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4 시간 가량 떨어진 중부 지역에 중도시 부르주가 있다. 오늘날 부르주는 농업 중심의 중도시지만 중세에는 주요 상업도시로 크게 번창했고, 13세기에는 프랑스 중부지방을 관할하는 대교구가 있어 종교적 영향력이 막강했다. 중세에 자리잡은 부르주의 구도시은 아담하다. 구도시 길은 옛적 마차가 다니던 길이라 폭이 좁은 일방통행 코블스톤 돌길이다. 돌길을 따라 내려가면 르네상스 스타일 팀버 프레임 목조 하우스들이 둘러싸고 있는 다운타운을 만난다. 다운타운 근처에 프랑스 작가 발작이 ‘파리와도 바꿀 수 없는 성당’이라고 극찬한 고딕대성당이 있다.
성당 찾아 가는 길
8 년 전, 부르주대성당을 찾아가는 초행길은 멀었다. 밤새 대서양 건너 다음날 아침, 샤를 드골 국제공항에 도착해, 출국 수속 마치고 렌트카를 픽업해 파리순환도로에 들어서니 벌써 오후 두 시가 넘었다. 성당까지는 4시간 가량 소요된다. 파리 외곽 순환도로 교통은 언제나 막혀 있다. 순환도로 한시간 반 만에 부르주 방향 출구로 나와 한참 가다 보니 부르주 반대 방향인 리옹으로 가고 있었다. 부산으로 가야하는 데, 목포 쪽으로 가고 있었던 셈이었다. 다시 돌아가 다른 길, 또 다른 길을 돌고 돌아 공항에서 출발 한 지 3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순환도로를 빠져나와 부르주 방향 A10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이젠, 가기만 하면 되는구나! 안도의 한숨. 어둡기 전에 도착해야 해… 부르주를 향해 날라갔다. 부르주에 들어서니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예약한 호텔 주소에 도착해 둘러봐도 호텔은 커녕 호텔 비슷한 건물도 없었다. 30분 가량 헤메다 근처 호텔에 들어가 물어보니 바로 거기라고 한다. 글쎄? 거기로 돌아오니 한없이 착하게 생긴 장대키 아저씨가 대저택 정원 대문을 열어놓고 함박 웃음 지으며 서있다. 오후 6시 지나면 문 닫지만 혹시? 해서 나왔단다. 100 년도 넘은 것 같은 고풍스런 4층 저택이다. 묵직한 놋쇠 열쇠를 받아 백팩을 지고 바퀴백을 끌고 삐걱삐걱 나무 계단을 한걸음 한걸음 올라간다. 몇 계단 올라가면 뒤에 전구가 꺼지고, 잠시 끝없는 암흑, 앞 전구가 켜진다. 꺼짐과 켜짐의 사이 영원한 암흑 속으로 내가 꺼진다. 깜빡 깜빡… 나는 사라졌다, 나타나고, 다시 사라지는 순간, 순간을 넘어 마침내 살아나 4 층 마지막 계단에 올라서 열쇠로 객실 문을 열었다. 고요하다. 샤워하고 떡처럼 구겨진 크로상과 커피를 마신 뒤 잠들었다. 밑 빠진 잠이었다.
느닷없이 우뢰 같은 종소리에 벌떡 깨어났다. 창문을 활짝 여니 화창한 아침. 바로 눈 앞이 성당. 종탑 종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유체이탈 같은데 현실이다. “아! 부르주에 왔구나”
장대하게 솟아있는 부르주대성당
부르주대성당은 파리대성당을 시공한 후 30 여년 후 시공해 거의 백년 만에 지었다. 원래 지금 성당이 있는 자리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 로마시대의 성벽 안쪽에 있었다. 성당을 지을 때 큰 건물을 짓기 위해 성벽 바깥 6 미터 정도 아래부터 성벽 안쪽 낮은 구릉을 따라 비스듬히 ‘아래 교회’의 반 지하 성당을 짓고 그 위에 성당을 올렸다. 뛰어난 건축 기술이 요구되는 쉽지 않은 역사였다. 하지만 이백여 년 동안 지은 파리대성당과 달리 성당은 백 년 정도에 완공해 설계, 공법 그리고 건축 예술을 아울러 통일 된 스타일을 보여준다. 그래서 당시 건축 공법과 미학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다.
부르주대성당은 장대하다. 성당 외관이 장관이고, 서쪽 파사드가 장엄하고, 성당 내부의 막힘 없이 열린 공간이 또한 장대하다. 고딕성당 건축의 대명사인 샤르트르대성당보다 조금 더 높고 넓다. 파리대성당처럼 신랑 양쪽에 각각 2개 측랑이 있는 5 랑식이다. 대부분 고딕 성당 파사드는 3 개 입구로 되어있지만, 성당 파사드의 5개 입구로 되어있다. 파리대성당에 비해 공중 버팀벽은 날렵하고, 가파르게 높고, 창은 크고 천장은 한층 높아졌다. 특히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진 십자가 모양의 파리대성당과 달리, 성당 내부는 긴 일자형 구조에 하나의 공간을 담는 성당이 탄생했다.
높이 솟아 있는 성당 외관은 장관이다. 성당을 마치 텐트 기둥처럼 ‘피라미드’식으로 높이 둘러싼 공중 버팀벽이 반복하며 수직선의 리듬을 만든다. 파리대성당에서 처음 공중 버팀벽을 설치한 뒤 불과 30여 년 만에 공중 버팀벽 건축 기술이 거의 완벽한 경지에 도달 했음을 알 수 있다.
장엄한 서쪽 파사드
성당 서쪽 파사드는 장대하다. 파사드 높이가 50 미터를 넘고 폭이 56 미터라서 파사드 높이 보다 오히려 폭이 더 넓은, 고딕 성당 파사드 중 가장 큰 규모이다. 65 미터의 북쪽 탑 위에 올라가 내려다 보면 저 아래 성당 광장이 까마득하게 어지럽다. 앞으로 돌출한 큰 6 개 기둥 사이 5개 입구가 병풍처럼 넓게 펼쳐져있다. 그 규모와 입체적 구조가 순례자를 압도한다. 남쪽 타워는13세기 중반에 완성됐는데, 14 세기 초엽 년 경 탑이 무너질 것 같아 큰 버팀벽 건물을 지어 탑을 지지했다. 16 세기에는 북쪽 탑이 붕괴돼 30년 동안 다시 지었다. 이 탑은 르네상스 양식 영향을 받아 남쪽 탑보다 높고 화려하게 장식했다.
병풍처럼 파노라믹하게 펼쳐진 5 개 입구는 아주 폭이 넓어서 멀찍히 바라봐도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는다. 가운데 정문은 신랑과 양쪽 2 개 문은 신랑 양쪽 각각 2 개 측랑과 바로 연결된다. 대부분 고딕 성당의 서쪽 파사드는 3 개 문으로 구성돼 있지만 여기선 입구층 문이 5 개나 된다. 모든 고딕 성당 서쪽 파사드 중 가장 큰 규모다.
서쪽 파사드 ‘최후의 심판’ 중심문
서쪽 파사드 다섯개 문 중에서 중심은 가운데 최후의 심판 정문이다. 이 정문에는 최후 심판 앞에서 사자들이 영생의 축복과 지옥의 저주가 결정되는 혼란스런 광경이 마치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듯 장엄한 한편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아래 상인방 격자에는 수많은 사자들이 관을 비집고 나오고 있다. 위쪽 상인방 겨자에는 미카엘 천사가 죄의 무게를 저울질해 사자들의 운명을 결정하고 있다. 구원 받은 영혼들은 아브라함 품으로, 저주 받은 사자들은 지옥 괴물 레비아탄 (사탄과 같은 지옥의 악마) 아가리로 떨어진다. 상인방 위 팀파눔에는 그리스도가 보좌에 앉아 최후 심판을 내리고 있다. 왼쪽 가슴 아래 피 흘린 상처가 선연하다. 왼쪽에는 성모가, 오른쪽 세례 요한이 무릎 꿇고 심판 받는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그리스도 양쪽에는 천사들이 십자가를 들고 그리스도 희생을 증언하고 있다. 3 년 전 해 지는 일요일 저녁, 성당을 다시 찾아왔다. 노을을 등지고 서쪽 파사드 돌계단에 서서 피곤한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심판의 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양 손 번쩍 쳐들고 두 눈 부릅뜨고 최후 심판 내리는 그리스도 발 아래 사자들이 관 뚜껑 비집고 나와 지옥과 천국의 갈림길에서 쓰러지고, 일어나고, 다시 쓰러지는 구원을 향한 처절한 아수라가 벌어지고 있었다. 500여 년 전 신구 기독교 간의 종교 전쟁 동안 이 심판의 문을 파괴했다는 역사를 넘어, 땅거미 내리는 저녁, 신의 그림자가 적막하게 내리고 있었다.
성당이 하나의 공간이다
성당 안에 들어서면 장대하게 열린 공간을 만난다. 성당 안 어디서 어디를 바라봐도 막힘 없다. 길이 117 미터, 폭이 42 미터, 높이가 37 미터나 되는 장대한 성당이 통으로 한 공간이다. 땅에서 문득 솟은 듯 편백나무처럼 높이 솟은 아케이드 기둥들이 두 줄로 서 있다. 높은 기둥 머리에 천장을 얹은 듯하다.
성당은 고딕 성당에선 드물게 5층 벽구조를 하고 있다. 대부분 높은 고딕 양식의 성당들 벽구조는 채광창, 트리포리포리움층 그리고 아케이드층의 3 층구조이다. 하지만, 부르주대성당에선 채광창, 트리포리움층 아래 아케이드층을 아주 높이 치켜 올리고, 높이 올린 아케이드층이 품고 있는 안쪽 측랑에 다시 채광창, 트리포리움층과 아케이드층을 지었다. 그래서 3층 벽구조가 두 겹으로 겹쳐 있는 5층 벽구조를 하고있다. 이 독특한 벽구조로 성당 내부 전체가 하나로 통일된 공간으로 지을 수 있었다.
성당은 높을 뿐 아니라 길다. 신랑의 7 구간이 익부 없이 그대로 내진의 6 구간으로 이어져 모두 13 구간이며 성당 내부 길이는 120 미터 가량된다. 구간마다 신랑 아케이드 기둥들 솟아있다. 이 기둥들은 육중한 하지만 무게감을 줄이기 위해 가는 기둥에 8 개의 작은 기둥들을 붙여 복합기둥을 수직성을 강조했다.
‘빛으로 빚은 성서’스테인드글라스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창은 183 개나 되며 주로 후진 제실을 장식했다. 이 창들은 대부분 13 세기 초엽에 제작됐는데 지금까지 온전히 보전되어 있어, 샤르트르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와 함께 13 세기 스테인드글라스의 대표하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원형, 타원형, 사각형, 클로버 모양 등, 트레이셔리 구조가 복합적이고 색깔도 선명하다. 요셉의 생애, 선지자들, 돌아온 탕자, 수난, 최후 심판, 새로운 언약 등 수많은 구약과 신약의 메세지를 새겨 ‘빛으로 빚은 성서’로 알려진 창 중에서 널리 알려진 수난의 창을 간단히 풀어보자. 이 창에는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부터, 최후만찬, 태형, 십자가처형, 부활, 고성소의 메세지가 아래서 위로 두줄의 원형을 따라 올라가며 펼쳐진다. 원형 사이 네잎클로버 문양에는 그리스도의 죽음 후 부활까지 이야기가 전개된다.원형들은 군청색 바탕에 붉은색과 노란색, 흰색이 어우러져 메세지를 엮어간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장면마다 사람들의 제스처나 표정이 마음에 와 닿도록 디테일하게 그렸다. 맨 아래 두개의 원에는 모피상들이 거래 하는 모습을 그렸다. 이 스테인드글라스는 모피상 조합에서 기증했다.
맑은 아침 후진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바라보면 아침햇살 받으며 수많은 구원의 메세지가 깨어난다. 아침햇살 들 때면 빛의 강도와 방향에 따라 스테인드글라스마다 붉은, 푸른, 노란 빛으로 명암지면서 후진 공간은 온통 오색으로 물든다. 마치 신의 손길이 닿아 피조물이 깊은 잠에서 깨어난 숨쉬는 듯한 감동에 휩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