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자기연민이 마음을 잠식할 때
누군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너는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 괴물 같아.”
처음엔 너무 충격적이라, 아무 말도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 말은 과거, 내가 직접 들은 말이다.
그때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이 옳고,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 믿었다.
그런데 왜 ‘괴물’이라는 말이 돌아왔을까?
그 말은 동시에,
나 역시 누군가에게 가장 크게 외치고 싶었던 말이기도 하다.
남을 상처 입히면서, 마음을 짓밟으면서
이루어낸 성취가 정말 기쁜 일이냐고,
그렇게까지 해서 지켜야 할 정의였냐고.
시간이 흐르며, 그 말은 마음속에서 점점 더 크게 울렸다.
내가 반대편 자리에 서보지 않았다면,
아마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을 말이었다.
나는 ‘정의’라는 이름 아래,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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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좋은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 어떤 가치를 붙잡는다.
환경 보호, 동물 권리, 윤리적 소비, 정의로운 분노, 심지어 사랑조차도.
문제는, 그 가치가 지나치게 강해질 때 생긴다.
“나는 정의로운 일을 하고 있어.”
“내가 하는 일은 모두를 위한 거야.”
“이건 너도 받아들여야 해. 그게 옳으니까.”
이런 생각이 깊어질수록, 타인의 고통은 ‘어쩔 수 없는 희생’이 된다.
누군가를 몰아붙이며도, 내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다.
심지어는 사과조차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옳은 일을 했으니까.
오히려 따르지 않는 상대가 미안해해야 할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식으로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괴물이 된다.
옳음의 갑옷을 두른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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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형태의 괴물이 있다.
겉으로는 나약하고 상처 입은 사람처럼 보인다.
늘 힘들다 하고, 외롭다 하고, 이해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 말에 속절없이 마음이 흔들린다.
도와주고 싶고, 감싸주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고통을 무기처럼 쓴다.
“나는 지금 너무 힘들어.”
“내가 이렇게 괴로운데, 너는 왜 몰라줘?”
“내가 이런 말 하는 것도, 다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야.”
그러면서도 타인에게 상처를 줄 때,
그 상처에 대해 ‘미안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가해자의 자리에 서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나는 이렇게 아픈데,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잖아?”
그 말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들을 자기연민 속의 괴물이라 부른다.
누군가의 감정을 갉아먹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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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묻는다.
“그런 사람은 어떻게 알아봐?”
완벽한 답은 없지만,
나는 늘 하나의 단서를 떠올린다.
그 사람이 ‘미안하다’와 ‘고맙다’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말하는지.
이 두 감정은 타인을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내가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고,
그 영향이 상처이든, 위로이든,
그걸 알아차리는 사람만이 고개를 숙일 수 있다.
하지만 ‘정의에 사로잡힌 사람’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자신은 늘 옳고, 타인은 틀렸기 때문이다.
‘자기연민에 갇힌 사람’도 미안하지 않다.
세상이 자신에게 더 미안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다만, 정말 무서운 사람은
필요할 땐 미안하다고 말하고, 고맙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말은 오직 자신의 목적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속내는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
그 사람은 계산된 감정의 연기를 한다.
그 누구보다 부드럽고 따뜻하지만,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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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들을 가까이서 오래 지켜보다 보면,
문득 나도 또 다른 괴물이 되어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히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그러니 나는 생각하게 된다.
그들에게도 고통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그래야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큰 잘못을 했는지 깨달을 테니까.
나처럼.
그 순간, 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칼을 꺼내 들고 있다.
누군가의 정의에 맞서, 나만의 정의를 앞세워 되갚으려 든다.
그리고 그렇게, 또 하나의 정의로 무장한 괴물이 되어간다.
서로가 서로에게 괴물이 되어가는 이 반복.
그 안에서 도대체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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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내내, 나에게도 되묻는다.
내가 한 ‘미안하다’는 말, ‘고맙다’는 말.
과연 정말 상대를 위해 한 말이었을까?
내가 믿는 신념 때문에, 또다시 누군가를 몰아세운 적은 없었을까?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이고 싶지만,
좋은 사람이라는 믿음은 오히려 방심을 만든다.
그래서 때로는 _‘내가 잘못했을지도 모른다’_는 생각을 품고 살아야 한다.
그 작은 의심 하나가,
우리가 괴물이 되는 것을 막아주는 마지막 경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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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정의는 폭력이고,
책임지지 않는 연민은 감정의 착취다.
옳음과 아픔을 말하기 전에,
“혹시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건 아닐까?”
그 한마디를 먼저 떠올릴 수 있다면,
우리는 괴물이 되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