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이 시끄러운 어른

책 <예민함이라는 선물>을 읽고

by 젤리빈

이 책이 나한테 선물같았다.

내가 지금까지 느낀 감정은 "우리 사회는 신체적 아동 학대의 참상을 인식하고 있지만, 유해한 가족 패턴에서 생기는

고통은 인식하지 못한다. 이럴 때의 상처는 듣지 못한 말, 즉 긍정적인 피드백이나 격려, 확신을 주지 않았던 데에서 생긴다.

또 있었던 것보다 없었던 것, 즉 아이들과 보내는 소중한 시간, 인내, 지적 자극, 의미 있는 대화, 가족들 간의 의례적인 활동,

함께 놀고 웃고 떠드는 시간이 없었던 데서 생긴다. 특별히 트라우마라고 말할 만한 것이 없더라도 정서적 박탈감으로 인해

세상에서 환영받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라는 문장처럼 안정적인 경험이 없었던 것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나한텐 정말 트라우마라고 불릴만한 경험이 없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이유 없이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우울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는, 내가 지금까지 느꼈던 감정들을 열어보고 해석하는 느낌이었다.

"지금 벌어지는 일이 마음에 안 들거나 불편할지 모르지만, 계속해서 그 과정에 열린 마음을 품고 과정이 펼쳐질 수 있게 허용하자.

성공은 변화에 동반되는 피치 못할 불편함이라는 물결을 계속 버틸 능력이 있는 사람들의 것이다

도망치고픈 마음이 아무리 크더라도 슬픔, 실망, 분노를 포함한 여러 감정을 없애지 말고, 친구가 되어 돌봐야 한다."

"인내심과 자기 연민을 찾아야 한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나 지금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자신을 비난하지 말자, 부분적으로는 조금 더 일찍 행동을 취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들겠지만, 자연의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인생의 길은 순환과 계절에 맞아야 한다.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행동과 경험은 성공의 토대를 만드는 소중한 탐색 기회였다. 알 때까지는 알 수 없었을 것이며, 준비될 때까지는 도약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신은 지금까지 줄곧 아주 '적절한 행동'을 해왔다"

이 글을 보면서는, 예전에 정재형의 유튜브 채널에서 게스트가 어린 시절에 했던 실수를 얘기하고, 아직도 마음 깊은 곳에서 찌릿찌릿하다고 하는 말에 "나이가 들어서 어린 나를 너무 미워하면 안 돼. 그걸 잘 껴안아 주고 토닥이면서 가야 하는 것 같아"라는 말이 떠올랐다. 과거에 했던 내 실수도, 한 살이라도 많은 지금의 내가 토닥여주고

그때의 상황에서 '적절한 행동'을 했구나, 라고 생각하며 너무 미워하지 말자.

"격정적인 성향에는 이로운 점과 불리한 점이 공존한다. 우선 주변의 신호를 더 잘 포착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위선과 거짓말을 포함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본다. 정확히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집안에 존재하는 무언의 분노와 질투 같은 해로운 역할을 감지하고 흡수한다.

직관적이고 공감을 잘하는 사람은 재능이 남용되거나 악용되는 가족 패턴에 꼼짝없이 갇힐 수 있다.

어느새 가족의 감정적 보호자가 되어있거나, 더 심하게는 감정적 스펀지, 희생양, 샌드백이 될 수 있다.

어떤 부모들은 정서적인 측면에서 부족함이 있다. 이들은 인격이 미숙하거나 트라우마가 있어서 아이들이 마땅히 받아야 하는 사랑을 주지 못한다. 성숙한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한결같은 사랑과 관심을 쏟아주고, 정서적으로 열려있으며, 자녀들이 놀 수 있게 해주고, 실수를 허용한다

또 회복성, 절제, 공감, 연민의 모범을 보이며, 불안정한 세상에서 이들이 편안하고 안심되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안전한 근거지'이자 믿고 의지할 힘이 되어준다.

반면 정서적 측면이 부족한 부모들은 징벌적이고, 불안정하고, 통제하려고 들고, 그들 자신의 예측, 욕구, 소망을 자녀의 삶과 분리하지 못한다.

그들이 특별히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성인의 몸을 한 아이이기 때문이다. 그들도 최선을 다할지 모르지만, 자녀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정말 나는 '안전한 근거지'라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어릴 때 엄마, 아빠, 언니, 나, 할머니, 큰이모 이렇게 살았을 때(아마 최대 초등학교 2~3학년 정도까지) 아빠는 서울에서 일했고 엄마는 자주 집을 비웠던 것 같다. 서울에서 아빠가 오면, 나는 어리고 아무것도 모를 때지만 부모님의 싸우는 소리와 서먹한 분위기를 은연중에 알고 억지로 분위기를 띄우려 장단을 맞추고, 애교를 부리고 엄마, 아빠를 웃기려 애썼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감정의 스펀지가 돼서 나쁜 감정을 내가 흡수했을지도 모른다.

"감정의 스펀지, 신경학자들은 뇌에서 거울 뉴런의 활동 연구를 통해 우리가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의 감정에 적응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일단 다른 사람의 기분을 감지하면, 우리는 그를 도와야 할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공감하는 능력이 극도로 발달해있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외적인 대인 감정 조절에 관여한다. 어떤 공간에 들어서면 사람들에게서 발산된 무언의 대인관계 신호를 포착한다. 그러면 생각하는 과정 없이, 감정 에너지의 균형을 맞추는 데 필요한 행동을 한다. 이를테면 다른 사람들의 에너지가 낮은 것을 감지하고 농담을 하거나 소란을 피우거나, 자신을 비하하는 유머를 내놓거나…. 집에서 스트레스의 기류를 감지하면, 자기 마음속 불안은 한쪽으로 치워두고 용감한 얼굴로 가족 모두가 기댈 수 있는 정신적 지주가 된다." "부모가 우울한 것을 보면 집안일을 거들거나 부모의 기분을 좋게 만들려고 애쓴다. 당신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깨진 균형을 다시 잡고,

너무 벅차서 가족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트라우마를 소화하고 이름 없는 분노를 표현하는 일에 피해자가 된다."

라는 글에서 내가 어릴 적 경험이라고 썼던 부분을 너무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정작 어린 나의 마음을 다듬어주는 사람은 없었고 어린 시절 몇 안 되는 기억 중에 유난히 또렷하게 기억나는 건, 엄마가 갑자기 할머니랑 나랑 사는 집에 와서 저녁을 먹었고 내 먹는 모습만 쳐다보고 말도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다른 때와 비슷하게 자기 전에 나갔든가 아니면 자고 일어났는데 없던가 하여튼 그랬다. 그런 기억만 있다

이런 기억들이 지금 내가 느끼는 '이유 없는 불안, 우울'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인지 죽음에 대해서 무뎌지고 잔인하고 징그러운 영화들을 좋아하게 됐고, 안 아프게 죽을 수 있다면 당장 죽고 싶어서 자살 방법에 대해 진심으로 찾아보기도 하고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밥을 먹다가도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는 상상을 한다든지, 근데 사실 현대에 죽고 싶다,~해서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쓰는 사람이 늘어난 것처럼 나도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가볍게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진짜 죽음과 자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소위 말하는 우울증 환자들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난 심각한 트라우마도 없고, 그저 어린 시절의 결핍과 충격으로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우울한, 우울할 시간이 많은, 몸이 힘들지 않은(바쁘지 않은) 그런 사람인 것 같았는데 이 책을 읽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알 것 같다. 어린 나는 "화가 났지만 억누를 수밖에 없었고, 우울감에 빠져 있었지만, 그런 감정을 잊어버리고 애어른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트라우마는 결코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내면에서는 조용한 비명이 계속해서 울려 퍼진다"라는 구절처럼 일찍 철이 든 애어른이라고 많이 듣고 자랐는데 그냥 내면이 시끄러운 어른이 된 것이다.

그리고 또렷하게 기억난다고 했던 엄마의 우는 모습은

"아이가 본모습을 표현하는 것이 안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들의 역할이 뒤바뀐다. 빨리 철이 들어야 해서 아이 내면의 순수한 마음은 억눌린다.

보살핌받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부모에게 연약한 모습을 드러내면 아이는 실망하고, 정신적인 충격과 상처를 받게 된다. 그래서 안전하게 처신할 유일한 방법은 고통에 초연하고 자신의 연약함을 숨기는 것임을 아주 어릴 때부터 배운다. 이런 부모는 아마도 결혼 생활이 불행하거나 불만족스러울 때 자신의 기분이나 불만을 자녀에게 지나치게 털어놓고, 자녀 앞에서 울거나, 불평하거나, 부모의 이런 행동은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 무거운 짐이지만, 아이는 부모의 고통을 덜어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라는 구절처럼

내가 부모님의 감정에 책임감을 느끼고 기분을 낫게 해줘야 한다는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살았다. 물론 그게 나쁘다고 볼 순 없지만

내 마음을 갉아먹으면서까지 그렇게 느낀다면 정말 '나쁜 거' 아닌가?

"어린 시절에 불안정하고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다면, 세상에 대한 신뢰를 키울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의심과 두려움이 기본적인 심리 상태가 된다.

항상 바짝 경계하고 주시하면서, 위협 요인이 없는지 줄곧 탐색한다. 생산적으로 대처하기보다는 '잘못될 가능성이 있는 것들'을 일일이 따지는, 분석 마비에 사로잡힌다."

"살아남기 위해 각자 고유의 방식으로 적응했기 때문에 자유를 위해 나아가야 할 길도 사람마다 달라진다.

완벽주의적이고, 불안감이 고조되어 있으며,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데 갇혀있는 '적응된 자기 모습'을 거부할 필요는 없다.

당신의 방어기제는 아주 힘든 시기에 살아남도록 도왔던 당신의 훌륭한 일부분임을 기억하자. 그것을 반갑게 맞이하고 정중히 인사하고, 존중해주어도 좋다"

"어린 시절의 경험은 공정하지 않고 정당화되지 못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당신의 유일한 경험이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현실을 바꾸려고 애를 쓰면서 매번 실망하는 것보다 언제나 현명하다. 우울증의 치료법은 우울감을 행복감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진지하게 임해서 다른 쪽 출구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충분히 슬퍼하고 나면 부모를 대하기가 한결 쉬워지기도 한다. 기대치를 적절히 조절할 수만 있으면,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는 것도 가능하다. 우리가 사랑의 영역에 들어설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한계를 명확히 고려하고 그들의 인간적인 측면을 받아들이려고 애쓰는 과정을 통해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릴 때 아빠한테 선물 받았던 진짜 큰 대왕 곰돌이 인형이 그 당시엔 거의 내 몸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내가 봤을 땐 그렇게 크지 않고 사실 눈, 코, 입도 잘 기억이 안 날뿐더러 색깔도 기억의 왜곡 덕이 확실치 않다. 그렇지만 내가 아빠한테 큰 곰돌이를 선물 받은 기억은 뚜렷하다. 어릴 적 트라우마는 이런 식으로 기억의 왜곡, 진실, 이름을 붙일 수도, 정의할 수도없게 남아서 계속 나를 괴롭힌다.

"감정이 없고 아이의 의사를 무시하는 부모 밑에서 자랐다면 사람은 믿을만하지 못하고, 관계를 맺기가 힘들며, 당신이 사랑하거나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전달받았을 것이다. 또한 방치는 동기부여 체계에서 아주 중요한 배 쪽 선조체의 발달을 둔화시키기도 한다. 예민한 아이는 방치된 양육 환경에서 쉽게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지며, 우울증에 걸릴 위험도 확실히 더 커진다."

"깊이 슬퍼하고 화를 내고 아픔을 겪으면 다시 회복될 수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실이 보이더라도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못 보는 건 아니지만, 당신은 있는 그대로의 삶에 뛰어들 만큼 용감하다. 생존에서 번영으로 나아가려면 편안함을 느끼는 영역을 넓혀야 한다. 우선 자신의 예민한 감수성에 익숙해지는 것으로 자신이 만든 갑옷을 녹이기 시작하자. 절대적인 통제력을 가지려고 하기보다는 삶의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긴장을 푸는 연습을 한다. 인생의 모든 관계에는 불확실성이 따르며, 더 가깝고 친밀한 관계일수록 상처에 더 취약한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이런 취약성은 약점이 아니라 용기의 징후다."

그리고 밑은 <감정이 서툰 어른들 때문에 아팠던 당신을 위한 책>에서

"정서적 외로움,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부모는 본인의 일에만 정신이 팔려서 자녀가 내면적으로 어떤 일을 겪는지 알아차리지 못한다. 게다가 이들은 감정을 무시하고 정서적 친밀감을 두려워한다. 이런 부모는 아이들의 정서적 욕구를 불편해하기 때문에 아이를 어떻게 정서적으로 뒷받침해 줘야 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어떤 내담자와의 이야기 중, 갑자기 부모님이 다 같이 이사를 해야 한다고 하곤 이유를 알려주지 않아서

"가족들과 함께 서 있었지만, 아무도 왜 이사를 가는 건지 설명해 주지 않았어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정말 혼자인 기분이 들었습니다. 진이 다 빠진 듯한 기분으로, 어떻게 혼자 이 일에 대처해야 하나 생각했지요. 어떤 질문도 할 수 없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가족 중 누구하고도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었어요. 극심한 불안감 때문에 어떤 얘기도 꺼낼 수가 없었고요. 그래서 혼자 이 상황에 대처해야만 한다는 걸 잘 알았습니다"

위 내담자와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가족이 따로따로 흩어져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내 사연과 비슷하다고 느낀 까닭은 나도 어느 순간 엄마, 할머니, 언니, 이모,나 가끔 아빠. 이렇게 살던 집에서 갑자기 친할머니 집으로 가서 살게 됐다고 했다. 그것도 언니랑 나만. 엄마는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건지, 난 한 번도 엄마, 아빠, 나, 언니의 좋았던 기억도 없는데 이렇게 '일반적인(보편적인)'다른 가족들과 달라져야 하는 건지, 어린 나한텐 일절 설명도 없었고, 나에 대한 배려도 없었다.

엄마는 그저 나를 어린 짐덩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냥 미안한 죄책감의 감정만을 갖고 나한테 어쩌다 한번 많은 용돈, 엄마 볼일이 우선이고 가끔 시간이 나거나 하면 저녁을 사주고, 문구점에 가서 학용품을 사주고 할머니 집에 데려다주고. 그 과정에서도 엄마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어.라는 설명도 없었으며, 엄마는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아빠랑 안 살게 됐어도, 그럼에도 너희를 사랑해 라던지

학교생활은 어떤지.

요즘 내 마음은 어떤지

이런 정서적인 교류는 전부 생략된 채로 모두 어린 나의 짐으로 남은 것이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나는 항상 집에 일찍 들어오라고, 또 잔소리하고 진심으로 앞날을 걱정해 주는 부모를 바랬다.

나는 내가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런 고민도 모두 혼자서 했고, 사실 어린 내가 하면 얼마나 옳은 선택을 하겠는가

당연히 변덕도 있고 오답도 많겠지. 그렇지만 그러한 시행착오를 옆에서 도와줘야 하는 건 당연히 양육자의 문제고, 나는 공부하라는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고

그냥 그저 그런 점수를 내도 매우 화내지 않았던 부모를 부러워하던 친구들도 있었지만,

어리고 미성숙해서 '미성년자'인 나에게 알아서 해, 마음대로 해, 잘 생각해 봐. 이런 대답들은 그저 나의 미래에 대해서 같이 고민할 만큼의 감정 소비를 하기 싫고, 책임지기도 싫은 어른들의 회피형 대답으로만 들렸다. 그래서 내 인생의 주인인 나마저도 그냥 되면 하고,아님. 말고 죽기야 하겠어? 잘 안되면 죽지 뭐. 시험 떨어지고 나중에 할 거 없으면 그냥 죽지 뭐. 이런 생각으로 내 인생을 점점 방관하기 시작했고, 그게 극에 달한 시기는 21살 무렵 재수 때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큰소리를 쳐놓고 그 부담감에 오히려 아무것도 안 하다가, 망하고 다른 친구들은 모두 학교에 다니거나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해내고(물론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렸음) 고등학교는 꿈이 없는 사람도 의무 교육으로 다 같이 등교해서 교류할 수 있었다면 20살 이후부턴 완전한 백지에 새로 채워가는 느낌이었다. 그게 누구는 48색 크레파스를 주고, 나 같은 경우에는 검정, 흰색 이렇게 단조로운 색만 주어진 느낌이었다. 밖에 나가지 않아도 뭐라고 할 사람도 한 명도 없고, 점점 집도 어질러지고 정말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무렵, 약을 받아서 먹어보려고 정신과에 처음으로 갔는데 그냥 의사 앞에 앉자마자 눈물이 났다. 그리고 이유 없이 우울하다고 얘기했고, 의사는 되게 별거 아니란 듯 그냥 악만 처방해 주고 끝났고 일주일가량 먹었나? 변화는 당연히 없었고 당시의 나는 그냥 단순한 '우울감'으로 치부하고 넘겼는데 그 우울감은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가 24년 말 공부에 너무 집중이 안돼서 성인 ADHD를 검사하러 간 정신과에서 상담하고 검사 한 결과에서 다시 열렸다. 그 우울감은 내 유년기부터 지속적으로 쌓여서 계속하여 내 인생의 에너지를 다른 쪽에서 채우려 노력하면 갉아먹고, 갉아먹고 있다가 그게 21살에 한번 빵 터졌던 거였고 또 그걸 그대로 방치하니까 내 삶에 대한 에너지는 여전히 플러스도 마이너스도 아닌 상태로 낮게 유지되고 있던 것 같다. 방치된 우울증은 인지 능력 저하와 이상한 부분에서 강박적으로 행동하고 특이하게 예민한 성질,무기력으로 발현됐다.

사실 제일 쉬운 게 남의 탓이고, 어린 시절, 가정환경 탓이지만 모르겠다. 내 탓도 있겠지.그렇지만 다른 원인도 있는데 결국 모든 걸 감당하고 떠안는 건 나여야 하니까.

내 인생이니까 버겁고 힘겹게 느껴지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