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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원기 Feb 24. 2022

내가 지켜줄게 10

재개발 지역 고양이들과 그들을 사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 열 번째 이야기 : 바둑이와 하양이 -


시간은 소리 없이 흘러갔다. 6월의 햇살은 이미 여름을 알리고, 포획 첫날 잔뜩 껴입고도 추워서 떨던 계절은 이미 몸의 기억에서 지워지고 있었다.


보호소에는 케이지가 가득했고 그 사이사이로는 마치 재개발 마을길을 그대로 옮겨온 듯 작은 골목길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케이지와 케이지 사이를 덮고 있던 두꺼운 보호천은 보고만 있어도 더웠고, 가볍고 바람이 잘 통하는 광목천으로 교체했다.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올 때면 미색 천들의 나부끼는 모습이 마치 지중해풍 광고의 한 장면 같았다.


자원봉사자도 더 늘었다. 코로나19로 몸을 사려야 하는 상황이지만 학생들의 용기와 열정은 대단했다. 밤을 새기도 했고 온갖 먼지를 마셔가며 케이지 작업과 청소에 병원 이송까지 전천후였다.


지난달 말부터 시공사가 건물들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먼저 각종 전선과 대문 등 돈이 되는 물건들을 빼가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골목 곳곳은 이전보다 더 위험한 물건들과 파편들로 가득했다. 본격적인 건물 철거는 이후 진행되었는데, 벽돌과 시멘트 덩어리만 남겨졌을 때 포크레인이 들어와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이제 고양이들을 구조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두 굳이 직관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자원봉사 학생들 또한 누가 말하지 않아도 더욱 열심히 해주었고 에스펜과 모모와 김꼭빵 세 사람도 더 힘을 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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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이와 바둑이가 포획틀에 들어간 것은 이 무렵 즈음이었다.


재개발 마을 주변에는 빈 컨테이너가 놓여 있는 공유지가 있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지자체의 자투리 땅을 누군가 사용하다가 그냥 떠나버린 곳인 듯하다.


하양이와 바둑이는 엄마 아빠와 함께 이곳에 살고 있었다. 이 땅은 사실 재개발 지역 경계선 바깥쪽이기 때문에 이문냥이 프로젝트의 대상 지역은 아니다. 하지만 이 가족의 주요 활동 지역은 재개발 지역 안쪽이었고, 이런 연유로 인해 이문냥이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이전 캣맘들이 힘을 합쳐 3일 동안 45마리를 포획했을 때 아버지 고양이 분홍코도 잡혔었다.

포획 당시 분홍코

분홍코가 포획되었을 당시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누군가와 싸운 흔적이 곳곳에 있었고, 흰색 털은 회색이 될 정도로 지저분했다. 어찌 보면 가족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은 아버지의 희생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이때 포획에 참여했던 에스펜이 분홍코의 이 모습을 보고 이문냥이 프로젝트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고 한다.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는 측면에서 분홍코의 이날 포획당함은 역사적인 의미로 남게 되었다.

분홍코

분홍코는 운 좋게도 에스펜의 집에 며칠 머문 후 서대문구의 한 사람에게 임보를 가게 되었다. 임보 중 방충망을 뜯고 탈출하기는 했지만, 이문냥이의 집요한 추적 끝에 다시 잡히게 되었고, 또다시 행운을 얻어 새로운 사람에게로 입양을 가 현재는 잘 살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가족을 위해 험난한 일을 마다하지 않은 보상으로 두 번이나 큰 행운을 얻게 된 고양이라는 칭호가 붙게 되었다.


분홍코의 딸과 아들인 하양이와 바둑이가 잡힌 시기는 이로부터 4개월이 지난 후였다. 자투리 땅을 벗어나 재개발 지역으로 놀러 들어왔는지, 아니면 아버지를 찾아들어왔는지는 모르지만, 맛있는 냄새에 끌려 포획틀에 들어오게 되었다. 하양이가 먼저 잡혔고 바둑이는 근처 다른 포획틀에 들어가 잡혔다.


이들의 엄마는 애초에 아이 넷을 낳았는데, 다른 둘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생을 달리했다. 그래서인지 하양이와 바둑이는 유독 끈끈한 가족애로 뭉쳐 있었다. 한 시도 떨어지지 않았는데, 처음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남매가 아니라 부부지간으로 보일 정도였다.

하양이

하양이는 여자 아이지만 아버지 분홍코를 빼다 박은 모습이었다. 온통 하얀색 털에 성격도 아버지처럼 활달하고 강했다. 눈동자만 파란색과 황금빛의 오드아이로 달랐을 뿐 몸집과 하는 행동은 복사판이다.


이와는 다르게 바둑이는 남자아이지만 몸집도 작고 성격도 온순, 소심했다. 하양이에게 간혹 얻어맞기도 했지만, 그래도 바둑이는 하양이 곁에만 있었고 하양이도 늘 바둑이와 함께 했다.


포획틀에 들어온 둘은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아버지 분홍코처럼 중성화 수술을 거쳐 종합검진을 받았다. 둘은 건강했다. 심장사상충도, 기생충도 없었고, 진드기도 달고 있지 않았다. 보호소에서는 이 둘의 스토리를 이미 알고 있었기에 케이지를 조금 더 크게 만들어 함께 지내도록 해주었다.


바둑이는 늘 하양이에게 밥을 양보했다. 곁에 머물고 있다가 하양이가 식사를 마치고 나면 그제야 먹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 몸은 비록 작았지만 분명 바둑이가 하양이의 오빠인 것처럼 보였고 사람들은 그렇게 당연히 생각하게 되었다.

바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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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9번 바뀐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보호소에는 새소리로 가득한 평화로운 숲 속 같은 분위기가 충만해 있었다. 이제는 아프거나 문제가 있는 아이들만 케이지에 들어가 있을 뿐 모두 다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아이들도 사람들과 더 가까워졌고 하악질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양이에게도 드디어 좋은 소식이 전달되었다. 한두 달 전부터 보호소에 들러 입양할 아이를 찾고 있던 한 사람이 하양이를 입양하기로 한 것이다. 보호소에서는 조심스럽게 하양이와 바둑이의 동반 입양에 대해 말해보았지만, 이 집에는 이미 다른 아이들이 있는 상태라 두 아이를 입양하는 것은 어렵다고 했다.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었고 그렇게 하양이는 1주일 후 다른 보금자리로 떠났다.

하양이와 바둑이


사람들은 남겨진 바둑이가 걱정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바둑이가 밥을 먹지 않기 시작했다. 아무런 의욕도 없는 사람처럼 바둑이의 행동은 그랬다. 벌써 3일. 바둑이의 식음전폐는 위험한 상황까지 왔다. 하양이의 자리가 바둑이에게 이렇게나 컸던 것인지... 동반 입양을 강하게 요구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스럽다는 말이 사람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왔다.


지금까지 바둑이는 일반 건사료도 먹었지만 생식을 많이 먹어왔다. 하양이에 비해 몸이 작았던 바둑이를 위해 힘내라는 의미에서 기부받은 생식을 바둑이에게 주로 먹여왔었다. 그런데 이제는 생식도 먹지 않고 아무것에도 입을 대지 않는 것이다.


급히 병원에 데려갔다. 바둑이가 원래 진료를 받았던 병원은 그날따라 환자가 너무 많았고, 결국 다른 협력병원으로 갔다. 피를 뽑고 초음파를 찍고, 할 수 있는 검사는 모두 진행했다. 다행히 검사 수치들은 정상 범위로 나왔다. 하양이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을 거라는 나름대로의 추측이 최선의 원인 분석이었다.


보호소에 돌아온 후 바둑이에게는 병원에서 처방해 준 식욕 촉진제와 습식사료를 주었고, 햇살이 잘 드는 넓은 3층짜리 케이지를 사용하도록 해주었다.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이 우울감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사실이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줄 알았던 사람들은 바둑이의 모습을 보고 연민보다는 감동스러운 감정을 경험하게 되었다.


바둑이는 이후 너무나도 잘 지냈다. 습식사료뿐만 아니라 지난 2년 동안 거의 먹지 않던 건사료까지 너무나도 맛있게 잘 먹었다. 얼굴 표정도 밝게 바뀌었고 뛰어다니지 않던 아이가 누구보다 즐겁게 휘돌아 다녔다. 바둑이에게 있어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즐거운 바둑이...


하지만 딱 10일. 거기까지였다.

10일이 지난 정오 무렵, 바둑이의 움직임이 이상했다. 눈동자에 힘이 없었고 앉아 있질 못했다. 바로 어젯밤까지만 해도 활달했었는데, 이건 또 무슨 상황인지 다들 알 수 없는 걱정이 직감적으로 다가옴을 느끼고 있었다.


협력병원에 달려갔다. 종합검사가 시작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 선생님이 굳은 표정으로 나와 말을 꺼냈다.


'배에 복수가 차서 주사기로 빼냈는데, 피네요. 아마 내장 어디선가 출혈이 생긴 거 같아요. 여기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어디 큰 병원으로 가셔서 일단 수혈을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갑자기 배에 출혈이라니. 에스펜 등 세 사람은 바둑이를 데리고 급히 큰 병원으로 갔다. 수혈한 후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아이를 병원에 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벌써 밤 9시 위에 있었다. 


사람의 운명은 하늘에 달렸다는 말이 있는데, 고양이들도 다를 게 없었다. 모든 생명체는 겉모습만 다를 뿐 결국 운명 지워진 유한한 존재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 밤의 정막이었다.


바둑이네 가족사는 참으로 기구하다. 아빠는 가족을 위해 헌신하다 일찌감치 포획되어 어디로 갔는지 이별을 당했고, 하양이는 다른 집으로 입양을 갔으며, 바둑이는 병원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고, 엄마는 아직도 그 자투리 땅 위에서 사라진 가족들을 기다리며 살고 있고...


바둑이의 이날 밤은 그렇게 아주 길고 무겁게 천천히 흘러갔다.


- (예고) 열한 번째 이야기 : 삶과 죽음의 일상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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