메라는 고장 난다. 하지만 H가 너무 슬플 수 있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묻어두기로 한다.) 밤이 깊어지고 있어 바람이 차가웠지만 그 마저도 일본 스럽다고 느껴졌다. (왜지?) 강가를 따라 걷다 자판기를 발견했다. 돈도 넣지 않은 자판기에 음료수를 뽑는 척하며 사진을 찍었다. 아무렴 자판기샷 하나쯤 남겨줘야지. 플래시를 터뜨리는 것도 필수다. 곳곳을 살피며 우리가 향한 곳은 이치란 라멘이다. 그때는 이미 11가 다 되었는데도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두건을 쓴 직원이 30-40분을 기다려야 하는데 괜찮냐고 물어왔다. 상의할 가치도 못 느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친절한 직원의 눈웃음과 함께 길게 늘어진 대열에 합류했다. 그 줄의 모두가 한국인이어서 웃겼다. 근성인가, 부지런함인가. (나중에 깨닫게 된 사실이지만 줄 서서 기다리는 곳은 한국의 식당과 다름없다.) 생각보다 줄이 금방 빠져서 20분 만에 들어갔다. 각자의 옵션으로 라멘 주문하고 맥주는 한 잔 시켜서 나눠마시기로 했다. (이것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실수가 된다.) 처음 E가 이치란 라멘에 가자고 했을 때에는 조금 반감이 있었다. 너무 유명한 곳은 별로 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안 가본 사람이 있다면 30분 줄을 서더라도 추천한다. 라멘은 두 말할 것 없는 ‘맛있는 맛’이다. 호불호조차 없을 맛있는 맛이다. 문제는 생맥주다. 태어나서 처음 먹어본 맛이다. 그도 그럴 것이 태어나서 처음 먹어본 ‘맛있는’ 맥주이다. 지금까지 먹은 맥주는 다 가짜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도 쓰지 않다. 오히려 고소한 맛이다. 일본인들은 매일 이런 맥주를 마시는 건가? 맥주를 사랑하는 사람은 아닌데도 억울할 지경이다. 세상에 맛있는 것은 참 많다는 사실을 또 새삼 생각하게 된다. 다른 곳에서도 생맥주를 마셨지만 이치란이 이찌방이다. 만족스러운 식사 후 돈키호테와 로손에 들러 간단히 먹을 간식을 샀다. 숙소에서 차례로 씻고 하나씩 품평회를 시작했다. 품평의 대상은 과자와 초콜릿, 푸딩, 슈크림 빵, 음료이다. 먹을수록 점점 더 당황스러웠다. 명성에 비해 대단한 맛은 아니었다. 나는 계속해서 ‘치아라’(치워라)를 외쳤고, 우리의 점수는 5점 만점에서 3점을 넘기질 못했다. 과자는 한국과자가 맛있다. 미미(美味)와 미미한 맛의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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