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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born 민주 Oct 07. 2023

슬기로운 투병 생활

넘어져야 보이는 세상이 있었습니다. #8


40년 만에 피아노 앞에 앉았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엄마는 나를 동생과 피아노 학원을 보내줬었다.

피아노를 치는 건 재미가 없었지만 피아노 선생님 집에는 재미난 게 많았었다.

하루는 호기심에 피아노 의자를 열다가 뚜껑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린 마음에 무섭고 창피해서 그 후로 난 다시는 피아노 학원을 가지 않았었다.


그리고 지금 40년이 지나 민머리 암환자로 젊은 선생님의 측은한 시선아래 다시금 피아노 앞에 앉았다.

암진단을 받고 내게는 강제적인 휴식이 찾아왔다.

돈을 벌지 않고 집에서 쉬는 건 해본 적이 없었기에 마음 한편 방학을 앞둔 아이처럼 들뜨고 기대도 됐었다.

적어도 열 달은 집에 있어야 하는데 투병만 하기엔 시간이 아깝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너무 빠른 시간 속에 살다가 집에만 있는 시간은 더디게만 느껴졌다.

1차 항암이 끝나고 열흘정도가 지나니 정상에 가깝게 컨디션이 올라왔다.

다음 항암 때까지 열흘 이상의 시간이 주워졌다.

이렇게 비슷한 패턴으로 여섯 번의 항암을 받아야 하고 그때마다 나에게 주워질 시간들이 선물 같단 생각이 들었다.

치료의 결과야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암을 치료하는 건 의사에게 맡기기로 마음먹으니 한결 마음이 편해지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게 됐다.

그래서 이때 무엇이든 배워보자 생각했고 제일 처음 피아노학원을 등록했다.

피아노 외에도 검색을 통해 여러 가지를 등록했다.

등록한 모든 걸 전부 다 끝까지 배워볼 생각은 아니었다.

어차피 암환자 컨디션에 깊이 있는 배움 보다는 시간 잘 보내기 용도라 너무 신중하게 고민하지도 않았다.

한 두 번 배워보고 아니면 그냥 돈은 날린다란 생각을 했다.

시작하기 전에 머리로 아무리 생각해 봤자 해버리고 나면 답이 빠르단 걸 알고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 버려지는 돈도 있겠지만 세상에 헛짓 없듯 헛돈도 없다란 생각이다.

더욱이 큰 병을 진단받은 이후에는 그 무엇도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난 무언가 내가 돈이 나가는 일이 생기면 반드시 그 이상의 돈이 들어오거나 좋은 일 앞에 무언가 액땜했다고 생각해 버리는 습관이 있다.

그런 마음으로 여러 가지를 시도했고 그중 나는 3개의 자격증을 딸 수 있었다.

물론 국가 자격증은 아니지만 어차피 자격증을 가지고 돈을 벌기 위함은 아니었기에 상관없었다.

그중 내가 가장 많이 투자한 건 타로마스터 자격증이다. 처음엔 시간도 잘 가고 재미있어서 배웠지만 점점 신기하기도 하고 욕심이 생겨서 타로 마스터 자격증도 기관별로 3개나 땄다

투병이 끝나고도 고가의 개인레슨과 상위 클래스 수업 등에 시간과 돈을 들여 1년 정도를 더 공부했다.

나는 취미였지만 함께 공부한 사람들은 타로샵 개업을 목표로 배우는 고급 클래스였다.

타로마스터 2급, 1급 심리상담사 1급, 프레젠테이션 스피치 1급 자격증이 투병기간에 딴 자격증이다.

큰 병 앞에 가족들과 환자 본인은 많은 노력들을 하게 된다.

가장 처음으로는 암카페등에 등록을 하고 여러 가지 정보를 찾아보게 된다.

물론 나도 처음에는 그랬었다.

하지만 암카페는 여러 가지 사례들이 올라오다 보니 도움 되는 정보도 있었지만

재발한 사연부터 결국은 생을 마감한 사연까지.. 좋은 결과만큼 수없이 나쁜 결과들도 올라와 있었다.

좋은 결과보단 나쁜 결과에 더 집착하게 되니 씩씩했던 마음도 와르르 무너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난  암카페를 가입한 지 일주일 만에 탈퇴했다.

그 안에서 도움이 될만한 정보는 동생들이 알아서 전달해 줬다.

이제는 너무 흔해진 암이지만 아직도 암이란 글자가 주는 두려움의 무게는 분명히 있다.

그 무게로 사실 정상적인 멘탈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쉽게 자기 연민에 빠져 나도 모르게 점점 땅을 파고 들어가다 보면 모든 게 두려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암은 내 인생의 재앙이 아닌 축복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투병을 지켜보고 간병을 하는 가족의 입장에선 힘든 시간이 대부분이었겠지만 이기적으로 나하나만 본다면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았던 시간이었다.


피아노 선생님이 컨디션이 괜찮은지 물어왔다. 수업일정을 잡기 위함이었다.

사실 컨디션은 괜찮아졌지만 가기가 싫어서 계속 컨디션 핑계를 댔다.

그때도 아마 의자를 고장내고 두려워서 피아노를 그만둔 게 아니라 피아노가 재미가 없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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