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제럴드 作 <위대한 개츠비>를, 나 '닉 캐러웨이'의 시선을 빌려
나는 아직도 그 여름의 열병을 앓는다. 웨스트에그의 밤을 밝혔던 그 요란한 파티와 샴페인, 그리고 녹색 불빛에 미친 한 남자의 허망한 꿈. 사람들은 그를 ‘위대한 개츠비’라 불렀지만, 그 시절을 겪고 동부에서 도망쳐 온 지금, 나는 그의 운명 설계도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들여다보게 되었다.
이것은 낭만적인 비극이 아니다. 실은 서로의 욕망을 필사적으로 모방하다 장렬하게 파산해버린 인물들의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그리고 그 모든 비극의 중심에는, 한 남자의 운명에 각인된 눈부신 불꽃과 그것을 꺼뜨리는 재의 숙명적 코드가 있었다.
제이 개츠비. 그의 사회적 가면(天干)은 이글거리는 태양, 병화(丙火) 그 자체였다. 그는 여름밤을 밝히는 거대한 불꽃이었고, 그의 파티는 그 빛에 이끌린 불나방들을 위한 제전이었다.
그의 핵심 심리는 식신(食神), 즉 자신의 매력과 재능을 아낌없이 베풀어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힘이었다. 그는 최고의 술과 음악, 가장 화려한 쇼를 제공했다. 이 모든 것은 그의 내면이 텅 비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텅 빈 내면을 오직 하나의 목표로 채우기 위한 처절한 ‘자기표현’이었다.
그의 병화(丙火)는 스스로 빛나는 태양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데이지라는 달을 비추기 위해, 그리고 그녀의 세계를 모방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타오르는 인공의 불꽃이었다.
데이지 뷰캐넌. 그녀야말로 개츠비가 평생을 바쳐 모방하고자 했던 욕망의 원천이자, 그의 파멸을 이끈 기신(忌神)이었다. 그녀의 운명 코드는 화려하게 빛나는 보석, 신금(辛金)이다. 그녀는 아름답고, 섬세하며, 모두의 선망을 받지만, 스스로 열을 내지 못하는 차가운 금속이다.
그녀의 생존 방식은 자신을 지켜줄 강력한 존재, 즉 그녀의 신금(辛金)을 더욱 빛나게 해 줄 사회적 틀(관성(官星), 즉 남편 톰 뷰캐넌)에 기생하는 것이었다. 개츠비의 열렬한 병화(丙火)는 이 차가운 보석을 잠시 뜨겁게 달굴 수는 있었지만, 결코 그녀를 녹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병신합(丙辛合), 태양과 보석의 만남은 세상을 잠시 현혹시킬 수는 있어도, 결국에는 각자의 본성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톰 뷰캐넌. 그는 이 모든 욕망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군림하는 존재였다. 그의 운명 코드는 거대한 대지, 무토(戊土)다. 그는 굳건하고, 변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자신의 영역 안에 두려는 소유욕(재성(財星))으로 가득 차 있다. 이 관계는 명리학적으로 처절한 희극이다.
개츠비의 병화(丙火)는 톰의 무토(戊土)를 생(生)해주고, 톰의 무토(戊土)는 데이지의 신금(辛金)을 생(生)한다. 즉, 화생토(火生土), 토생금(土生金)의 구도다.
개츠비가 평생을 바쳐 타오를수록, 그 에너지는 역설적으로 톰의 대지를 더욱 비옥하게 만들고, 그 비옥한 대지는 데이지라는 보석을 더욱 단단하게 지탱해 줄 뿐이었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욕망했지만, 실은 톰의 세계, 즉 ‘가진 자’의 여유와 권력을 모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톰의 적수가 아니라, 톰의 세계를 더욱 공고히 해주는 가장 충실한 에너지 공급원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이 모든 욕망의 서커스 아래에는 ‘재의 계곡’이 있었다. 이곳은 화려한 불꽃(병화(丙火))이 타버린 뒤 남은 잔해, 즉 기토(己土)의 땅이다. 윌슨 부부는 이 재 속에서 희망 없이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머틀 윌슨은 톰 뷰캐넌의 화려한 세계를 필사적으로 모방하려다 개츠비의 차에 치여 죽는다. 그녀의 죽음은 이 모든 모방 욕망의 사슬이 얼마나 허망하고 파괴적인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결국 윌슨은 개츠비를 톰으로 오해하고 그를 살해한 뒤 자살한다.
가장 낮은 곳의 욕망이 가장 높은 곳의 욕망을 파괴하고, 그 결과 모두가 재로 돌아가는 완벽한 블랙코미디. 신이 떠난 자리에 남은 거대한 안경 광고판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공허한 관객일 뿐이었다.
결국 개츠비의 장례식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의 병화(丙火)는 사람들을 끌어모았지만, 그 불이 꺼지자 모두가 떠나갔다. 그의 운명에서 그를 진정으로 구원해 줄 용신(用神)은 데이지의 차가운 신금(辛金)이 아니라, 어쩌면 이 모든 허상을 꿰뚫어 보고 기록하는 나의 냉철한 계수(癸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방관자였을 뿐, 그의 운명에 개입할 힘도 의지도 없었다.
피츠제럴드는 개츠비라는 인물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그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거대한 녹색 불빛, 즉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이라 착각하고 그것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현대인의 초상을 그린 것이다.
개츠비는 위대한 사기꾼이었지만, 동시에 자신의 꿈에 가장 순수했던 신도였다. 그의 비극은 꿈을 좇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꿈이 자신의 것이 아닌, 이미 타락해버린 과거의 환영이었음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물결을 거슬러 가는 작은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려 애쓴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저 녹색 불빛이 과연 우리 자신의 것인지, 아니면 타인의 욕망이 만들어낸 거대한 신기루는 아닌지, 한 번쯤은 멈춰 서서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의 종착지는 결국 ‘재의 계곡’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