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ner courage Oct 07. 2023

캣맘과 지하주차장

오늘 꼭 제출해야 할 서류를 깜빡하고 집에 두고 와서 점심시간에 가지러 갔다. 우리 아파트는 지은지 30년이 넘어 많이 낡았는데 지하주차장은 특히 심하다. 차들이 많이 빠져 한산한 주차장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주차장 입구로 진입해 코너를 돌자 흰색SUV차량이 트렁크가 열린채 서있었는데 비스듬하게 길을 막고 있어 지나갈 수가 없었다.


차에서 내려 다가갔더니 사방에서 "야옹야옹" 소리가 들려왔고 어림 잡아 10마리 정도 되는 고양이가 사료를 먹고 있었다. 사료 밑에는 휴지가 한 장씩 깔려 있었는데 고양이들 사이로 남은 사료와 휴지들이 굴러 다녔다. 트렁크에 상체를 숙이고 있던 사람이 인기척에 뒤돌아 나를 보고는 급하게 트렁크 문을 닫고 운전석으로 달려가 쌩하니 차를 몰고 가버렸다. 달려간 차 뒤로 휴지가 어지럽게 날아다녔다. 


동네 주민도 아닌 사람이 썬글라스와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사람이 없는 한적한 시간을 틈타 지하주차장에서 고양이 밥을 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른 아침 지하주차장에 와보면 동물 배설물과 바퀴벌레, 휴지조각들이 곳곳에 널려있어 눈쌀을 찌푸리곤 했는데 오늘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날씨가 추워지면 고양이들은 따뜻한 곳을 찾아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온다. 따뜻한 차 위에서 골골거리며 늘어져 있는 냥이들은 정말이지 사랑스럽다. 하지만 아찔한 사고도 자주 일어나는데 고양이가 차체 안으로 들어가서 다치기도 하고 운행 중인 차량에 부딪히는 경우도 많다. 지난 겨울 극단적인 사건도 일어났는데 바퀴 위쪽에 고양이가 있는 것을 모르고 출발해버려 냥이도 죽고 그 잔해도 끔찍했다고 한다. 이 사건을 두고 주민들은 의견이 나뉘었는데 캣맘들은 "당연히 차에 타기전 고양이가 알 수 있도록 차를 두드려야 한다."고 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고양이를 지하주차장에서 내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고양이를 귀여워하지만 그렇다고 보살피고 있지도 않다. 가까운 주민 중 캣맘들은 작년 그 사건 이후 "차를 두드리지도 않고 출발한 사람이 부주의했다"며 엄청나게 비난했었다. 하지만 사실 고양이를 아끼는 사람보다 무관심하거나 혹은 불편한 사람이 더 많으므로 '차주들이 무조건 조심해야 한다'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지하주차장에서 먹이를 주어 고양이들을 지하에 머물도록 유도하는 것 또한 공감하기 어려운 행위이다. 오히려 고양이를 더 위험하게 하는 행동일 수 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다. 길고양이의 삶은 위험하고 고단하여 평균 수명이 고작 2년 밖에 안된다고 한다.

캣맘들도 다른 사람들을 배려해서 적절한 장소에서 사료를 주어야겠고, 일반 사람들도 가능하면 차를 한번 두드려 준 후 출발하는 것이 좋겠다.


모두의 입장에 살펴보아야 할 때이다.


작가의 이전글 엔도 슈사쿠의 '깊은 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