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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90년 그 짱짱한 인생 이야기

by 찌니


안녕하세요. 오늘 구순연의 주인공

홍 ㅇㅇ씨의 둘째 딸입니다. 오빠가 이 축하연을 준비하면서 저에게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서 낭독하라고 했는데 막상 편지를 쓰려고 하니 쓸 말이 별로 없더라구요. 아니 쓸 말이 너무 많았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좀 부끄럽기도 하고... 요즘 말로 오그라들기도 하고... 눈물이 날 것도 같고... 그래서 편지보다 우리 엄마의 구십 년 생을 간단하게 돌아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아서 준비해 보았습니다.

우리 엄마는 1935년 외가인 경상북도 봉화군 오그래미에서 가까운 작은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태어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본가에서는 모녀를 다시 친정인 오그래미로 돌려보냈답니다. 다행히 외갓집은 부자였어요. 같은 동네에 집을 마련해 주고 모녀가 사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논과 밭과 소와 몸종까지 보내 주었답니다. 엄마는 외갓집의 넉넉한 재력과 홀어머니의 집착에 가까운 애정 속에서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같은 혼란하고 위태로운 시대를 겪으면서도 밝고 씩씩하게 자랐답니다. 국민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는데 중학교는 여자는 많이 배울 필요 없다는 외할아버지의 반대로 가지 못했답니다. 그런 시절이었죠... 그러나 엄마의 총명함을 눈여겨 본 친척 어르신의 주선으로 야학에서 한글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답니다. 인구의 80프로가 문맹이던 시절에 한글 선생님이셨던 겁니다 우리 엄마가... 엄마의 외손녀가 지금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재직 중인데 아무래도 한글을 가르쳤던 할머니인 우리 엄마의 피가 흘러 들어간 결과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하하하...



세월이 흘러 우리 엄마도 시집갈 나이가

되었어요... 풍기읍 백동에 사는 두 살 많은 황 ㅇㅇ이라는 총각과 중매로 만나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동생이 넷이나 있는 가난한 농군의 집 장남이었죠. 꽃가마 타고 몸종까지 거느리고 시집오던 날 우리 엄마가 얼마나 예뻤는지 온 동네가 등불을 켠 듯 환했답니다. 이 사실은 당시 십대 였던 시동생의 확실한 증언이 있었답니다. 우리들의 둘째 작은아버지셨고 지난 1월 돌아가셨죠. 형수 형수 이쁜 우리 형수 하면서 엄마에게 얼마나 잘해 주시고 친절하셨는지... 지금 하늘나라에서 우리 엄마의 구순을 누구보다 축하해 주실 거예요...

엄마가 시집온 황 씨 집은 무지 가난했어요. 가난이 뭔지 모르고 아가씨 소리를 들으며 곱게만 살던 엄마는 모든 게 낯설고 이상하기까지 했답니다.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에 사는 것도 이상했고 쌀독에 쌀이 없는 것도 이상했고 하루 종일 들로 논으로 일만 하는 시어머니도 이상했답니다. 가장 이상했던 건 열 발가락이 벌어지고 휘어진 시어머니의 발이었답니다. 신발이 없어서 아니 정확히는 신발 사 신을 돈이 없어서 맨발로 다녔던 거죠... 엄마는 친정에 가서 돈을 얻어 와 검정 고무신을 사 드렸다 합니다. 시부모는 농사일도 집안일도 서툰 철없는 며느리인 엄마를 귀하게 여겼답니다. 쌀이 왜 없냐고 철없는 질문을 해도 오냐오냐 미안하다 하셨답니다. 일하기 싫다 하면 그래 그래 일하지 말아라 하셨답니다. 천성이 어질고 착하신 분들이셨다고 엄마는 기억합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하늘이 무너진 듯 섧게 울던 엄마가 기억납니다. 혼자된 시아버지를 엄마는 돌아가실 때까지 성심성의껏 보살폈던 것도 기억납니다. 여름에는 모시옷에 풀을 먹여 시원하고 산뜻하게 입히시고 두루마기와 한복의 하얀 동정은 더러워지기 전에 깨끗한 동정으로 갈아 드렸답니다.


아버지와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자주 싸웠거든요. 언젠가 중이 말하길 아버지는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좁쌀 세 톨 들어올 상이고 엄마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쌀이 가마니로 들어올 상이라고 했다네요. 그래서 엄마가 아버지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때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쌀이 가마니로 들어오는 사람이 해결하라고 외면했지요. 그 중이 던져 놓고 간 말 한마디가 싸울 때마다 엄마를 곤란하게 할 줄 그 중은 몰랐겠죠?

그래도 아버지와의 사이가 아주 나빴던 건 아니었어요. 싸움을 한 날이면 엄마와 아버지 사이에 나와 동생을 자게 했거든요. 그런데 새벽에 오줌이 마려워 깨어보면 내 옆에 누워 있던 엄마가 없는 거예요. 어느새 아버지 옆에 바짝 붙어서 자고 있는 거 있죠? 그런 날 아침 밥상 머리에서 막내동생이 이렇게 또 말하죠. 엄마 젖 만지려고 엄마 젖무덤에 손을 넣었다가 아버지 손이 잡혀서 깜짝 놀랐다고... 무안해진 우리 아버지... 식사 하시며... 어험어험... 헛기침 하시던... 올망졸망 다섯 자식과 젊은 엄마 아버지 둥그런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함께 먹던... 그 옛날의 아침 풍경이... 떠오르네요... 마당에는 개가 있었지요... 생각해보니... 우리도 엄마처럼 가난한데도 가난한 줄 모르고 자랐던 거 같아요... 항상 밝고 씩씩한 엄마 덕분에요...

우리 엄마 언젠가 돌아가시면 저승에 가서도 아버지를 만나고 싶대요... 그렇게 싸웠으면서, 우리한테 아버지 흉도 많이 봤으면서 저승까지 가서도 만나고 싶냐고 물었더니 좀 수줍어하면서 이렇게 말해요... 그래도... 영감... 보고 싶어... 부부란 참... 남들이 이러쿵저러쿵 판단할 관계가 절대 아닌 거 같아요...



엄마는 자식들에게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치죠. 우리 엄마도 예외는 아니구요... 우리 엄마가 우리에게 커다란 영향을 준 몇 사례를 돌아볼까요? 우리 형제들은 다 아는 얘기지만 여기 다른 친척분들이나 손자 손녀들은 모를 테니까요...

엄마의 큰아들, 즉 우리 큰오빠가 연애를 하다가 군대를 가게 되었어요. 우리 엄마가 이 사실을 알고 애가 탔죠. 연애하던 여자 마음 변해서 군에 있는 아들 잘못될까 봐요. 그때는 군복무가 3년이었고 여자들은 이십 대 초에도 결혼을 많이 하던 때였잖아요. 그래서 사귀던 남자가 군에 입대하면 3년을 기다리지 못하고 고무신을 거꾸로 신는 여자가 진짜 많았어요. 엄마는 군에 있는 아들 걱정에 편지를 쓰기 시작했어요. 아들이 아니라 아가씨에게요. 제발 변치 말아 달라고 얌전히 기다리고 있다가 시집오면 잘해 주겠다고 고생 절대 안 시키고 잘해 주겠다고 하루가 멀다고 편지를 보냈어요. 그런데 그 편지가 아가씨에게 바로 전달됐던 게 아니에요. 어른들 글씨체가 그렇잖아요. 읽기 어려워요. 그런 데다가 주소도 잘못 썼던 거예요. 그래서 회사에 도착한 편지가 이 부서 저 부서 옮겨 다니고 이 사람 저 사람 손을 거쳐서 아가씨에게 전달이 됐던 거죠. 그러면서 회사에 소문이 나기 시작했어요. 어느 부서에 누구는 벌써 시어머니한테서 편지가 온다고... 그것도 아주 자주 온다고... 그 아가씨에게 다른 남자들의 접근을 아예 막아버린 거죠. 엄마가 그걸 노린 거고요... 결국 아가씨는 더 이상 연애를 할 수 없게 되어 할 수 없이 오빠를 기다려서 결혼을 했다는.... 맞죠? 우리 큰 올케언니... 하하하...

둘째 아들 얘기도 해볼게요... 우리 둘째 오빠요... 둘째 아들이 서른 살 무렵 몸이 아파서 잠시 입원을 했었거든요. 시골에서 농사짓던 엄마가 올라와서 간호를 했구요. 그 병원에서 엄마는 유난히 이쁘고 착한 간호사를 발견해요. 때마침 둘째 아들이 결혼할 때도 되었구요. 엄마는 그 간호사 아가씨가 너무 맘에 드는 거예요.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아가씨를 꼬셔요. 우리 둘째 며느리 하자, 우리 아들 직장 좋고 인물 좋고 집안에 둘째고... 신랑감으로 뭐 하나 나무랄 데 없다... 눈치껏 오빠와 아가씨가 둘만 있을 기회를 자꾸 만들어 주기도 하고요... 그 간호사 아가씨... 저기 있네요... 우리 둘째 올케언니...하하하...


스무 살에 미망인이 된 홀어미가

우리의 외할머니시죠... 여든 살 후반 즈음 치매 증세가 보이기 시작해요... 그 청천병력 같은 소식을 듣고도 우리 엄마... 자식들과 살아갈 미래를 궁리해요... 우리 엄마 머리 좋거든요. 엄마(외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엄마(외할머니) 집과 논밭을 외가에서 도로 가져갈 것 같단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엄마는 오그래미 이장에게 도와달라고 설득하고 읍소해서 비밀리에 집과 논밭을 다 팔아버려요. 그 시절에는 그게 가능했던 모양이에요. 그리고 그 돈을 아무도 모르게 멀리 있는 은행에 넣어놔요. 그리고 엄마를 모시고 오죠.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외가가 발칵 뒤집어졌죠... 외가쪽 사람들이 찾아와 나쁜 년 도둑 년 하면서 돈 내놓으라고 머리채를 휘어잡고 난리가 나요... 그래도 우리 엄마 온갖 수모를 겪어 내면서 끝까지 그 돈을 지켜내요. 대단하죠 우리 엄마... 그 돈이 쌈짓돈이 되어 지금까지도 우리 생일 때마다 돈 10만 원씩 보내 줘요... 손주들 용돈도 잘 주고요... 우리가 집을 살 때나 큰일을 앞두고 돈이 아쉬울 때면 옛다 하고 돈 보태 주시고... 얼마 전 손자 이사할 때도 조금 보태 주셨고요... 이제 죽으면 장사 지낼 돈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그것보다 더 있는 거 같아요... 앞으로 십 년은 거뜬히 사셔야 하기 때문에... 우리 엄마 그만한 준비성은 있으실 거거든요... 우리 엄마니까요... 하하하...

치매 걸린 엄마(외할머니)를 모시고 와서 2년을 같이 살아요. 치매 엄마와의 2년은... 말해 뭣하겠어요... 나중엔 금지옥엽 생의 전부였던 하나뿐인 딸인... 엄마도 몰라봤대요... 외할머니를 밥상 앞에 데려 와 밥을 먹으라고 손에 숟가락을 쥐어 주면...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누구이껴? 누군데 나한테 밥을 주니껴? 참 고맙니더... 하더래요... 얼마나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요...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엄마는 화장해서 고향인 봉화 오그래미 뒷산에 뿌려요. 그 후 기일 때마다 혼자 버스를 타고 찾아가요. 외할머니를 뿌린 산등성이에 올라가서 제물을 차려놓고 엄마 나왔네... 잘 있었는가... 나 왔네... 하고 앉아 있다가 오곤 했대요. 또 세월이 흘러 다리 관절이 아프기 시작했어요. 산에 올라갈 수가 없게 된 거죠. 그래서 우리 엄마 어떻게 했을까요? 오그래미 산에 가는 걸 그만두었을까요? 아니요... 엄만 오그래미에 가서 산을 향해 걸어요. 자신의 다리로 올라갈 수 있는 데까지만 올라가서 거기에 제물을 차려요. 그리곤 산등성이를 향해 이렇게 말해요. 어매... 나왔네... 이제 다리가 아파서... 어매 있는 곳까지 올라가질 못하겠네... 그러니 어매가 나한테 오게... 어매가 날 찾아오게... 내 여기 앉아서 기다릴 테니까 어매가 날 찾아와....

그러고 앉아 있으면 저기 위 산등성이에서 바람이 쏴아아... 불어온대요... 없던 바람도 불어온대요... 바람이 불어와서 우리 엄마 늙은 얼굴을 가만가만 쓸어준대요... 그 바람이... 그렇게나 따뜻하대요... 하도 따뜻해서 언젠가는 잠이 들었대요... 날이 저물어 동네 사람들이 횃불 들고 엄마를 찾아 나선 적도 있었대요...


늙었다고 눈치 보거나 절대 기죽지 않고,

싫은 건 싫다고 분명히 말하는 우리 엄마. 아까도 우리가 준비한 옷 입지 않겠다고 얼마나 우기는지... 엄마 얼굴 붙이고 ‘오늘의 주인공은 나야 나!!’라는 글씨 넣은 저 분홍색 티셔츠요... 맘에 안 들어 안 입겠다고 해서 애먹었다니까요...

우리 엄만 불쌍한 사람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어요. 우리도 지지리 못 사는데 거지 모녀를 헛간 옆방에 한동안 기거하게 하며 끼니때마다 먹을 것을 가져다주던 기억이 지금도 나요... 아 그리고 몰래 논밭 팔아 은행에 넣어 둔 그 돈도요... 돈이 간절히 필요한 이웃에게 몰래 빌려줬다가 돌려 받지 못한 적도 꽤 있었다네요... 우리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엄마의 그 돈을 알지 못하셨어요. 철저하죠? 우리 엄마...

부처님을 믿으며 우리보다 불쌍한 사람 외면하지 않고 살면서 쌓은 그 공덕으로 우리 오 남매 지금까지 무탈하게 모두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식들 그리고 엄마의 손자 손녀들 증손자들까지도요... 그리고 우리 엄마를 아는 모든 분들, 특히 오늘 우리 엄마의 구순연에 참석해 준 모든 분들도 분명 앞으로 오래 오래 무탈하게 잘 살 겁니다.


엄마... 엄마가 우리의 엄마여서 너무 좋고... 아직도 우리에게 가끔 용돈 줘서 더욱 좋고... 하하하... 무엇보다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지금까지 우리 곁에 있어 줘서 너무너무 고맙고 감사해 엄마... 앞으로도 오래도록 건강하게 우리 곁에 있어 줘 엄마... 엄마... 정말 고맙고... 사랑해...

#구순연 #어머니 구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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