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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r 08. 2022

당신에게 창작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가요?

첫 글을 쓰다

수능이 끝난 이후부터 나름대로 꾸준히 블로그를 통해 기록을 해왔다. 책을 읽으면서는 인상 깊었던 구절들을 주로 옮겼고, 영화를 보면서는 대부분은 짧게 가끔은 나름대로 긴 감상평을 남겼다. 때로 특정 단어나 테마에 대한 단상을 기록하기도 했고, 그외의 다른 개인적인 일기는 비밀글로 썼다. 일기는 주로 이런 저런 일들로 지칠 때 무너지지 않으려고 썼다. 힘든 기억들을 그나마 문장으로 만들어 밖으로 꺼내놓아야 다시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생각은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다.


나름 몇 년 동안 축적된 기록을 가지고 있었던 덕에, 호기심으로 작가의 서랍에 몇 개 작성해두었던 글과 블로그 주소를 첨부하여 신청 이틀만에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었고 꽤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경험했다. 점점 나이가 들수록 타인으로부터 소소한 인정을 얻기가 어려운데,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이를 효과적으로 포착했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인정이 글을 쓰게 하는 동기가 되고, 쓰는 행위가 지속되어 나와 타인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외에도 원래부터 글을 사랑해왔던 사람이라면 내심 작가가 되고 싶은 욕망을 남몰래  번쯤은 품어보았을 것인데, 그러한 마음을  이해하는 서비스이기도   같다.  역시 글을 읽을 줄도 모르던 시절부터 책을 잠자리 옆에 쌓아두고 읽어달라고 고집을 피우던 어린 시절을 거쳐, 다양한 이야기들의 성실한 독자로 살아왔고 언젠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글뿐만 아니라 영화, 음악, 사진  나를 매혹하는 분야가 있다면,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을 넘어 창작자가 되고 싶은 꿈을 가져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대상에 애정을 가지게  계기와 욕망의 구체적인 내용은 모두 다를지라도, 그러한 욕망을 가지게 되는 것이 보편적이라는 사실을 흥미롭게 느꼈던 때가 있다. 직업으로 창작자가 되는 것에 대해 일찍이 단념하고 전혀 상관 없는 학과에 다니면서도 개인적인 아쉬움을 달래고자 소설창작수업을 기웃거리던 스물  살의 시절이다.


  여름방학에는 친구와 둘이 캄보디아에 갔었고, 해외봉사라는 명목으로 갔지만 딱히 우리가   있는 일이 없었기에 그곳에 계신 분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3 정도 머물렀다. 신부님들과 봉사자분들께서  떠밀어 주신 덕에 주말에는 여기 저기 유명한 곳에 다닐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앙코르와트에 가서 일출을 보고    당시에는 피곤해서  몰랐지만  어마어마한 크기의 창작물에  압도되었던 모양이다. “사람은  창작을 할까?”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모르는 사이 자라나고 있었다.


여름이 지나 가을학기가 되었다. 나는 중학생 시절부터 노래방 18번이 'rain' 정도로 이적이라는 가수의 오랜 팬이었는데, 우연히 혜화에서 주최하는 문학주간의  세션에 그와 심보선 시인이 함께 참여하는 행사를 알게 되어 운좋게 마지막 자리를 예매해서 가게 되었다. 당시 근래에 심보선 시인의 시집을 처음으로 읽었던 터라 타이밍이 좋다고 생각했다.

특별히 짜여진 형식 없이 청중들로부터 이런 저런 질문을 받으며 대화를 이어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소규모의 인원들로 이루어져 모임에 참석한 듯한 느낌을 주었다. 언제 이런 기회가 오겠나 싶어 용기를  손을 들었고(나서지 않으려 하지만 가끔 이러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다) "본인의 젊은 시절,  지금의 삶에 있어서 창작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대해 물었다. 각자의 분야에서 창작자로 성공한 그들의 생각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심보선 시인은 창작은 어디에서도 경험할  없는 '자유' 느끼게 해준다고 답했다. 가수 이적은 창작이란 '재미' 의미가 강했다며, 창작을 고통으로 여기는 동료 뮤지션이 그런 자신을 약간 얄밉게 여기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후에 시간이 흐르면서는 좌절감과 즐거움, 고뇌하는 예술가와 어린 아이, 인정욕구와 자기확신 같은 양면성을 느끼게 하는 복잡함이  창작인  같다고 답했다.




 


그리하여 이제 마지막 문단이다. 창작하는 행위란 곧 내가 살아가는 삶을 정확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이고, 그 태도는 나를 자유롭게 하며 궁극적으로는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 믿음이 있기에 이 첫 글을 쓴다. 나를 포함하여 창작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무언가라도 한다면 모두가 창작자이다. 아주 작은 것에 대한 소박한 사유, 미약한 실력에 불과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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