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의 감상
- 해나, 거기에도 눈이 와요?
회사 동료 민의 메신저였다. 요즘 우리 부서는 2일씩 교대로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오늘 나는 재택근무, 민은 사무실에서 근무를 하는 날이다. 민과 나의 사이에는 관악산이 자리하고 있으니 멀다면 멀고 가까우면 가까운 거리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이유로 내가 사는 동네에도 눈이 오는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 잠시만요.
방충망 사이로 한기가 들어오는 것을 막아내기 위해 닫아두었던 창을 열어 보았다. 민의 말처럼 정말 눈이 오고 있었다.
지난주에도 이렇게 눈이 내렸던 날이 있었다. 그날 역시 재택근무를 했고, 온라인으로 글쓰기 수업을 들으며 온종일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수업이 끝나고도 선생님이 내주신 과제를 하기 위해 자정이 다 될 무렵까지 활자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
과제를 어느 정도 마쳤을 무렵, 무심코 열어 본 인스타그램의 피드가 온통 눈 세상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우리 집에는 옥상이 있다. 옥상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거실 베란다와 이어지는 문을 통해서만 갈 수 있다. 그러니까 그 옥상은 나만의 단독 옥상이다. 문을 열어보니 옥상으로 이어지는 계단에 소복이 눈이 쌓여있었다. 종아리까지 올라오는 방한 부츠를 신고 조심히 걸어 올라가 보았다.
눈을 밟을 때마다 들리는 '뽀드득' 소리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다. 옥상에 올라가니 눈은 이미 멎었고 눈을 시원하게 내린 구름들이 바람에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 그 뒤로 보이는 관악산까지 꽤 멋진 장관이 펼쳐졌다. 눈이 내리고 있을 때 이 풍경을 보았더라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한동안 인스타그램에는 사람들이 만든 눈사람 사진으로 가득 메워졌다. 폭설로 지옥 같은 출퇴근길을 보냈어도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과 닮은 눈사람을 만들며 즐거워했다. 나도 오랜만에 '눈사람 만드는 일'에 동참하고 싶었다. 날씨 앱으로 일기예보를 확인했다. 주말까지 연이은 한파라고 하니 아마 눈은 그때까지 녹을 일이 없을 것이다. 여유 있는 주말 오후 눈사람을 만들어 보리라 캘린더 앱에 나만 알아볼 수 있도록 표시해두었다.
스스로와 약속한 날인 주말이 찾아왔고 빗자루 한 자루를 들고 옥상에 올라갔다. 옥상에 쌓인 눈을 쓸어 한쪽으로 모아 두고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눈을 아무리 뭉쳐보려고 해도 흩어지기만 할 뿐 전혀 뭉쳐지지 않았던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호주머니에 있던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을 했다. 어느 맘 카페의 게시글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나와 비슷한 질문을 했고, 이제 막 내려 얼기 전의 눈으로 뭉쳐야 눈이 뭉쳐진다는 댓글이 있었다. 눈사람을 만드는 것도 때가 필요하다니! 장갑에 묻은 눈을 털어내며 아쉬운 마음도 함께 털어냈다.
"오늘이 기회야."
오늘이 그날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나는 재택업무를 마치자마자 단단히 준비를 하고 옥상에 올랐다. 눈은 그치지 않아 여전히 조금씩 계속 내리고 있었다. 그 맘 카페의 글처럼 정말 눈이 잘 뭉쳐졌다. 나는 두 손에 눈을 가득 모아 뭉쳐보았다. 신이 난 나는 그 작은 눈덩이 주변에 눈을 덧대어 보았다. 꾹꾹 눌러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눈덩이는 점점 커졌다. 눈이 쌓인 옥상에 눈덩이를 굴리며 눈덩이를 키웠다. 큰 눈덩이를 만드는 일은 의외로 쉬웠다. 단지 알맞은 때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나는 그 눈덩이를 눈사람의 몸통으로 쓰기 위해 평평한 곳 위에 움직이지 않게 잘 고정시켜두었다. 그리고 같은 과정으로 머리가 될 눈덩이도 금세 만들었다. 이제 얼굴을 만들어줄 차례. 나는 옥상에 있는 텃밭으로 가 눈을 털어내며 돌을 골랐다. 별 잡동사니를 다 가지고 있는 나는 그 속에서 솔방울도 찾아냈다. 가느다란 나뭇가지도 얻었다. 동그란 돌로 눈을 만들고 코 자리에 솔방울을 꽂았더니 제법 얼굴 같다. 나뭇가지를 반으로 가볍게 잘라 눈썹을 만드니 더욱 생기가 돌았다.
든든하게 옥상을 지켜줄 눈사람이 만들어졌다. 나는 그 녀석의 사진을 찍었다. 함께 셀카도 잊지 않았다. 인스타그램을 열었다. 방금 전 찍은 수많은 사진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골랐다. 그리고 이 문구와 함께 사진을 게시했다.
- 벼르고 벼르던 눈사람 만들기. 눈사람을 만드는 것도 때가 필요한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