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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born 민주 Aug 11. 2023

인생 그래프

즐겨보는 예능 프로그램에 신기한 사람이 나왔다.

나이는 젊은데 생년월일만 말하면 몇 살까지 사는지 결혼은 언제 하는지 언제부터 좋고 언제부터 나쁜지 거침없이 알려준다.

칠판에 그래프를 그리며 알려주는 게 호기심도 생기고 왠지 다른 점집과는 다를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내가 몇 살까지 살지가 궁금했다. 큰 병을 겪어서인지 늘 마음 한편 불안이 있었다. 친구들은 그걸 뭐 하러 알려하냐? 그리고 그런 걸 뭐 하러 믿냐? 등등 만류도 했지만 나는 3년 전 대책 없이 당해봐서인지 이렇게라도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렵지 않게 연락처를 찾아 문자를 보내고 예약을 했다.

두 달 후쯤 상담을 할 수 있었다.

강남 한복판 아파트가 주소였다

그동안 다녔던 점집들과는 분위기도 달랐다.

TV에 나왔던 단정하게 차린 남자가 문을 열어줬다. 방송에서처럼 그분은 하얀 칠판 앞에 선생님처럼 자리를 잡고 나는 학생처럼 책상 앞에 앉았다.

앉자마자 생년월일을 물었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답을 했다.

이상하게 이런 곳은 처음 어색해서인지 안 좋은 얘기가 나올까 걱정이 되서인지 주눅이 든다.

“남자로 때우고 사는 팔자인 건 알고 있죠?”

“네?”

“팔자에 남편이 없는데 결혼을 했었으면 이혼했을 거고 아이도 없겠네요~ 남편만 없지 사주는 엄청 좋습니다. 남편만 포기하면 세상 부러울 게 없겠네~”

헉!!!이다

나는 의자를 당겨 앞으로 앉았다. 속으로 무한 신뢰가 생겼다.

그는 칠판에 그래프를 그리기 시작했다.

방송에서 봐서 알 수 있었다. 몇 살까지 그리는지 보면 그게 나의 수명이다.

70..(그래도 70까진 사는구나~)

80..(80까지 산다고??)

90..(헉!!)”저 그렇게 오래 살아요?”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물었다.

“선생님은 일찍 죽을 걱정하지 말고 오래 사는 걸 걱정해야 합니다”

수명 그래프도 놀라웠지만 나의 그래프가 내년부터는 완전 상한가를 치면서 나가고 있었다.

“선생님은 아직 인생의 전성기가 안 왔습니다. 2025년부터 시작입니다. 올해 이동수가 들어와 있는데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시면 더 좋습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회사에서 이동을 고민하고 있었고 겸사겸사 보러 간 것이었다.

나의 신뢰가 솟구쳤다.

내친김에 물어보자~

“그럼 저는 결혼은 못하나요?”

“네! 못합니다~연애만 하시죠! 남편자리는 없습니다. 그래도 남자가 없는 건 아니니 연애만 하세요~”

사실 이혼 후 결혼을 또 할 생각은 없었었다.

하지만 크게 아프고 난 후 약해진 건지 다시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점점 생각이 결혼으로 기울어졌었다.

그런데 단칼에 안된다고 들으니 실망스러웠다.

그래서 슬며시 다시 물었다.

“절대 안 되나요?”

“팔자에 없는 결혼 해서 어땠어요? 남편이 들어오면 인생이 힘들어지니 하지 마세요”

단호했다

누군가는 이런 걸 뭐 하러 믿냐고도 하겠지만 맹신까진 아니지만 나는 꽤 신뢰하는 편이다.

아무튼 남편 하나만 포기하면 모든 게 순조롭다고 하니 그걸로 스스로 위로했다.


그렇게 상담을 끝내고 나오는데 결과를 궁금해하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들은 이야기를 주저리 풀고 나니 친구는 대번에

“야 있는 남편도 버리고 싶은데 뭐 하러 그걸 만들라 그래? 나도 남편하나 포기하고 너처럼 살고 싶다~”

라고 말하는 친구가 아직 부러운 걸 보면 가진 게 많아도 갖지 못한 하나를 포기하지 못하는 나에게 금세 쯧쯧 혀가 차졌다.

갖지 못하는 걸 본다면 결핍이고 가진 걸 본다면 충분이다.

행복은 내가 무얼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무얼 볼지는 나의 선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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