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May 15. 2024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며 생각한 것

고독에 대한 단상

   몇 달 전,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예전에 희곡을 읽은 적이 있긴 했으나 이순재 선생님의 인터뷰를 본 뒤 이번 버전의 공연을 꼭 봐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약간의 초조한 심정으로 새로고침을 눌러가며 어렵게 취소표를 잡았다. 먼 지역이라 숙소까지 잡아야했지만 홀가분한 마음이었고, 연극이 끝난 뒤에도 갑작스레 결정한 여정이 아깝지 않았다. 시간이 꽤 흐른 지금도 여전히,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몇몇의 장면이 문득 떠오르며 잠시 멈춰가게 만들어주고 있다.


   주인공 '고고'와 '디디'는 한 번도 직접 본 적 없는 '고도'라는 대상을 하릴없이 기다리며 매일을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들에게는 시간에 대한 관념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끔찍한 것이다. 어제가 오늘인지 오늘이 어제인지도 모른 채, 커다란 나무가 있는 공터에 평생을 붙박여 무의미한 대화와 행동을 하며 시간을 죽인다. 고도가 오고 나면 이런 우리의 초라한 삶이 구원받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그러는 동안 그들은 남루한 행색의 노인이 되어버렸다. 여전히 고도를 기다리는 동시에 과거의 선택을 의심하며 자살을 고민한다.

   50년 이상을 함께한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고고와 디디가 정반대에 가까운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재밌는 부분이다. 먼저 고고의 경우에는 디디와 서로 의지하며 평소 때처럼 지내다가도 문득, "우리가 떨어져 지내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회의감 섞인 물음을 반복해서 꺼낸다. 같이 같은 길을 계속해서 걸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함께 해온 세월을 의심한다. "난 불행해"라고 힘없이 말하기도 한다.

   또한 고고는 고도를 기다린다는 목적도 잊고 그 장소를 떠나려는 제스처를 반복해서 취하는데, 디디가 고도를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면 "아참 그렇지" 하며 다시 머무는 식이다. 공터를 지나가다 우연히 잠시 시간을 같이 보내게 되는 인물인 '포조'에게도 별로 수치스러워하는 것 없이 돈을 구걸하기도 한다. 자주 무력하게 잠들며, 디디에게 자꾸 꿈 얘기를 하고 싶어한다. 특유의 나른한 듯 하면서도 묘한 힘이 느껴지는 신구 선생님의 목소리와 움직임이 고고의 말맛과 성격을 잘 설명해줬다.

   반면에 디디는 상대적으로 유쾌하고 긍정적인 성격을 바탕으로 고도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일깨워 주는 인물이다. 박근형 선생님의 디디는 전에는 몰랐던 박근형 선생님의 쾌활한 모습을 알려줬다. 디디는 개가 소지지를 훔쳐먹다 맞아 죽고 무덤에 친구들이 묻어줬다는 의미심장한 가사의 노래를 방방 뛰며 유쾌하게 부른다. 반면에 고고가 자꾸 꿈 얘기를 하려는 것에는 듣기 싫다며 질색을 한다. '포조'가 그의 짐꾼으로 데리고 다니는 인물인 '럭키'를 인간답게 대우하지 않고 함부로 하는 모습을 보면,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당당히 소리치기도 한다.

   그렇지만 고도가 오지 못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려 온 '소년'에게는 제발 나를 기억해달라고, 고도에게 나를 만났다고 꼭 전해야 한다고, 고고가 잠든 사이 절박하게 부탁한다. 겉으로는 활기차 보이지만, 그 속은 되려 고고보다도 외롭고 불안한 사람임을 짐작하게 한다.

   어쩌면 고고의 말대로, 그들은 살아오는 내내 서로와 함께였기 때문에 이렇게 망가졌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고독을 홀로 감당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더라면, 서로 간 친밀하되 적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각자의 삶을 살았다면 더 건강한 '우리'가 되지 않았을까. 그들의 삶의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허무와 권태가, 무리에 속해있다는 안정감에 취해 스스로를 치열하게 탐구하지 않은 결과가 아닐까 싶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도 비슷하다. 모두가 좋은 대학/직장과 같은 특정 카테고리에 속하기 위해 노력하며 비슷한 삶의 단계를 밟아갈 때에, 안정감을 얻는 동시에 '나'를 잃어버리고 우울을 경험하기도 한다. 안정감이 주는 편리함에 속지 말고, 저마다가 어떤 무리가 아닌 개인으로서의 나 자신이기 위한 탐구를 그치지 않는 역동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이외에도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러 소재들은 저마다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극의 가장 핵심 모티프가 되는 '고도를 기다리는 행위'에 관해서는, 나의 경우 삶의 무의미성에서 오는 뿌리깊은 불안을 외면하려는 심리에 대한 비유를 담고 있다고 받아들였다. 근대에는 절대자(신)와의 관계와 전통적인 형태의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안정적으로 존재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었으나, 현대로 넘어와서는 각자의 삶이 파편화됨에 따라 존재 의미의 상실을 경험하게 되었다. 무의미는 살아있음의 가치를 의심하게 만드는 두려운 것이기에, 각자 저마다의 의미를 찾아 헤매며 살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삶이란 곧 알 수 없는 무엇(고도)을 향한 기다림의 연속이며, 이 이야기에 따른다면 그 기다림의 대상은 끝끝내 오지 않는다. 암울한 결론이다.

   각자 저마다가 그리고 있는 고도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직업을 가지면, 그 사람과 결혼하면, 승진하면, 얼만큼의 돈을 벌면, ... 삶이 행복하고 의미있을까? 고도는 마침내 내 삶에 나타나줄까? 그렇지 않을 것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아무런 희망 없이, 삶의 의미를 전면 부정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그것 역시 결론이 나타내는 바가 아닐 것이다. 저마다의 의미를 구축해나가는 일을 포기하지는 않아야 한다. 그러나 그 결과의 성취만을 바라보며 그저 견디는 것이 아니라, 결과로 나아가는 매일매일의 과정을 충실히 살아내는 것이 또 다른 면에서의 진정한 삶의 의미이며 바람직한 태도임을 일러주는 것이라 느꼈다.




   덧붙여, 극에 등장하는 '생각'에 대한 생각이 인상적으로 남았다. 고고와 디디는 고도를 기다리는 동안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위험하다며, 생각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기 위해 이런저런 놀이를 이어가기도 한다. 번갈아가며 서로에게 욕지거리를 내뱉는다거나, 누워서 쓸데없는 이야길 한다거나, 저 뒤에 서있는 나무 흉내를 낸다든가 하면서.

   요즈음 지하철을 타거나 퇴근한 뒤에, 시간을 죽이려 연이어 자동 추천되는 음악이나 쇼츠를 재생하는 것도 같은 맥락인 것 같다. 생각은 위험하다. 생각은 생의 무의미와 더불어 내가 그리 대단하지 않은 존재임을 마주 보게 만들테니까. 하지만 그런 이유로 생각을 안 하는 동안 생은 더욱 무의미해지고 나는 텅 빈 존재가 되어버린다고도 느끼고 있다. 생각의 딜레마 속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 나의 몫일 것이다.


   궁극적으로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이야기를 통해 내가 얻은 것은 고독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라고 요약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고독 속에서 마주하는 삶이 외롭고 무의미하다는 것이 괴로워서, 누군가에게 기대고도 싶고 끊임없이 성취하고도 싶고 생각을 안 하고도 싶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그 고독을 즐길 수 있을 때만이 자기 자신이 될 수 있고 궁극에 자유롭다. 기다림의 대상과 행위에 종속되지 않으면서 기다릴 수 있다.


   차가운 이야기를 뜨거운 열연으로 펼쳐낸 연극의 막이 내린 뒤, 커튼콜에서 다시 나타난 배우들은 모두가 순한 모습으로 웃음 짓고 있었다. 새삼 배우라는 일이 보편의 삶을 이야기함으로써 다른 이들을 위로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참 멋진 직업이라는 실감이 났다. 나이듦에 따라 세월의 애환을 더 폭넓은 감정으로 소화할 수 있을테니, 나이 드는 것을 반가워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열렬히 환호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도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노년의 배우들에게 힘주어 박수를 보냈다.

  


*현재 진행 중인 앵콜 공연에서는 '럭키' 역의 박정자 배우와 '소년' 역의 김리안 배우가 남자 배우들로 대체되었다. 저작권을 가진 베케트 에스테이트에서 요구한 것으로, 여배우의 연기가 극의 에너지를 소화하기에 부족했으며, 굳이 남자 역할을 여자가 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애초에 본 공연이 인기가 많아서 앵콜까지 온 것 아닌가. 에너지가 넘치는 공연을 보고 온 관람객으로서는 다소 동의하기 어려운 사유다.

작가의 이전글 잊으며 산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