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들에 대한 서평

Les choses - Gorges Perec

by Editor C
9788901181073.jpg 이미지 출처 : 교보문고


이 짧은 소설에 회피형이 겪는 인생의 모든 여정이 있다.

독특한 필자의 문체는 무서울 정도로 신랄하고 냉랭하다.

블루 재스민과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봤던 불쾌감, 공포감.

막연한 이상주의가 얼마나 허황되는 망상인지, 애써 외면했던 현실을 눈앞에 들이민다.


1960년대 프랑스. 젊은 연인 제롬과 실비는 취업에 힘을 들이는 대신 여론 조사업 같은 임시직을 전전하며 친구들과 매일 밤 술 마시며 하루하루 젊음을 소비한다. 그래도 언젠가 그들의 삶은 잡지나 광고에 나오는 사물들로 꾸민 아파트를 욕망한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 그들의 현실은 점점 불만으로 가득 찬다. 도망치듯이 파리를 벗어나 도망치듯이 튀니지에서 시작한 그들의 새 삶은 어땠을까.


그리고 여기 2020년대의 지금, 어째서 물질적인 행복에서 여전히 벗어날 수 없는가. 잠깐의 순간일 풍요에 모든 시간을 할애하고, 금방 사라질 유행에 목맨다. 그만큼 이러한 물질적 욕구는 범시대적인, 범인류적인 것인가. 그러나 동시에 허황되고 황폐한, 그리고 순간의 것에 불과하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을 수 없다.


Gen Z라면 제롬과 실비의 모든 욕망이 공감될 것이다. 청춘은 즐기고 싶고, 애매한 돈을 받으면서 청춘을 바치고 싶지는 않고, 내가 원하는 욕망은 애매한 풍요가 아닌 확실한 물질적 풍요이기에 일확천금이 어느 날 갑자기 떨어졌으면 좋겠고, 노력 없이 얻어지면 좋겠지만 노력하지 않으니 현실은 비참하고,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회피하며 버티다가 괜찮아 보이는 다른 현실로 도망치면, 예전의 비참함이 나은 것 같으니 또 돌아오고, 그리고 또다시 비참함을 느끼며 또 한 번 후회하고. 그렇게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현실은 나에게 오지 않은 채 어영부영 살다가 인생이 끝날 것이다.


제롬과 실비는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 작가 후기 중에서


우리는 그렇게 계속 행복하기를 갈망할 것이다. 살아남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싶은 디스토피아 세계에서도, 언제나 인간은 희망을 품는다. 행복을 꿈꾸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정당하다. 허황된 물질적 풍요를 꿈꾸면서 자기 인식과 노력이 부재한다면, 이런 희망을 품는 것은 절망과 자기 파괴를 가져온다. 물론 제롬과 실비의 실태가 순전히 개인의 탓은 아니라고 본다. 자본주의 사회 이후, 대부분의 사람들이 절대 가질 수 없음에도 누구나 가질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풍요에 대한 허황된 갈망이 생겼다.


그러니 사회의 생리를 직시해야 덜 괴로울 것이다. 자본주의와 능력주의의 농간에 놀아나며 어영부영 살다가 인생이 그렇게 마무리되는 수가 있다. 하늘만을 바라보고 살며, 걷는 노력은 하기 싫고 날고 싶다는 욕망만 가지면, 뭍으로 올라올 수 있을 때 올라오지 못하고, 나오고 싶을 때는 이미 진흙이 발을 삼킨 이후일 것이다.


지금의 내가 가는 길이 또 다른 회피와 도망일지, 드디어 이상에서 벗어나 현실로 발딛음을 한 것일지는 혼란스러운 이들에게 정신 번쩍 차릴 길잡이가 되어줄 책이다. 길을 잃을 때마다 머릿속에 사물들의 지도를 그려놓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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