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왜 결혼을 할까?에 대한 고찰 Ⅰ

관계가 필요한 이유

by 리이니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관계를 맺는 계약 또는 의례, '결혼'은 아주 오래 전부터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인간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선택 중 하나라고 여겨져 왔다. 하지만 지금은 결혼이 꼭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어린 시절 동화책 속 왕자님과 공주님은 항상 결혼을 하며 해피앤딩의 결말을 보여주었고, 어른이 되고 나면 짝을 만나 결혼해서 평생 행복하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철 없는 환상이었을 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20~30년 전만해도 그 때는 그런 시절이었으나, 현재 젊은이들의 사고 방식이 달라진 것일 수도 있겠다.


사실 나도 비혼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 아니었다. 오히려 형식적인 것을 싫어했고, 부모님도 강요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왜? 라는 물음이 꼭 한번쯤 필요했던 것 같다. 어쩌면 스스로 납득이 되어야만 비로소 결혼 상대를 찾는 노력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현대사회에서도 결혼은 필요한 걸까? 결혼을 꼭 적령기에 해야 할까? 아니, 꼭 해야하는 걸까?


결혼을 했다고 해서 행복한 가정이 된다는 보장이 없을 뿐 아니라, 가정을 이루는 것이 희망적인 면도 있지만, 만약 그게 실패할 경우 본인 뿐 아니라 주변 사람까지도 큰 고통을 겪을 수 있게 된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미래를 약속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지만, 서로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약속하는 그 순간부터는 서로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모든 인간관계와 상황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같은 경제 공동체'

한 배를 탔으니 이도저도 못하고 꼼짝없이 서로가 다치지 않게 도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 배를 탔다는 것은 단점이 되기도 한다.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 나면,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이전에 항상 상대방을 고려해야 하는데 그것은 본인의 자아실현을 방해하게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여러가지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긴 역사 속에서 대부분의 문명과 인간사회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선택해왔다. 분명 단점들을 뛰어넘는 장점들이 더 많기 때문일 것이다.


남녀가 굳이 결혼을 하는 전통적인 이유는 아마도 인간의, 아니, 모든 생명체의 '번식'본능 때문이라는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현대사회는 노동력이 중요한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아이를 낳는 것이 재산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막대한 교육비와 생활비의 지출이 더 늘어나는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출산이 필수가 아닌 선택사항으로 바뀌게 되었으니, 어떤 이에게는 결혼과 배우자가 필요할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전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하지만, 꼭 2세를 위해서 결혼이 필요한 걸까 ?

서로 상속권을 갖게 되며, 둘 만의 자녀를 합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

오늘 친구였던 이도 내일의 적이 되고 하는 아무도 믿기 어려운 이 세상에서 좋든 싫든 앞으로 평생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하는 것. 그것이 결혼의 현실적인 장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매슬로의 '욕구 피라미드'만 보아도 이미 답이 나오는 것 같다. 다섯가지 중 절반 이상의 욕구가 안정 욕구, 관계 욕구, 인정 욕구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보면,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로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고픈 욕구를 가진다는 결론이 나온다.

부모님은 언젠가 먼저 떠나시고, 형제 또한 본인의 가정이 생기면 떠나갈 것이고, 책임져주거나 의지할 수 없다. 당연히 친구라는 관계는 두말할 것도 없다. 자신의 안정 욕구, 관계 욕구, 인정 욕구들을 해소하려면 어떤 상황이든 나를 배신하지 않을 존재, 즉 가족이 필요하다.

어느 날 남녀가 사랑에 빠져서 "우리 가족할래?"라고 약속을 했더라도, 언젠가는 한 명이 마음이 변하여 떠나가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다면 안정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예 사회적으로 계약을 체결하도록 한 것이 아닐까싶다.


가족 구성원 없이 홀로 늙어가면 결국 '독거노인'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독거노인은 외로움과 불안감, 건강상 문제 또는 경제적인 문제 등으로 삶의 질이 저하되는 경우가 많다. 관계를 이루지 못해 소외되고, 시야가 좁아지고, 도움을 줄 수도, 받을 수도 없어 보람을 느낄 기회가 적다. 더불어 사는 삶이 아니라 본인의 환경과 사고방식에 갇혀 지내게 될 것이며, 사회적인 고립과 멸시를 피하기 어렵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는 무인도에 떠내려온 주인공이 같이 떠내려온 축구공에 ‘윌슨’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끊임없이 말을 거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윌슨이 바다에 떠내려가자, 의지하던 전부를 잃은 것처럼 모든 희망을 버리고 체념한다. 그만큼 인간에게 있어 대화와 소통은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옛날에는 가문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혼 상대자가 정해지기도 했고, 부모님의 인간관계에 따라 대신 결정이 되기도 했기 때문에 노총각, 노처녀가 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지만, 점차 시간이 갈수록 모든 선택과 책임은 우리 스스로가 짊어지게 되었다.

결혼을 누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본인의 배우자를 고르는 기준을 스스로 잘 모르겠다는 사람도 많고, 결정 또한 많이 어려워졌다. 심지어 최근에는 불안정한 미래와 높은 집값, 사회적인 조건 등 결혼을 하기 위해 결심해야 할 요소들이 너무나 많아졌기 때문에 더더욱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짝을 만나 결혼까지 무사히 끝낸 이들이 존경스러웠다. 그렇게나 어려운 일을 해냈으니 축하받고, 축하해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직접 해보니 더욱 뼈저리게 느꼈다. 본인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어려운데, 그 상대방도 본인을 좋아해줘야 하고, 더 나아가 배우자감으로까지 생각되어야 하고, 상대방 쪽에서도 똑같이 생각해주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특히, 가족 간에 미리 인사까지 하는 문화이니 그것 또한 별탈없이 끝내야만 하고, 결혼식만을 위한 수많은 결정들과 거주할 동네, 거주할 집의 크기와 시세, 가구, 추후 가계 운영 계획, 2세 여부, 반려동물 찬반 등의 크고 작은 문제에 대한 해결, 그리고 타협과 양보가 필요하다. 너와 나의 타협도 어려운데, 만일 양가 부모님까지 의견을 더해 어지럽게 된다면 정말 '이렇게까지 결혼을 해야하나?' 생각이 들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면서도 오늘날 우리가 결혼을 하는 이유는 서로에게 긍정적인 용기와 힘을 주는 존재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닐까. 부부라는 그 소중한 관계를 이루기 위해서 모든 갈등을 이겨내기도 하고, 잘못된 판단으로 결혼한 이들은 이혼 후에도 더 나은 짝을 찾기 위한 재도전을 하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어쩌면 이런 문제해결능력과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결혼 준비과정 속에 수많은 미션들을 이겨낸 커플만이 한층 성장한 모습으로 부부가 될 수 있는 게 아닐까싶다.


어찌됐든 나도 그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해냈고, 이제는 한 배를 타야만 하는 동반자를 만났다.

물론 그 배는 나의 배에 상대를 태운 것도 아니고, 상대의 배에 내가 탄 것도 아니고, 오직 둘만의 새로운 배를 만들어 함께 올라탄 것이다.

우리의 배는 아직은 뗏목 수준이겠지만, 수많은 갈등을 겪으면서도 어려운 일에는 함께 머리를 맞대어 해결해 나가며, 힘을 합쳐 성장해나간다면 점차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단단하고 커다란 크루즈선이 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그렇게 희망차고도 순진한 마음으로 인생의 2라운드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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