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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원기 May 22. 2022

내가 지켜줄게 23

재개발 지역 고양이들과 그들을 사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 남아 있는 아이들 -


요즘 에스펜의 머릿속에는

초심이라는 단어가 떠나지 않고 있다.


이문냥이 프로젝트가 처음 시작하게 되었던 것은

이문동 3구역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이 지역에서 밥을 먹던 고양이들을 방치할 경우

그들의 생사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을 것이라는

에스펜의 걱정 때문이었다.


이 지역에는 이전부터

법인의 형식을 갖추고 있는 단체도 있었고,

길고양이 관련 민간단체도 있었지만,

어느 하나 명확한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재개발 지역 고양이들을

제대로 살려봐야겠다고 나서는 곳은

드물었다.


같이 하자고 연락을 하면 거절하기 일쑤였고,

무엇을 경쟁하겠다는 것인지 일부는

시기와 질투로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것이

현실이었다.


국가도, 지방자치단체도,

지역 관련 단체나 사람들도 나서려 하지 않았고,

결국 에스펜이 전화기를 붙잡고

주변 대학 동아리에 연락하고

몇몇 켓맘과 지인들에게 호소한 결과

이 프로젝트가 출발하게 되었던 것이다.


순수 민간 주도의 이문냥이 프로젝트가

성과를 내기 시작하자,

언론과 방송이 서로 경쟁하듯 취재를 했고,

급기야 이를 본 구청에서도

지원할 것이 없는지 물어오기도 했다.


자원봉사자들도 늘어났고,

입양자들도 몰려들었으며,

기부금 액수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서 대단하다는 말들이 쏟아졌다.


단지

아무도 나서지 않고 있어서

위험에 처한 재개발 지역 고양이들을

살리고자 한 것이었는데,

어느 한순간 유명세를 타게 되자

부담감이 커진 것도 사실이었지만,

애초의 목적이 유명해지는 것도 아니었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에스펜에게 있어 사람들의 그런 관심은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역시나,

사람의 마음은 다 똑같은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함께 하는 사람 중에는

다른 마음을 먹는 경우도 나타났고,

에스펜은 결국,

2년이 지나가면서

온라인을 통해

사람에 대한 신뢰로부터 되돌아온

쓰디쓴 맛의 아픔을

일거에 맛보게 된다.


온갖 허위사실이 SNS에 도배되었고,

지난 2년 동안 쌓아 온

이문냥이와 이문냥이 사람들의 명예는

하루아침에

회복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사건 후 두 달이 지난 지금

그동안 온라인 상에서

허위사실을 떠들어 대고 모함을 하며

서명을 해대던 사람들의 목소리는

잠잠해졌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지만,

영문도 모른 채 당해야만 했던

에스펜과 모모, 그리고

이문냥이의 남아 있는 아이들은

여전히 떨어진 명예와

덤으로 받은 정신적 분노에

경제적 고통까지 더해

편치 않은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아무도 나서지 않았기에 나섰던 좋은 일이

누군가의 초심 상실로 인해

이런 막장으로까지 들어설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기에

그 허망함의 크기가 더욱 커진 탓이다.


다행스럽게도

남아 있는 고양이들에 대한

입양 문의가 들어오고 있고,

이문냥이의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이런저런 도움을 주고 있어

희망의 불빛이 완전히 꺼져버린 것은 아니지만,

어두운 방구석 새벽 등불 아래에서

근거 없는 비난의 배설 욕망을 불태워대던

그 사람들에 대한 감정 또한

여전히 지워지지 않은 채

무거운 흔적으로

남겨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


뭉크


뭉크는 선명하게 빛나는 초록색 눈빛이

매력적인 아이다.


보호소에 온 지 길지 않은 시점에

운 좋게도 이태원으로 입양을 갔었지만,

운이 그 정도였는지,

아직 채 적응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집을 나가게 되었고,

다시 구조되어 보호소로 돌아온 아이다.



이태원 뒷골목 생활을 하면서

새하얀 털은 회색빛으로 변해 있었고

입이 짧았던 아이가

사료라면 마다하지 않고

정신없이 먹어치우는

아이로 변해 있었다.


숨어다니기를 좋아하던

소심했던 입양 전 성격을 버리고

전혀 다른 아이가 되어 돌아온 뭉크는

미시와 가장 친한 우정을 과시하며

행복한 보호소 생활을 보내고 있다.


치노


치노는 다른 지역에서

차량 엔진룸에 들어가 있다

재개발 지역 옆동네

아파트 주차장으로 오게 된 아이였다.


구조될 때가 3개월 정도로

온몸이 기름 투성이었던 치노는

가느다랗고 긴 몸으로

보호소에 들어오면서부터 지금까지

늘 온갖 애교를 뽐내고 있는 아이다.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의 치노는

자원봉사자가 화장실 청소를 할 때면

언제나 곁에 와 앉아 지켜보면서

마치 청소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물어보듯

궁금해하는 표정을 하고 있다.


보호소에 사람들이 출근할 때면

가장 먼저 마중 나오는 아이들 중 하나다.   


도토리


도토리는 소심한 성격 때문에

오랫동안 케이지에 스스로 갇혀 지냈다.


얼굴 보여주기도 거부하고

오로지 숨숨집에 혼자 지내면서

사람들이 없는 것이 확인될 때만

잠시 집에서 나오곤 했던 아이다.



밤색  예쁜 코를 가진 도토리 요즘

보호소가 좋은 지

사람들이 있어도 집에서 나와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친구들과 높은 곳까지 올라다니고 있다.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멋진 포즈도 잘 잡아주는

센스쟁이 고양이가 다 되었다.


주노


주노는 머리부터 시작하여 어깨와 앞다리까지는

고등어 옷을 입고 있지만,

몸의 다른 부분은

삼색이 옷을 입고 있는

독특한 패션의 소유자다.



아기자기하게 몰려있는 얼굴도 너무 귀엽고

놀아줄 듯 말 듯하다가 결국

낚시 놀이에 정신줄을 놓아버리곤 하는

어쩔 수 없음의 몸짓도

귀여운 아이다.

 

조용한 성격의 주노는

다른 고양이들에게도 호의적이며

예의 바른 행동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기쁨이


기쁨이는 구조 당시 만삭의 어미였다.


급하게 임보처를 구해 순산을 했지만,

워낙 소심하고 예민한 상태였기 때문인지

기쁨이는 그만 심장에 이상이 생기고 말았다.



기쁨이가 약을 먹어야 했던 기간은

1년이었는데,

간혹 약을 먹지 않아 속을 썩일 때도 있었지만

비교적 호의적으로 약을 잘 받아먹었다.

 

그 덕분인지

오랜 투약 후 정기검진을 받았는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기쁨이의 심장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후 먹던 약도 모두 끊게 되었고,

기쁨이는 지금 누구보다 건강하고

활기찬 일상을 보내는 아이가 되었다.


토비


토비는 늘 조용하고 도도하게

쿠션 위에 앉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간식이 먹고 싶을 때도

지그시 바라보면서

눈으로 대령하라 지시하는 아이다.



요즘은  밤마다 좁은 유리 집에 놀러 가

함께 같이 자곤 한다.


착한 유리와 귀족 신사 토비의 사랑이 싹트고 있다.


건강 또한 타고난 토비는

지금까지 아파본 적이 없는 독보적인 아이다.


항우


항우는 겁이 많고 소심한 성격 때문에

보호소 생활을 편하게 하고 있지는 못하다.


다른 고양이들이 있으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겁이 많은 아이다.



그래서인지 이처럼 겁이 많은 아이가

길에서 어떻게 지내 왔을지를 생각하면

불쌍한 생각이 많이 드는 아이이기도 하다.


독립 케이지에 혼자 두면 밥도 잘 먹고

커다란 쿠션 위에서 편하게 휴식을 취하는 등

여유를 보여주기도 한다.

 

유난히 동그란 두 눈이

겁이 많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하지만

누구보다 착한 그런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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