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한 마음은 단순한 바람과는 다르다.
그것은 가만히 있기 어려운 마음이다.
현실과 내가 원하는 바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커서,
그 간극이 마음을 찌르고 괴롭게 한다.
그것은 마침내 삶의 방향을 바꾸도록 만든다.
그런 점에서 ‘끌어당김의 법칙’은 단순한 주문이나 마법이 아니라,
강렬한 내적 긴장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심리적 원리에 가깝다.
‘정말 간절하다면, 결국 움직여 실천하기 마련이다.’
실상 이것은 말이 쉬운 것이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싫었다.
정말 간절한데도, 정말 절박한데도,
여건이 안 돼서, 상황이 안 돼서 못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기나 하냐고 따지고 싶었다.
실제로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렇게 간절하다면, 왜 아직도 행동하지 않아?”
그 말은 나를 깊게 찔렀다.
내 마음과 의지를 가볍게 취급당한 것 같았다.
내 상황을, 내 사정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편한 입장에서 내뱉은 가증스러운 말 같았다.
마음 속 끓어오른 화가 이렇게 외쳤다.
‘정말 간절하다고!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그런데 시간이 흘러, 그 말을 떠올리는 나는 다른 생각을 한다.
그 말이 왜 그토록 불편했고,
왜 자꾸 가슴 속에 남아 있었는지를
이제는 알겠다.
정말 간절하다면, 결국 움직이게 되어 있다.
그 말은 사실이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어떤 아이는 게임이 너무 하고 싶어서, 들키면 혼나고 용돈마저 깎일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피시방에 간다.
어떤 청년은 음악을 하고 싶어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가난하고 부족하게 살지언정 집은 나온다.
어떤 연인은 온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을 선택한다.
그들에게는 현실보다 바람이 더 컸다.
그래서 계산하지 않았다.
아니, 했더라도 선택하고 행동으로 옮겼다.
“하면 안돼”라는 말 앞에서도 “그래도 해야겠다”라고 말했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 마음을 증명했다.
간절한 마음이 있다면, 사람은 결국 무언가를 한다.
작고 사소한 것부터라도.
당장 모든 걸 바꿀 수는 없어도,
어디선가부터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떻게든 길을 찾아낸다.
왜냐하면 가만히 있는 것이 더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다.
나를 막는 것은 외부 상황이기도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만큼 간절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간절했으나, 나를 붙잡는 걱정과 불안을 뿌리칠만큼 간절하진 않았다.
단지 바랐고, 원하며, 꿈꾸었을 뿐이다.
제자리에서.
행동을 감수할 만큼의 크기는 아니었던, 그정도의 마음일 뿐이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처음엔 억울했다.
내 마음을 누가 대신 재단하는 듯 했다.
분하고, 서러웠다.
결국 솔직하지 못했던 것은 나였다.
그 말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정말 간절했다면, 나는 이미 뭔가를 시작했을 것이다.
간절함은 두려움보다 앞선 감정이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시도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상황을 탓하지 않고,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그래서 간절함은 말로 설명되지 않는다.
간절함은 결국, 행동으로 증명된다.
그 말은 한때 나에게 상처였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 말이 되었다.
“정말 간절하다면, 왜 그대로 멈춰있지?”
그 질문은 날 아프게 하지만, 동시에 정직하게 만든다.
그리고 결국엔, 나를 한 걸음 움직이게 한다.
간절함은, 결국 사람을 움직이게 만든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드러나는 그 마음 앞에서,
핑계나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