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있는 현대인의 이면에 대하여
오랫동안 기다려온 영화가 기대 이상으로 재밌을 때 느끼는 만족감은, 내 일상을 풍족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마침내'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신작 <헤어질 결심>이 이를 충족시켜줬다. 영화관에서 두 번을 보고 각본집까지 읽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뒤늦게나마 기록을 남겨본다.
영화는 크게 2부로 나뉘어져 진행된다. 1부에서 해준(박해일)의 참담한 고백으로 사실상 결별을 맞이하는 장면으로 끝나기까지는 해준의 시점 위주로 서래(탕웨이)의 모습이 그려지며, 관객은 그녀가 팜프파탈인지 아닌지에 초점을 맞추며 지켜보게 된다. 그러나 13개월이 흐른 후 이포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서래가 다시 등장하면서부터는 서래가 대상화되지 않고 공평한 시점의 주체가 되며, 박찬욱 감독은 이러한 2부의 흐름이 이 영화가 비슷한 소재의 다른 영화들과 구별되도록 만드는 중요한 포인트라고 말했다.
서래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누가 봐도 분명히 의심스러운 정황을 가지고 있다. 남편의 죽음에 그리 슬퍼하는 기색도 없고, 지나치게 침착하다. 젊고, 예쁘고, 외국인이라는 점 역시 그녀를 팜프파탈로 의심하게 만드는 장치로서 기능한다.
해준은 그녀를 몇 초 간 긴장감 속에서 응시하다가 패턴을 알고 싶다고 말하는데, 이는 겉으로는 죽은 남편의 핸드폰 패턴을 지칭하지만 그녀의 꼿꼿함에 의심 뿐만 아니라 관심을 동시에 느꼈음을 중의적으로 보여준다. 이후 이어지는 조사 과정에서 서래를 향한 그의 집요한 눈빛과 친절한 웃음, 또 잠복하며 그녀를 깊이 관찰하는 모습은 겉보기에는 형사로서 한 것들이지만 실은 그녀를 자신과 비슷한 동족으로 느끼고 점점 더 사랑하게 되는 과정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듯 태연해보이는 타인에게서 서서히 물들어가는 슬픔을 발견하는 일은 때로 위험하다. 누군가의 결정적인 곤경 속에서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는 슬픔을 이해하고자 애쓰고 있는 자신이 문득 보인다면, 그때는 내가 그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특히나 해준은 본인이 가진 직업으로부터 비롯되는 자부심이 삶의 중요한 원동력인 인물이다. 그렇기에 초반에 서래와 가까워지며 보였던 자신의 행동을 형사로서 하는 것이라고 정당화하면서 스스로를 속였을지도 모른다. 마치 영화 <화양연화>에서 주인공들의 배우자 간 의심스러운 관계가 거의 확정적인 것처럼 그려지고 이러한 정황을 빌미로 두 주인공이 은밀한 만남을 시작하게 되지만, 영화가 흘러갈수록 어쩌면 저들이 본능적으로 처음부터 서로에게 끌린 것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하여 필요에 의해 믿고 싶은 것을 믿은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처럼 말이다.
해준의 경우에는, 불륜이라는 도덕적 관념 위반에 의해 특별히 자아에 손상을 입지 않는 인물이다. 다만 그에게는 직업적 품위가 절대적이기에 그녀가 용의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필요했고, 그 사실을 믿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는 안심하고 계속해서 그녀를 좋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서래가 범인임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은 그가 그녀와 헤어져야 한다는 말과 동의어가 된다. 해준이라는 인물은 경찰로서의 자부심에서 비롯되는 품위를 지킬 수 있을 때 스스로의 자아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서래로 인해 그 품위가 붕괴되었다고 느낄 때 그는 그녀를 사랑하는 일을 중단해야만 한다고 믿는다. 직업적 자부심이 그의 연약한 자아를 붙들고 지탱해주고 있는 것이다.
서래는 헤어짐을 고하는 그에게서 이러한 연약함을 발견했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곳에 빠뜨려 아무도 못 보게 하라고 당부하는 말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을 내포하고 있음을 이해한다. 그렇게 해준이 사랑을 끝내는 자리에서 서래의 사랑이 시작되고, 정작 자신의 연약함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해준은 그가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했음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런 그가 붕괴되지 않도록 지키기 위해, 서래는 해준의 품위를 위협하는 새 남편을 살해함으로써 다시 한번 용의자의 탈을 기꺼이 쓴다. 해준이 그랬던 것처럼 결정적 증거인 핸드폰을 건네는 방식으로 그녀의 사랑을 전한다. 모래를 파고 들어가 깊이 잠길 준비를 마치고 파도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담담하다. 노을이 지는 해변을 헤매며 서래의 이름을 외치던 해준은 자신의 말 속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마침내 깨닫고, 그 자신보다도 그의 연약함을 정확하게 이해한 서래를 떠올리며 잠시 희미한 미소를 띄운다. 그런 그녀였기에 불면증에 시달리던 해준을 편안히 잠들게 했던 것이다.
긴장하지 않고도 꼿꼿하며, 유일하게 해준이 자신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이라고 여겼던 서래는 핸드폰이 아닌 자신을 깊은 곳으로 던져 아무도 보지 못하게 함으로써 스스로 미결 속에 갇힌다. 미결의 사건과 영원의 사랑 사이 그 어딘가에서 해준은 이제 잠들지 못하고 평생을 헤매리라. 초록도 같고 파랑도 같은 청록의 옷처럼, 혹은 뿌연 안개처럼 모호한 자아와 그로 인한 불안을 동시에 견디면서.
영화에서 해준과 서래는 서로의 습관을 자연스레 기억하고 따라 하며 닮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해준은 하지 않던 아침 인사를 하고, 별것도 아닌 까마귀 깃털을 고이 간직하며, 중국말을 배우고 그녀가 즐겨 쓰는 단어를 사용한다. 서래는 그의 녹음하는 버릇을 따라서 한다. 13개월만에 마주했을 때도 해준의 신발을 보고 알은 체를 하며 서로를 향한 애틋함을 자연스레 확인한다. 두 인물을 보며 소설 <흉터와 무늬>(최영미)에서 읽었던 구절을 떠올렸다. '기억은 곧 사랑이다. 사랑하면 기억한다.'
개인적으로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어떻게 변화해가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 역시 흥미로웠던 부분이다. 그의 작품 세계 초창기에는 <달은 해가 꾸는 꿈>이나 <공동경비구역 JSA>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복수 3부작을 더 중점적으로 떠올리게 된다.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속 중요한 테마인 '복수심'은 각 영화에 따라 그 온도는 다르나 소재 자체가 가진 치열함을 품고 있다. 반면에 최근작인 <헤어질 결심> 속에는 권태감이 기본적인 정서를 차지한다. 좋은 사회적 평판과 경제적 안정을 누리고 있는 중년 남성인 주인공에게, 인생의 가장 큰 고민은 불면증이다.
한 인생의 젊은 시기에는 세상의 부조리, 불공평에 대한 분노, 나보다 우월한 상대에 대한 박탈감,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열등함 같은 것들이 우리를 들끓게 한다. 또한 삶의 의미에 대해 곱씹으며 실존에 대해 고민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단순히 신체적인 노화의 과정뿐만 아니라 점차 세상의 기득권이 되어가는 과정을 내포하는 것이어서, 어느덧 분노의 대상이었던 그 위치에 서게 된다. 세상은 바뀌지 않았고, 바뀌지 않을 것이며, 무엇보다도 내 분노가 무력하다는 것을 여러 번의 반복을 거쳐 확인했다. 날카롭던 태도는 점점 둥글어져 적당히 타협할 줄 알게 된다.
그렇게 안정적인 거대한 무리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대가로 잃어버린 무언가는 형체를 알 수 없는 채 어떤 낮의 공허로, 어떤 밤의 불면으로 찾아올 것이다. 나는 해준에게서 품위 있는 현대인의 이면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