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 문과라고 무시해?
'빅데이터 분석기사'라는 자격증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명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빅데이터를 분석 역량을 테스트하는 자격시험인데, 이를 취득하려면 수학적인 사고력, 통계적 역량,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 중 어느 것 하나와도 친분이 없는 내가 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여기서 잠깐 내 스펙을 언급하자면.............
서울 4년제 대학 국어국문학과 학사 졸업 (취업에 도움 안됨)
아_맞다_저_복수전공했어요_그러니까_그게_뭐냐면_정치외교학과 ^^ (취업에 도움 안됨)
다년간 언론사 인턴경력 (깨달은 것 : 기레기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감사하게도 이런 나를 입사시켜준 현 회사에서 일하며 배운 것들 (배운 것 : 인내심, 호흡법, 어떤 불의가 닥쳐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정신력, 시공간을 초월하는 명상기술)
수학이나 컴퓨터와 그닥 인연이 없는, 진성 문과생인 내가 빅데이터 분석기사 시험을 준비하는 이유는 순전히 데이터와 통계학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 때문이었다.
지난해 대학원 논문을 준비하면서 어떤 현상에 대한 나만의 가설을 세우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통계적 유의미성을 검증하는 일에 흥미를 느꼈다. 이 세계에서는 설문조사 문항조차 어느 것 하나 어림짐작만으로 넘어가는 것이 없다. 오류를 최소화하려는 깐깐한 절차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나이를 먹을수록 내가 아는 게 별로 없다는 것을 절감하고는 한다. 아는 게 없으니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시간의 세례를 받은 데이터라면, 답을 알고 있지 않을까? 설령 그것이 오답이라고 하더라도, 정답에 가까운 매력적인 오답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여기엔 한스 로슬링의 <팩트 풀니스>의 영향도 없지 않았다. 하여튼 그런 이유로 데이터, 특히 통계 대해 더 공부해보고 싶었다.
빅데이터 관련업계 종사자들의 말에 따르면 자격증은 취업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한다. 자격증보다는 관련 공모전이나 캐글에 도전해 보는 것이 훨씬 실용적일 거라고 한입으로 말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올해 상반기 분석기사 시험에 쏟기로 했다.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면 이 세계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빅데이터 분석기사 시험은 필기와 실기로 구성돼 있다. 4월 17일에 필기시험을 치렀다.
필기 시험 준비물은 대략 이렇다.
이기적 빅데이터 분석기사 문제집 (도움 안됨)
이상철 KC대학 빅데이터 경영학과 교수 유튜브 (강추)
칸 아카데미 벡터 강의 (그냥 그럼)
그 외 여러 블로그 (쌉도움됨)
한달의 시간 (내 기준에선 준비시간이 부족했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막상 공부해보니 쉽지 않았다. 특히 미적분, 벡터 등이 등장했을 땐 아득했다. 나는 진성 문과생이다. 고등학교 때 미적분도 배우지 않았다. 수험서만으로는 이 개념들을 모두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불행하게도 내가 초반에 의지했던 '이기적 문제집'은 도움이 전혀 안됐다. 개념설명이 불친절했으며 예상문제의 퀄리티도 현저히 낮았다. 이 책만 보고 간 수험자들은 낭패를 봤을 것이다.
그래서 찾은 것이 유튜브였다.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과 마주할 때마다 유튜브를 검색해 찾아봤다. 그중에서 이상철 KC대학교 빅데이터 경영학과 교수(!!!!!!!)가 학기별로 정리해서 올린 데이터마이닝, 경영통계 강의가 큰 도움이 됐다. 내가 지금까지 본 강의 중 통계학적 방법론을 가장 직관적으로, 가장 쉽게 설명해준다. 연구방법론에서 구천을 떠돌고 있는 통계알못 대학원생이 있다면 이분의 유튜브에서 광명을 찾기를 바란다.
봄같지 않게 유독 쌀쌀했던 4월 17일에 서울 모 중학교에서 필기시험을 치렀다.
필기시험 치른 뒤 소회
이것은 빅데이터 시험인가 통계학 시험인가...
암기보다는 이해를 요하는 문제들
시중에 나온 문제집 믿었다간 필패
명색의 국가기술 자격증인데 오탈자 무엇, 저한테 교열 한번 맡겨주세요. 쌉 잘볼 자신 있음.
필기시험을 치르고 대략 한달이 지나 시험결과가 나왔다. 결과는 턱걸이 합격~,,, 통알못의 한달 고군분투치고는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실기는 오는 6월에 있다. 이제는 R 언어에 다이빙할 때다. 최종 결과가 나오는 대로 업데이트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