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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born 민주 Aug 21. 2023

망쳐버린 시험지

“큰 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당장 오늘 밤에라도 큰일 날 수 있으니 최대한 빨리 수술할 수 있는 산부인과나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세요”


의사는 조금 소란스럽게 이야기했다.

불과 열흘 전 검진 때도 가운데 잘 착상되어 내게 심장소리를 들려줬었다.

 사이 내가 느낀 스트레스와 갈등을 뱃속의 아가도 똑같이 느꼈던 걸까?

아이는 자기 자리를 벗어나 자궁벽 에 붙어있었다.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는 걸 느껴서였을까? 구석으로 도망친 느낌이 들어 마음이 아팠다.

진단은 자궁각임신 이었다.

 자리에서 아이가 아주 조금이라도 큰다면 자궁벽이 찢어지면서 쏟아지는 하혈로 병원 가면서 죽을 수도 있다 했다. 자궁벽은 이미 너무 얇아져 있어서 오늘밤 안에라도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결혼하고 5년째 더 이상은 미룰 수 없었던 임신이었다.

처음 임신사실을 알렸을 때 남편의 표정은 감정을 알 수 없었다.

며칠 후 시어머니를 통해 남편이 아이가 부담스러워 원치 않는다는 말을 들었었다.

남편은 결혼 후 마땅한 수입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를 낳는 게 겁이 났던 모양이다.

원래 시어머니는  아이를 빨리 낳기를 원하셨었다.

아이가 생기면 책임감으로 아들이 달라질 거라고 기대하셨다.

하지만 막상 아들의 불안한 모습을 보니 어머니 또한 이제 막 생긴 손주보단 자신의 아들이 더 안쓰러웠나 보다.

대놓고 지우라는 소리는 안 하셨지만 분위기로 지우기를 원하셨다.

그렇게 누구도 입 밖으로 험한 말 하나 없이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유산을 여러 번 겪은 나로서는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 생긴 아이를 지우는 게 두려웠었다.

입덧이 심해 거의 아무것도 못 먹었지만 엄살은커녕 눈치 보기 바빴었다.

마음속으로는 하루에도 수없이 아이를 지켰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옛날 어른들이 아이는 자기 밥그릇을 가지고 태어난다 했었다.

지금은 상황이 좀 힘들어도 막상 낳아보면 다 키우게 된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도 자신이 없어졌다.

아이를 나 혼자 낳아서 키울 수도 없는 건데 이런 냉대를 모른척하고 낳을 만큼 나의 심지가 강하지 못했었다.

임신을 했는데도 아무도 나의 임신을 이야기하지 않는 게 숨이 막혔다.

사흘 건너 한 번씩 시댁을 갔지만 입덧이 심한 나에게 무엇이 먹고 싶은지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다.

적은 나이가 아닌데 아이를 지운다면 다시 임신이 안될까도 겁이 났다.

하지만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남편의 한숨과 시어머니의 불편한 시선을 더 이상은 모른 척하기가 힘들었다.

무엇보다 무너지는 자존심을 지켜내기가 어려웠었다.

결국 나 스스로 병원을 알아보고 예약을 했다.


아이를 지우기 위해 임신 후 처음으로 남편과 함께 병원을 갔다.

병원을 가는 차 안은 적막했다.

그렇게 간 병원에서 들은 이야기가 자궁각임신이니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아이를 놓기 전에 아이는 먼저 떠나려 하고 있었다.

내가 만약 좀 더 강인하게 아이를 지켰더라면 어쩌면 아이도 나를 믿고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았을까?

나의 자존심을 앞세워서 놓아버린 아이처럼 나는 결국 나의 가정도 놓아버렸다.

오늘 시험을 잘 보면 내일도 잘 보려고 더 공부하지만 오늘 시험을 망치면 내일도 쉽게 포기하게 되는 것처럼 나의 가정은 이미 망쳐버린 시험지 같았다.

그런 시간들을 지나면서 난 무엇을 선택해야 하거나 포기해야 할 때 오늘 시험이 끝이 아니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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