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동행하는 삶
몽마르트에 오기까지 30년이 걸렸습니다 (toss.im)
요새 이런 저런 플랫폼에 관심을 뒤늦게 가지기 시작하면서, 불과 방금 10여 분만에 너무 좋은 글과 노래를 찾았다. 너무 좋은 것을 알게 되는 기쁨이 올 때는, 동시에 지금도 내가 놓치고 있는 너무 좋은 것들이 이 세상에 많을 거라는 예감이 안겨주는 약간의 불안감도 함께 온다. 이렇게 아주 사소한 영역에서조차 불안은 나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사이좋게 동행하며 살아갈 방법을 평생 고민해야 할 것이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하길, 불안은 곧 자유의 가능성이기도 하니까.
내가 알아온 내 세상과 나 자신의 가능성이 참 좁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렇지만 내가 아는 세계는 그렇게 설정되어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도 생각한다. 한 사람의 인생의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10살에서 12살 사이, 삶은 이미 기대나 즐거움 같은 단어가 어울리는 긍정적인 곳이 아니라 구차하고 불공평하고 예기치 못한 불행이 갑자기 일어나는 곳이라는 생각이 자리잡았다. 14살 무렵부터 창작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빠져들었지만, 그 전에 이미 현실의 쓴맛이 기본값으로 설정되어 있었기에 재미를 추구하는 욕망을 그리 어렵지 않게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10년 즈음 흘러, 내려놓았던 욕망을 슬그머니 다시금 집어들게 된다.
좋아하는 걸 하고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데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기 위해 직업을 얻자니 그 과정이 너무 치열하게 느껴지고, 좋아하는 걸로 돈을 벌거나 타인의 인정을 구하자니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그리 잘하지도 못한다. 사실 예상되는 불안들을 감내할 만큼 간절하지 않기 때문이며, 그것이 유일하게 삶에서 의미있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좋아할 수 있으면서도 의미있는 것의 절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 있다. 이것으로 직업을 갖고, 그 소득으로 또 다른 내 삶을 구축해나가야겠지.
대책 없고 불안한 20대이지만, 실은 마음이 편안하다. 스스로 변화를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들여다보며 내 삶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내가 여전히 성장하는 존재라는 것이 기쁘다. 단출하지만 맑은 문장들을 써내려가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