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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chid Oct 12. 2023

걷고 또 걸으면서 살아내는 나의 어머니

<카일라스 가는 길>

  ‘60대 이상이 4명 중 1명’. 어느 날 눈에 들어온 신문의 기사이다. 고령화 사회라는 막연한 개념이 숫자 비율로 보니 정말 실감이 났다. 그 한 명중에 하나인 나도 올해로 60대 중반을 넘어선다. 누구나 그렇듯이 활기차게 오고 가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나에게도 젊은 시절이 있었나 싶게 아득하기도 하다가 또 한편 바로 엊그제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나이듦이 삶의 내리막길이 아니라 오히려 남과의 비교나 성취의 압박감으로부터 벗어나 자기다움을 찾아가는 세월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90분에 걸친 다큐 <카일라스 가는 길>은 불교에서는 수미산과 같은 성지라 일컬어지는 카일라스를 오르기 위해 17000km에 달하는 험난한 오지 여행을 이겨낸 85세 어머니(이춘숙)의 여정을 아들인 감독(정형민)이 찍고 편집한 것이었다. 장르로 보자면 이 영화는 장소의 이동을 따라가며 이야기가 진행되고 이 여정을 통해 주인공이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로드 무비의 한 전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경상도 봉화를 출발해 러시아의 혹독한 겨울, 바이칼 호수, 고비 사막, 파미르 고원, 알타이산맥, 거친 환경의 몽고를 지나고 고산인 히말라야 지대를 거쳐 해발 오천 미터에 달하는 티베트의 설산 카일라스까지의 혹독한 여정을 할머니는 이겨냈다. 85살의 나이가 무색한 근력과 건강도 놀라웠지만 젊은이들도 이겨내기 힘든 거친 자연과 고산증, 추위나 비바람이 수시로 바뀌는 극한의 오지를 할머니는 여정 내내 감동하고 행복해하기도 하고 때로 후회도 하고 체력 고갈로 끙끙 앓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할머니는 길거리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오지 마을 아이들과 사탕을 나눠 먹으면서 작은 봉화 마을 바깥에 있는 넓디넓은 세상과 만나는 것에 신이 나 있는 듯 웃음을 날린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더라도 마음이 담고 있는 진정성은 지구의 어느 곳에서도 통하는 마법의 언어인 것이다.

  이렇게 평범해 보이지만 할머니의 출신 배경은 특별하다. 당시 대학을 졸업하였다는 것, 보건소에서 일을 하고 서양식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치른 할머니의 과거는 전근대적이고 빈곤했던 50년대 한국의 상황으로 볼 때 아주 예외적인 경우일 것이다. 그러나 행운도 잠시, 37세에 돌연 남편을 떠나보내고 아이 둘을 끼워내야 했다.

  녹녹치 않았을 삶이었겠지만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했듯이 할머니는 수미산 목전에서도 눈과 빙판으로 인해 놓친 지팡이를 포기하지 않고 얼음 위를 엉금엉금 기어가서 기어이 다시 잡는다. 그러면서도 할머니는 자신의 삶이 별다른 고통 없이 행복했음을 감사하고 부처님께는 자신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달라고 기원한다. 결국 할머니는 설산이 보이는 장소에 도달했고 그곳에서 세상의 고통받는 이들이 조금이라도 배고프지 않기를 기도한다. 할머니의 기도는 사람뿐만 아니라 생명력을 가진 모든 자연까지를 아우른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피어있는 꽃 한 송이,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긴 세월의 풍상을 이겨내면서 몸의 껍질이 상처처럼 쩍쩍 갈라진 고목, 추운 사막에 서 있는 망부석 같은 바위를 보면서 그것들이 가진 생명에 말을 건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니 할머니의 언어가 그 생명들의 귀에 닿았으리라. 한국에도 범신론을 노래하는 노년의 휘트먼(Walt Whitman)이 있다. 

  마침내 부처님이 모셔진 영산(靈山)에 도달했지만 할머니는 다시 등에 무거운 배낭을 지고 지팡이를 세 번째 다리로 삼아 집을 향한다. 그러고 보면 카일라스는 끝이 아니라 할머니가 걷던 모든 걸음의 순간들이었다. 희노애락이 켜켜이 쌓여 흘러온 할머니의 세월을 닮은 그 길을 다시 걸었으니 인생의 마무리에 들어선 노년에 그보다 더한 축복은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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