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속 미술사, 발자취를 따라가다

ICOM Italia, <나치 및 파시스트 시대의 소장 이력 연구>

by 안수진

들어가기에 앞서,

ICOM은 국제박물관협의회(International Council of Museums)의 약자로, 전 세계 박물관과 박물관 전문가를 대표하는 비정부·비영리 국제기구이다. 1946년 파리 루브르에서 창설되었고 현재 본부도 파리에 있다. 유네스코와 공식 협력 관계를 맺고 있으며, UN 경제사회이사회(ECOSOC)와 협의 지위를 갖는 국제 NGO이다.

- 이 글은 세미나의 단편일 뿐 세미나 전체를 시사하지 않는다 -


<나치 및 파시스트 시대의 소장 이력(프로비넌스) 연구>

1938~1945년 사이 이탈리아에서 유대인에게서 박탈된 문화재를 연구·조사한 최근 박물관/사적 사례 연구 세미나.

연사는 총 두 팀이었다. 첫 번째 연사는 1945~2001년 사이 이탈리아에서 유대인(혹은 단체)에게 반환된 문화재에 대한 조사였고, 두 번째 연사 팀은 전쟁 기간 이탈리아 유대인에게서 약탈된 문화재 사례 연구를 발표했다.

SE-eb51875f-ab72-41dc-ab14-fdad16aec938.jpg?type=w773 "2조 유로의 자산이 유대인들에게서 강탈 당했다. 파시즘은 정부 채권부터 칫솔까지 모두 빼앗아 갔다. 인종차별주의는 다시 돌아올 수 있다"

이탈리아의 세계대전, 홀로코스트, 식민지 정책 등의 범죄를 국민적·역사적 책임으로부터 희석시키는 자기 면죄적 성격이 있는 “Mito degli italiani brava gente (선량한 이탈리아인 신화)”를 반박하는 상징적인 자료들이 인상 깊었다.


1938년 외국 국적 유대인들이 인종차별 법으로 인해 이탈리아를 떠나야 했을 당시 요청한 자신 소유의 예술품 수출 허가 요청서부터, 약탈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작성된 이탈리아 관보에 공식적으로 남아 있는 약탈품 목록까지 소개되었다. 한 유대인의 약탈품 목록을 보면서 눈물이 났다. 국가가 뺏어간 재산은 고작 짐가방 1개였으며, 그 속에는 재킷 하나, 잠옷 하나, 수건 하나, 속옷 하나, 장갑 한 짝, 신발 두 켤레, 빗과 개인적 물품처럼 아주 사소하면서도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이 들어 있었다.

반환 사례들도 소개되었지만, 제대로 된 반환이 이루어지지 않아 결국 국가에 귀속된 것들이 많았다.


또한 이탈리아 법이 약탈한 유대인의 재산 보호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그 변화를 살펴보았다.

여기서 독일과 이탈리아의 차이점은, 돈을 주고 정당하게 구매한 유대인의 재산일지라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독일 법령에 반해, 이탈리아는 제3자가 돈을 주고 산 경우 “모르고 그랬을 가능성”과 “정직한 구매”라며 합법적 취득을 인정하는 법이었다는 점이다. 이는 선량한 이탈리아인 신화와 이어지는 부분 같다.

그중에는 1998년 창설된 Commissione Anselmi 법령이 있었다. 이탈리아 정부가 전후 처음으로 국가 차원에서 나치-파시스트 시기 유대인 재산(미술품, 문화재) 약탈을 조사·규명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으며, 티나 안셀미Tina Anselmi를 의장으로 선출했다.

SE-351003d2-5efd-44ac-abce-05229a38f27f.jpg?type=w773

티나 안셀미 Tina Anselmi (1927~2016)

이탈리아 북부 파도바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1994년 9월 나치-파시스트의 죄 없는 포로 31명의 교수형을 목격하고는 본격적인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게 된다. 위에서 언급한 1998년 창설된 Commissione Anselmi 법령의 의장이기도 하며 위와 같은 말을 남겼다. (아래 한글 번역)

"유대인의 재산 박탈과 그 반환이라는 문제에서 물질적 측면은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본질은 아니다. 재산 박탈은 돈의 문제가 되기 이전에, 궁극적으로는 도덕적 말살을 거쳐 절멸로 나아가고자 했던 박해였다. […] 이는 출생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우리 사회의 일부 구성원을 폭력적으로 고립시킨 차별적 법과 규정의 집행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 어떤 역사도 남녀가 일상 속에서 겪어야 했던 불안과 굴욕, 그리고 빈곤의 무게를 온전히 담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분명히 말하자면, 바로 이것이 우리가 갚아야 할 빚이다."

SE-53150085-d90a-4866-a8b5-a3e2ecace033.jpg?type=w773

두 번째 연사 팀(2020년 문화재/관광 장관 명령으로 설립된, 1938~1945년 이탈리아에서 유대인으로부터 인종차별 법 제정 이후 약탈된 문화재/개인 재산 연구 및 조사 작업 그룹)의 발표도 흥미로웠다.


연구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이탈리아 인종 법이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먼저 짚고 넘어갔다. 1938년부터 1943년까지의 파시스트 법령은 (유대인 소유의 국가 예술 유산 보호 조치라는 명목하) 주로 유대인 소유 문화재의 수출을 어렵게 하고, 이를 단념시키는 데 초점을 두었다. 1943년부터 상황이 달라지는데, 유대인 또는 기관이 소유한 예술, 고고학, 문학, 역사 등의 모든 자료를 소유자가 직접 신고하게 하고, 이를 행정 구역에서 압수하도록 규정한 법령이 승인된 것이다. 이 법령은 이탈리아 관보에 게재되지 않았고 시행되지 않았으나, 법령 제안자인 장관은 이를 시행하도록 명령했고, 관청들은 사실상 시행을 시작하여 유대인 소유 예술품을 몰수하기 시작했다. 이후 예술적·역사적 가치가 있는 동산 및 부동산은 판매에서 제외되고, 필요시 예술국으로 이관되어야만 했다. 이 또한 선량한 이탈리아인 신화에 반하는 증거라 할 수 있다.

1280px-Jan_van_huysum%2C_vaso_di_fiori%2C_1700-40_ca._01.jpg
fig.2-Particolare-Maddalena.jpg
(왼) Jan van Huysum, Vaso di fiori, 1720-40 ca. / (오) Luca della Robbia, Maria Maddalena

이들 역시 반환된 문화재에 대한 사례를 보여주었는데, 하나는 1943년 독일 육군 하사가 이탈리아에서 빼앗아간 네덜란드 화가 Jan van Huysum의 그림이 2019년 우피치로 돌아온 경우였다. 또 다른 사례는 과거 뮌헨 갤러리에 매각되었던 Luca della Robbia의 테라코타 마리아 막달레나가 괴링에 의해 약탈되어 우피치에 전시되어 있었으나, 2020년 원래 주인의 후손들에게 반환된 경우였다.

A_Lonza-Suonatore-di-flauto_INV-337-909x1024.jpg Antonio Lonza, Suonatore del fluto, XIX-XX sec.

다른 사례로는, 1945년 트리에스테 주변 소도시의 어느 집 다락방에서 화가 안토니오 론차의 플루트 연주자 그림이 발견되었다. 독일군에게서 강탈된 후 소유자 이름 없이 우디네 시민 박물관에서 보관되었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소유자 미상과 반환 요구자가 없다는 이유로 계속 박물관 컬렉션 일부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최근 아카이브 연구를 통해 그림의 소유자가 트리에스테에 정착했던 유대인 가문 브루너 가문임이 밝혀졌으며, 상속인들에 의해 우디네 시에 정식 기증되었다.

Etichetta-applicata-sul-retro-dei-dipinti-1024x730.jpg 그림 뒤편

그림 뒤편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유대인 소유 회화 작품. 1945년 4월 3일, 아드리아 해안 지역 독일 최고위원 사무국의 문화재 보호국에 의해 박물관으로 이송됨. (작품을 찾아갈 사람은 나타나지 않음)”


이 외에도 유대인이 소유했던 그림의 발자취를 아카이빙을 중심으로 따라가보는 연구부터 여러 문화재 반환에 관한 예시들을 볼 수 있었다.

두 번째 연사 팀이 이탈리아 문화부의 명령으로 만들어진 그룹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재정적, 물질적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네트워크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두 통의 편지와 함께 정식 초대장을 관련 정부처에 보냈음에도 회신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문화부, 즉 이탈리아는 1998년 워싱턴 원칙 (나치에 의해 몰수된 미술품의 반환에 관한 원칙을 담은 성명)에 서명했으나 지금까지도 활발한 재정적 지원이나 - 1998년 제정된 Commissione Anselmi 법령이 2001년 최종 보고서를 마지막으로 작업을 마무리한 것 외의 정부적 지원을 뜻함 - 정식 반환 위원회를 설립하지 않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볼로냐 대학교 학사를 졸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