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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r 10. 2022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의 괴리를 고민하는 이에게

책 <기획자의 독서>를 읽으며 생각한 것

   저자는 광고직군으로 시작해, 콘텐츠 매니저, 서비스 기획 등의 다양한 직무를 거쳐 현재는 네이버에서 브랜딩 경험 기획을 담당하고 있다. 기획 직무에 관심을 갖게 되어 유튜브에 검색한 '기획자' 키워드에 걸려 저자가 홍보차 출연한 영상을 보게 되었고, 책과 기획자의 직무를 연결지어 경험을 풀어내는 내용이 흥미로워 곧바로 책을 찾아 읽었다.


1.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어렸을 적부터 책을 좋아해왔던 나로서는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저자의 선배의 말과, 이에 크게 공감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찾고 연결 지으려는 노력은 꼭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이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1년 반에서 2년 가량 시험 공부를 하면서 가장 빈번히 찾아왔던 회의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잘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애써야 할까'하는 것이었다. 아마 특출나지는 않아도 내가 잘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기는 했다. 비슷한 시기에 시험 준비를 시작한 주변인들에 비해 열렬히 몰입했고,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으니까. 그렇지만 좋아하는 것과의 접점을 찾을 수 없는 일을 향한 열정은 쉽게 연료가 닳는다는 것을 시작할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시험준비를 지속하면서, 이 직업을 통해 내가 구체적으로 해나갈 일들에 대한 기대가 사그라드는 것을 느낄 때 꽤 혼란스러웠다. 그저 삶이라는 한정된 시간과 공간 안에서 추구해야 하는 막연한 '가치'에만 오롯이 집중해서 쉽게 진로를 확정지어버렸던 것 같다.

   그러나 하루하루를 살아갈수록 깨닫는 중요한 진실은, 삶은 추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구체적이어야 한다. 1년 뒤가 아니라 지금이어야 하고, 선동이 아니라 실천이어야 하고, 막연한 느낌이 아니라 정확한 한 문장이어야 한다. 시험을 그만두면서 내가 가졌던 몇 개의 결론 문장 중 하나는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반드시 직업이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진로에 대한 내 생각을 완결된 글로 표현하는 날이 언젠가 오겠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열매가 알맞게 익어 수확의 계절을 맞이하는 것처럼, 나 역시 시간이 지나 객관적으로 거리를 두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면 언젠가 내가 만족할 만한 완결의 글을 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때는 아마 내 젊음의 한 시절을 마무리하고 다음 시절로 넘어가는 시점이리라. 물론 간간이 생각나는 것들을 기록해두기는 할 것이다.



2. "책을 읽지 못하는 게 더 위험하다고 생각할 거예요"


   저자가 파리 국제 도서전에 참여하기 위한 출장길에서 겪은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다. 오랜 시간 애정을 가지고 기획한 행사가 2015년 11월 파리 도심 테러로 인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마음 한 켠의 불안을 가지고 있던 저자에게, 프랑스어 통역을 담당하던 한 유학생이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걱정 마세요. 아직 프랑스 사람들이 얼마나 책을 사랑하는지 모르셔서 그래요. 아마 이 사람들은 책을 보지 못하는 게 테러보다 더 위험하다고 생각할 걸요?"


   실제로 도서전은 매우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약 4일 간의 일정 동안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녀갔으며, 심지어 일부 학교는 아예 휴교를 해 학생들이 모두 도서전에 참석하도록 했을 정도이다. 테러범 일부가 여전히 파리 시내에 있다고 보도되는 와중에 이렇게 성공적으로 도서전이 진행될 수 있다는 것에 기쁨과 더불어 의구심을 가진 저자는 현지 기자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를 질문했고, "비겁한 폭력에 대응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이 우리의 일상을 파괴할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책에서 말하는 포인트는 파리 사람들이 이만큼이나 책을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이 사례를 통해 일상이 가진 의미는 이렇게나 특별하다는 것을 새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테러와 같은 외부의 부당한 폭력이, 다른 경우에는 나의 위태로운 내면이, 내가 가장 믿고 의지했던 사람이, 내가 오랫동안 품어왔던 희망들이 내 마음을 속절없이 무너뜨리는 순간들이 있다. 주저앉되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1)걷고, 2)무언가를 읽거나 쓰는 것. 이 두 가지 습관을 통해 최소한의 일상을 지켜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힘든 일들은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이며, '나'를 무너뜨릴 수는 없다는 것에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게 해주기 때문이다. 책을 읽지 못하는 게 더 위험하다는 말은 내 삶에서 나를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단단한 사람의 위엄을 내포한다.


3. 인생의 정오표


   정오표에 담긴 의미를 인생 전반에 적용하여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던 점도 좋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지금까지 흔히 보아온 정오표들은 그저 약간의 짜증을 유발하는 종이조각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민했던 대입시절 문제집에 있던 정오표, PSAT을 풀던 시절 강사들의 수많은 모의고사에 딸려오는 정오표가 달가웠을리 없다.

   저자가 일본의 한 서점을 방문했을 때 정오표가 붙은 책이나 그 내용을 반영한 개정판을 모아놓은 섹션을 발견하고 이상함을 느꼈다고 한다. 화려한 신간, 스테디셀러만을 적극적으로 홍보해도 부족할 판에 틀린 내용을 바로잡은 책들을 모아 굳이 특별 코너를 만든다는 것이 낯설기는 하다. 그곳에는 문제집 같은 기술 서적이 아니라 소설 종류들이 있었고, 심지어 20년이 된 작품도 있었다고 한다.

   일본 출판계에서는 책이 이미 출간된 이후에도 시간이 흘러 시대 상황과 맞지 않는 표현이 없는지 지속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한 직업윤리로 여겨진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정오표에 대해 설명하는 출판사 관계자는 정오표의 매력을 '수정 전'과 '수정 후'의 표기하는 비중이 같다는 것으로 꼽는다. 저자는 이러한 소개를 통해 기획자로서의 영역에서 완벽주의에 매몰되지 않겠다는 다짐을 보인다.

   지금 내 삶에는 어떤 식으로 적용할 수 있을까? 나 역시 무언가를 부지런히 써오긴 했다. 지금은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수정해야 할 부분들을 꼼꼼히 살피는 중인 것 같다. 인생의 정오표가 발행되고 있고, 발행자로서 나는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다. 최선을 다해 정오표를 만들지만 아마 앞으로 몇 십 년을 걸쳐 몇 번이고 수정될 것이라고, 그렇게 영원히 미완성일 지금의 모습도 충분히 소중하다고. 그 말은 곧 당신이라는 책도 지금 이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자주 살피며 조금씩 더 나아지면 된다.





   생각 그 자체가 담긴 부분들보다 여행지에서 경험한 사례나 구체적인 인용구를 가져와 말하는 부분들이 더 좋았다. 기획을 꿈꾸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가볍게 읽기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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