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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우니 May 04. 2024

집권제와 봉건제

동아시아에서 과학이 탄생하지 않은 이유 5

知不知上(지부지상) :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최상이다 

不知知病(부지지병) :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하는 것은 병이다 

夫唯病病(부유병병) : 병을 병으로 안다면 

是以不病(시이불병) : 그것은 병이 아니다

聖人不病(성인불병) : 성인은 병이 없다 

以其病病(이기병병) : 병을 병으로 알기 때문에 

是以不病(시이불병) : 병이 아니다 (제71장)


「  유교의 덕치주의와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한 당나라 율령제(律令制)는 과거로 선발한 관료를 지방군현에 배치하여 통치하던 중앙집권적인 통치체제로서, 이것은 20세기까지 일관되어 온 중국 정치의 기본질서였다.

  신라도 505년부터 군현제가 부분적으로 시작되어 삼국통일 이후 9주·5소경·117군·203현에 중앙의 관료를 임명했으며, 788년에는 궁술로 뽑던 관인 선발이 독서삼품과로 바뀌고, 이것이 다시 과거제로 전환되어 고려·조선왕조 1천 년 간 지속되어 왔다. 그리하여 우리의 역사는 지난날 사대부들이 자처했듯이 '소중화(小中華)'라 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이에 반해 일본은 비록 당나라 율령을 도입했으면서도 우리와는 전연 다른 길을 밟았다. 대화개신(646)으로 관등제와 독평제를 도입한 후 대보령(701)으로 율령제를 시행했지만, 그 직원령으로 중앙관제만 규정했을 뿐 지방의 토호들은 그대로 존속시키고서는 고과령 제46조로 지방토호를 감독하는 기존의 평독제를 국사제(國司制)로 강화했을 뿐이다.

  그 결과 과거제로 선발되는 왕권 산하의 관료층이 발달하지 않아, 정치는 사무라이들의 막부정치로 일관되었다. 더욱이 토지사유를 허용한 '간전영대사유령(墾田永代私有令)'(743)으로 발생한 장원(莊園)은 지방분권제와 맞물려 급기야 유럽형 봉건제 즉 번제(藩制)로 발전했으며, 이것이 명치유신을 거쳐 현 단위 지방자치로 정착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결국 신라와 일본은 모두 율령을 도입하고서도 신라는 당나라 군현제로 승격한 반면 일본은 그렇지 못하고 아시아 유일의 유럽형 봉건제로 파행되고 말았던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일본을 "아시아의 고아"라고 갈파한 우메오사씨의 표현은 매우 극적인 묘사였다. 대략 8세기부터 한일 두 나라는 유생 중심의 집권제와 사무라이 중심의 봉건제로 갈린 것이다.

  그럼  일본은 왜 군현제로 발전하지 못했는가. 일본은 망명정권의 씨족기반이 원체 취약하여 지방토호를 해체·흡수할 형편도 되지 못했지만, 역사적으로도 집권제를 시도한 적이 전연 없었다. 군벌시대의 역대 텐토들이 즉위 직후 군벌부터 지명하여 통치권을 위임한 것은 현대적 의미의 내각책임제였다.

  이러한 일본의 봉건제는 응신망명 이전부터였다. 즉 ≪양서≫ 권54 백제전에 비류백제의 통치체제는 "22개 담로에  ···(왕실의)··· 자제 종친을 분거"한 지방분권제였다. 동이족이던 신라 김씨왕권과 온조백제의 여씨왕권은 전통적으로 중앙집권적인 군현제였던 데 반해 비류백제는 처음부터 분권제였으며, 이것이 망명정권으로 연장된 것이었다.

  결국 우리는 중국형 집권제였고 일본은 유럽형 분권제였다. 그리하여 한일 두 나라는 비록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의대수의 나라이면서도 정치적으로는 유라시아 대륙의 동서 양단만큼 멀고 먼 나라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한일 두 나라가 '가깝고도 먼 나라'가 된 바로 그 실상이다.

  언뜻 볼 때 한일 두 나라는 피가 섞였고 역사가 뒤섞였을 뿐만 아니라 두 나라 모두 쌀을 주식으로 삼아 온 동아시아 몬순지대의 답작사회였다는 점에서 별로 다른 나라처럼 보이지 않지만, 통치체제의 차이는 생존양식과 도덕률 및 인간 그 자체를 전혀 다르게 변모시켰다.

  하나의 사례로서 우리는 영예롭게도 당나라 군현제로 급제한 덕분에 역사상 봉건제 즉 지방자치를 전연 경험하지 못한 나라가 되고 말았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뼈아픈 과거다. 지난 YS정권 때 비로소 지방자치가 본격화됐지만, 실은 기존의 중앙집권적인 도·시·군·읍·면 책임자들을 민선제로 뽑는 일종의 감투쓰기 지방자치일 뿐 지방자치에 합당한 권역설정, 자방정부의 구성, 지방의회의 견제기능, 중앙과의 기능분화 그리고 주민의 자치의식 등이 원천적으로 미비된 형식만의 자치에 불과하다.

  오늘날 대통령제는 지난날의 왕제가 연장된 개념이어서 한국인의 정서에 부합되지만, 그러나 어느 누구이든 집권만 하면 으레 백성들에게 군림하여고 한다. 반면 최근 집권의 한 수단으로 제기된 내각제는 토론문화의 전제조건도 갖추지 않은 채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으로 일거에 뛰어넘자는 이야기여서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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