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봄에 소금강 마을 현장체험학습을 다녀오면서, 유정란을 한판 선물로 받았다. 아이들은 유정란을 부화시키면 병아리가 태어나는지 궁금해했다.
“선생님! 계란 부화시켜 보면 안 돼요?”
“병아리 나오는 거 보고 싶어요.”
아이들의 성화에 큰맘 먹고 부화기를 주문했다. 함께 달걀 세 알을 정성껏 골랐다. 고른 달걀을 부화기에 넣고 스물한 밤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병아리의 이름도 지어줬다. 맥반석 계란처럼 어두운 달걀은 ‘구운 계란’, 둘째는 우리 반 ‘보석반’의 이름을 따서 ‘보석이’, 막내는 밥 잘 먹으라고 ‘냠냠이’로 지었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는 모습을 지켜보며 우리는 생명의 존귀함을 배웠다. 알에서 나온 병아리들은 잘 먹고 잘 싸며 무럭무럭 자랐다. 우리 반 근처에만 가도 닭똥 냄새가 폴폴 피어났다. 아이들은 매일 병아리를 먹이고 산책시켰다.
그렇게 두 달을 정성껏 키운 뒤, 마을의 이웃 할머니께 병아리들을 입양 보냈다. 할머니께서는 언제든 병아리를 보러 오라고 하셨다. 병아리가 그리울 때면 우리는 할머니 댁 닭장으로 갔다. 가을이 되니 병아리들은 닭이 됐다. 그래도 아이들은 여전히 ‘병아리 보러 가자.’고 했다. 다 큰 닭을 보며 ‘우리 병아리들 너무 귀엽다.’ 며 귀여워했다.
그게 지난해의 일이었다. 며칠 전 한 아이가 우연히 할머니와 대화를 나눴나 보다. 아이는 병아리들의 안부를 물었다.
“할머니, 병아리들 잘 있어요?”
“이제 한 마리만 남았어.”
아이는 교실에 돌아와 이 소식을 전했다. 아이들은 충격에 빠졌다.
“선생님, 병아리 어디로 갔어요?”
“선생님, 보석이랑 냠냠이 삼계탕 나라 간 거 아니에요?”
“후라이드 치킨 된 거 아니에요?”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아마 다른 집으로 입양 갔을 거라고 둘러댔다. 차마 복날에 삼계탕 나라에 간 것 같다고는 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내 말을 반신반의하는 눈치였다.
하필 그날 급식으로 닭곰탕이 나왔다. 먹기 좋게 잘게 찢겨 둥둥 떠다니는 닭고기를 보며 아이들은 절규했다. 선생님 이거 보석이랑 냠냠이 아니죠? 나는 할 말이 없어서 조용히 하고 밥이나 먹자고 했다. 저희들끼리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거 보석이랑 냠냠이 냄새 아니야?”
한 아이가 닭곰탕 냄새를 킁킁 맡더니 말했다.
“그러네, 닭곰탕에서 보석이랑 냠냠이 냄새가 나네.”
병아리들에게서 맡았던 냄새를 기억하고 있는 걸까?
“난 안 먹을래. 난 먹을 수가 없어”
아이들은 그렇게 한참 닭곰탕을 쳐다만 봤다. 그렇지만 고소한 닭곰탕의 냄새를 참기 어려운 것이었다.
“근데 너무 맛있어 보여.”
“아, 어쩔 수 없다. 보석아 미안해.”
“선생님, 닭곰탕이 너무 맛있어요.”
아이들의 유난스러움이 귀엽기도 했고, 마음 아파하는 모습이 불쌍하기도 했다. 이 닭곰탕은 우리 병아리들이 아닐 테니 너무 슬퍼하지 말자고, 하지만 모든 음식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는 뻔한 멘트로 닭곰탕 논란을 마무리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