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는 삶!

7강 강렬한 첫 문장으로 독자를 홀려라

by 수련

거울 앞에 선다. 평소엔 입지 못하는 화려한 오렌지색 끈 실크 원피스를 입는다. 어깨를 감싸는 고운 감촉 위로 체크무늬 박스형 긴 셔츠를 툭 걸치고, 커다란 꽃무늬 가방에는 매혹적인 금빛 아이섀도와 도톰하고 반짝이는 입술을 위한 립글로스를 넣었다.


작은 소품이지만, 조명아래서 나를 화려하게 빛내줄 아이템이다. 친구의 차를 얻어 타고 시내 쪽으로 달린다. 거리는 가로등이 하나 둘 밝혀지고 가슴 깊은 곳에서 두근거림이 일렁인다. 마치 내가 아닌 또 다른 나를 깨우는 주문을 외우며 다른 세상의 문을 향해 달린다.


30여 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무심한 회색 2층 건물. 평범한 건물의 무거운 문이 밀리는 순간, 조금 어둡고 따뜻한 조명 아래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 바닥을 타고 번지는 색소폰의 온기, 심장을 밀어 올리는 비트. 나는 셔츠를 의자에 벗어 내려두고 첫 파트너를 기다린다.


경쾌한 리듬의 전주가 흐르고, 누군가 미소 지으며 손을 내민다.

“셸 위 댄스?”

그 손을 잡는 순간, 차차차의 리듬 속에서 망설임이라는 감정을 잃어버린다.


춤과의 첫 만남은 우연이었다. 동네 문화센터 여행 영어반 수업을 마치고 나오다, 옆 건물에서 흘러나오던 팝송 ‘Chilly Cha Cha’가 우리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5명의 동아리 친구들은 우르르 몰려갔다. 빼꼼히 문을 열자 뜨겁게 달궈진 공기, 리듬에 몸을 맡긴 사람들, 건강미가 넘치는 예쁜 강사가 일시에 바라본다. 그리고 낯익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그녀가 외친 말.

“살림에 지친 주부들에게 이만한 해방이 어디 있어요!” 운동하러 나오라는 그 말은 나를 오래 붙들었다.


나와 친구들은 허리와 가슴이 구분이 안 되는 몸을 곱게 유지한 아줌마들이다. 댄스를 하면 강사처럼 멋진 몸매가 될 수 있다는 꿈을 꾸며 친구 5명이 의기투합하여 접수를 했다. 스포츠 댄스반 처음 시작부터 차차차 스텝은 쉽지 않았다. 거울 앞에서 머리는 이해가 되는데 몸이 꼬이는 스텝에 웃음만 새어 나온다. 한곡이 끝나는 3분의 시간 엉망으로 따라 하며 손 발이 따로 노는 어설픈 동작에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내가 춤을 추다니.’ 그 놀라움이 점점 즐거움이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리듬이 두려움을 밀어냈고, 음악이 나를 계속 일으켜 세웠다.


3개월의 기초반을 지나 중급반으로 옮기자 춤은 취미가 아니라 일상의 패턴처럼 변했다. 다이아몬드 스텝, 브이 스텝, 줌바의 역동, 탱고의 밀도, 왈츠의 회전. 땀으로 번지던 순간들 사이에서 살아 있는 ‘나’를 다시 발견했다.

댄스교실을 다닌 지 2년이 되던 해 우리 팀은 12월 일 년을 마무리하는 청소년 문화축제에 초대를 받았다. 청소년 문화센터 가장 큰 은하수 홀에서 검은색의 반짝이 댄스복을 입고 댄스슈즈를 신고 화려한 눈 화장을 하고 무대에 섰다. 학생들의 환호와 가족이 건넨 꽃다발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박수 소리는 오래된 내 자존감의 문을 두드렸다.


주 1회 하는 문화센터가 성에 차지 앉는다며 시내의 댄스 교실로 가끔 원정도 다닌다. 춤출 때면 내 안의 응축된 감정이 결을 풀어냈다. 파트너와 손을 맞잡을 때마다 새로운 용기가 피어났고, 리듬에 몸을 맡길 때마다 삶의 어둡던 조각들이 부드럽게 녹아내리고 몸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그 시절 나는 밥을 하면서 주방에서 원 투 차차차 스텝을 밟고, 거실통유리문을 거울삼아 나만의 공연을 열며, 하루를 춤으로 연결 짓던 사람이었다. 잠을 자면서도 꿈속에서 스템을 밟았다. 화산의 용암처럼 불꽃같은 춤과 함께 생활한 2년을 잊지 못한다.


20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 요가 매트 위에 스트레칭으로 숨을 고르며 그 시절을 떠올린다. 아줌마들의 끼로 똘똘 뭉쳐 2년 동안 함께 춤을 배우던 친구가 그립다. 스텝 하나하나가 열정으로 에너지를 발산하고, 리듬이 나를 다시 살아나게 하던 순간들 다시 춤을 추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속으로 중얼거린다.

‘문화센터 시니어 라인댄스를 등록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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