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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Jun 26. 2024

every day 신앙일기

믿음을 쓰다/12

내 삶의 모든 것들을
산산이 부숴버린 '노'를 통해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을 긍정하는
'하나님의 예스'이신 그리스도를 말해야 했다.
평생 사람들에게 전해왔던 메시지,
즉 우리의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 하는 것에 따라
최종적인 결과가 좌우된다는 메시지를
내 삶에 적용해야 했다
 
-하나님의 Yes/스탠리 존스-


신의 존재를 나의 모든 어려움에서 해결해 줄 슈퍼맨으로 생각했던 때가 있다. 슈퍼맨뿐 아니라 가끔은 통장으로도 생각했고 나를 젖과 꿀이 흐르는 무릉도원으로 인도하실 그 누군가를 붙여줄 거라 여기며 살기도 했다. 신을 기대하면서 사람을 기대하고 신에게 요구하면서 그 요구가 신이 보낸 그 누군가로 인해 쨘하고 모든 것이 마법처럼 해결되리라 믿고 산 세월이 따오른다. 


신은 나를 위해 믿는 것이었던가? 나의 편의와 안위를 위해서? 자녀를 위해 아비가 한몫 떼어줄 양으로 아비를 쳐다봤던 것인가?


신의 존재가 그리 명명된 이상 신이 인도할 아니 신이 주관하지만 내가 바라는 그 길로 가지 못할 때 신의 존재를 의심한다. 신의 예스가 나에게는 마냥 노였던 것이다. 이게 아닌데요? 이걸 바라는 게 아닌데요? 왜 이러시죠?


신이 우리 마음대로 이끌어진다면 그것이 신의 존재일까? 신은 무소부재하신 존재다. 인간의 원대로 인간의 욕심대로 결코 이끌리는 분이 아니다. 그걸 몰랐다. 신의 전지전능하심은 인간의 욕심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결코!


신을 믿게 되는 애초의 이유가 어려움이란 난관이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인간 그 이상의 힘이 필요할 때 찾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애초부터 우리는 신의 존재감이 전지전능함이라는 것을 깔고 그 전지전능함이 나에게 부어지길 기대하며 신을 믿는다. 신이 나를 불쌍히 여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혹은 내가 믿을 테니 당신이 가진 것을 주시오 라는 마음으로도.


믿을수록 신의 궤도를 벗어날수록 하나님의 생각과 내 생각이 다르면 다를수록 신을 의심한다. 신을 의심하는 순간이 믿음을 살펴야 하는 때라는 것을 의심하고야 알았다. 내 뜻과 주님의 뜻은 전혀 다르고 주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는 건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예수를 받아들인다
나의 받아들임은 나를 사랑으로 받아주신 분을
받아들이는 '받아들임'이다
 
-하나님의 Yes/스탠리 존스-

신을 믿겠다는 것은 신이 주실 복을 받아들임이 아닌 신 자체를 내 안에 영접하겠다는 의지이자 다짐이고 실천이다. 영접은 결코 수동태가 아니다. 신을 영접하고 신을 믿고 살겠다는 받아들임은 그 받아들임에 대한 응답을 내 몸과 마음으로 신에게 드리는 것이다.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가 죄 많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사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신 것처럼 그분을 믿는 우리는 그 사랑에 매번 응답하고 그분이 말씀하신 대로 행하고 행해야지만 그분의 받아들임이 비로소 우리 안의 완성을 이뤄나간다. 그제야 하나님의 예스에 대하 우리는 예스라고 외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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