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국장

by 차순옥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청국장 냄새를 맡으면,

마음은 어느새 수십 년의 시간을 거슬러 고향 집 툇마루에 닿습니다.

그곳엔 늘 따스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엄마의 부엌과,

세상에서 가장 아늑했던 아랫목의 기억이 머물고 있습니다.


아랫목 솜이불 속에서 피어난 하얀 그리움

엄마에게 청국장은 단순히 끼니를 잇는 반찬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정성으로 띄워낸 '생명' 그 자체였지요.

커다란 가마솥에 콩을 삶아 구수한 내음이 온 집안에 진동하면,

엄마는 잘 마른 볏짚을 가져와 정성스레 손질하셨습니다.


따끈따끈하게 달궈진 아랫목,

그 귀한 자리에 삶은 콩 바구니를 앉히고

낡은 솜이불을 겹겹이 덮어주시던 엄마의 손길은

마치 어린 자식을 재우는 손길처럼 조심스럽고 다정했습니다.


며칠이 지나 방 안 가득 쿰쿰하면서도 깊은 향이 배어들 때쯤,

이불을 살짝 들춰보면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 있었습니다.

콩알 사이사이로 실타래처럼 길게 늘어지는 하얀 진.


엄마의 손가락 끝에 매달려 끊어질 듯 이어지던 그 하얀 실은,

기다림의 시간이 빚어낸 결정체이자 자식들을 향한 엄마의 지극한 사랑이었습니다.


절구통에 넣고 "콩콩" 소리를 내며 찧던 경쾌한 리듬이 들려오면,

우리 남매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식탁 주위로 모여들었습니다.


잘 익은 묽은 김치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엄마가 새벽부터 정성껏 만드신 몽글몽글한 두부를 듬뿍 얹어 끓여낸 찌개.

그 첫 수저의 뜨끈함은 차가운 겨울바람마저 녹여버리는 마법의 온기였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투박한 뚝배기 속에 우리 몸을 맑게 하고

줄기세포를 깨우는 자연의 질서가 담겨 있었다는 것을요.

또한, 그 냄새가 훗날 엄마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마다

우리를 다시 살게 하는 영혼의 양식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제는 내가 엄마의 나이 보다 더 되어

툇마루 너머로 장독대를 바라봅니다.

창호지 문틈으로 들어오는 저 햇살 속에

엄마의 인자한 미소가 비치는 듯합니다.

비록 그때의 엄마처럼 완벽하게 청국장을 끓이지는 못할지라도,

그리움을 한 수저 듬뿍 넣어 찌개를 끓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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