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간 시간만큼 나도 흘러간다.
2023년 2년 차 교사 일기를 다시 읽은 오늘, 나는 6년 차 유치원 교사가 되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브런치가 나의 대나무 숲과 같은 곳이라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던 나의 마음속 속상한 이야기를 여기서 풀곤 했는데, 어느 순간 나는 풀어야 할 마음속 이야기들이 없었다.
바로 연애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동료 교사의 소개로 받은 소개팅으로 나는 남자친구가 생겼다. 그런데 너무 나랑 잘 맞는 남자친구를 만나버려서 유치원에서의 이야기를 글로 쓸 필요 없이 조잘조잘 말로 풀어갈 수 있게 되었다. 당연히 연애하느라 바빴다.
결국 나는 결혼도 했다.
"뭐든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대기업을 10년째 다니는 사촌 오빠가 항상 하던 말이다. 이전에 만나면 오빠한테 원래 사회생활이 이런 거냐고 물어볼 때가 많았는데 "버텨라!"라는 말만 주구장창 들었다.
시간은 너무 정확해서 빠르게 흐르지도 느리게 흐르지도 않고 제속도에 맞춰 흘러간다.
그런데 다행인 건, 멈추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유치원을 다닌 지 정말 5년이 지나, 이젠 6년 차에 발을 올려놓았다. 유치원에서 이제 나는 원감 선생님 다음으로 가장 근속 수가 많은 교사가 되었다. 굉장히 잘 버티고 있다.
지금의 나는
출근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결국 내가 일을 잘 처리해 낼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일 년, 일 년 지낼수록 유치원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 것이라는 예측 가능한 상황이 나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 같다.
실수에도 더욱 관대해진다. 회사 일에는 결국 완벽한 사람은 없으며 누구나 실수를 하지만 그 실수를 잘 처리만 한다면 된다는 것도 알 것 같다. 당황하지 않고 어떻게는 해결하자,
학부모님들이 반갑다.
5년이라는 시간을 치면 나는 이제까지 140명의 어머님들을 만나보았다. 물론 아버님들,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한다면... 더 많아지겠지만, 정말 다양한 상대들을 만나다 보니, 편안한 부모님, 까다로운 부모님, 이상한 부모님 등 각각의 부모님을 상대하는 나만의 데이터들이 쌓이고 쌓인다. 물론 까다로운 부모님과 이상한 부모님을 만나면 만날수록 사람 대하는 능력치가 만렙이 되어가는 것 같지만, 덕분에 그 기술로 지금껏 큰 컴플레인 없이 교사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람 상대하는 기술도 직접 겪어봐야 안다.
업무처리 속도가 빨라졌다.
너무나 운 좋게 같은 행정 업무를 맡아서 계속하다 보니 이제는 너무 쉽다. 숫자를 잘 못쓰거나, 오타가 나는 등의 실수는 여전하지만 업무의 강도가 현저히 낮아졌다. 업무 때문에 야근은 하지 않는다. 중간중간 새로운 업무가 튀어나와도 여유 있다.
아이들이 사랑스럽다.
조잘조잘 거리는 이 작은 거인들이 예전에는 너무나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이 작은 생명체를 데리고 잘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이 힘들었지만, 지금은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이 아이들이 어떤 놀이를 하면 즐겁게 배울 수 있을까 하는 고민과 함께 사진도 많이 찍어주고(진짜 예전에는 사진 찍는 것 자체가 너무 싫었다.. 나는 사진 기사 아니에요.. 하고 부모님들께 시위하고 싶었지만) 아이들을 한번 더 안아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오후 6시 이후 나는 오로지 내가 된다.
할 일 끝나면 6시에 퇴근해서 자전거 타고 나의 집으로 돌아가는 그 순간부터 나는 교사가 아닌 내가 된다. 남편이랑 저녁밥 먹고 크로스핏 가서 땀나게 운동하고 온다. 짜증 났던 날에는 더 열심히하고 온다. 그러고 샤워하고 침대에 누워 핸드폰 게임하면서 남편이랑 이런저런 얘기, 시시콜콜 얘기 나누다 잠든다.
시간은 정말 해결사다. 힘든 일도 좋은 일도 흘러 흘러간다. 나도 그렇게 잘 흘러가고 있는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