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마지막 날에
2월의 마지막 날, 새로운 진로와 관련된 책을 빌리러 오랜만에 학교에 갔었다.
그 사이 하루키 샌드위치를 팔던 넓직한 북카페는 사라지고 반쪽짜리 간판과 잔해들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나머지 반쪽의 공간은 새 것의 느낌이 물씬 나는 베스킨라빈스가 차지하고 있었다. 곱창집은 쭈꾸미집으로, 우거지국 가게는 설렁탕집으로 바뀌었으며, 인기 많던 2층의 돈까스 가게는 학교 앞을 떠나 도심으로 자리를 옮겼다. 의외로 살아남은 함박스테이크집과 작은 개인 카페들은 그곳에 있었다.
도서관 앞에는 2년 사이 보편화된 전동 킥보드를 위해 임시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2년 전만 하더라도 저걸 타고 다니면 모두가 쳐다보면서 쳐다보지 않는 척을 하고, 타는 사람은 모두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것 같다고, 나는 적어도 학교에서는 저걸 절대 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들어간 도서관은 여전히 리모델링이 진행중이었고, 그나마 새로 탄생했다고 알려진 공간마저도 옛 모습과 그리 달라보이지 않았다. 익숙하게 밀려오는 오래된 책 냄새를 느끼면서, 몇 층에 걸쳐 책장 가득 꽂힌 이 세상의 수많은 책들을 다 읽고 싶다는 단순하고 밝은 욕심이 들었다. 학교 주변의 풍경과 내가 처한 상황은 2년 전에 비해 꽤 달라졌지만, 여전히 그리 세련되지 못한 도서관의 외양과 또 여전히 무모하게 밀려들어오는 나의 독서 의욕에 웃음이 났다.
예전이라면 절대 읽지 않았을 법한 책들을 부지런히 고르고 도서관을 나서니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느긋하게 앉아있었다. 그 고양이를 물끄러미 보는데 내 뒤를 따라나온 중년의 남성이 아이에게 말을 걸듯 고양이의 관심을 끌며 다가갔다. 늦은 오후의 겨울, 도서관 앞의 그 풍경이 정겹게 느껴져 다시 웃음이 지어졌다.
정문 앞에서 탄 버스 안에서 한 명 한 명의 승객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네는 기사님을 보았다. 마스크를 내린 채 투박한 말씨로 크게 통화하는 중년 남성 승객이 있었고, 기사님은 마스크를 올려달라고 호소하셨다. 통화에 몰두해 기사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그는 여전히 마스크를 하지 않은 채로 계속 통화를 했고, 빨간불이 들어온 사이 기사님은 그에게 다가가 짜증을 누르며 예의있게 말을 전하셨다. 성격이 나쁜 분은 아니셨는지 바로 통화소리가 들려오지 않고 버스 안이 잠잠해졌다.
어느 가능성을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가능성을 포기한다는 의미였기에, 겨울 내 복잡한 고민의 시간을 보냈다. 마침내 그 겨울의 끝자락에 다시 돌아와 마주하게 된 서울의 풍경.
버스는 한강 위 도로를 달리고 있었고, 저 멀리 강물 위로 노을의 흔적이 흘러가고 있었고, 내 가방은 생소한 책들로 가득했다. 덤덤히 시선을 어딘가로 던지고 있는 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