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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Mar 01. 2024

마트의 원플원 상품뿐 아니라 말에도 덤이 필요하다.

덧붙여 말하는 예쁜 말은 누군가의 피로를 단숨에 날리는 효과가 있다.


 내가 마트에만 가면 늘 지나치지 못하는 코너가 있다. 바로 1+1 행사 및 덤증정 코너. 첫째 의 마트 문화센터 수업 후 들른 지하 1층 식품코너. 바삐 움직이던 발걸음이 우유진열코너에서 순간적으로 멈춰섰다. 1.5리터 우유에 하나가 더 붙어있는 것이 아닌가? 하나 가격에 두개라니. 눈이 크게 뜨인 채 평소 사지 않던 브랜드지만 나도 모르게 손이 그 우유를 향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계산까지 마치고 장바구니에 떡하니 담겨졌다. 마치 보물을 안고 오듯 소중히 우유를 품안에 넣고 돌아오며 괜스레 웃음이 났다.

 덤이 좋은 건 비단 마트의 미끼상품 뿐만 아닐 것이다. 얼마 전 우연히 읽은 “예쁘게 말하는 네가 좋다” 에서는 말 사용에 있어서 말에 붙이는 덤. 즉 덧붙여 말하는 예쁜말의 중요성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한 카페 사장이 손님들의 언어폭력으로 힘들어하는 알바생을 위해 특별 제작했다는 메뉴판.

 카페라떼 6000원. 카페라떼 주세요 5000원. 안녕하세요 카페라떼 한 잔 부탁합니다 6000원.

기발한 발상이 엿보여 재미있기도 하지만 덧붙여 말하기의 중요성을 역설한 메뉴판이다. 앞뒤로 한마디씩 덧붙였을 뿐인데 2000원 절감의 효과가 있다.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일상대화에 이렇게 몇 마디만 덧붙여도 제법 근사한 말로 바뀐다.

 나의 경우 매일 만나는 사람들과 일상대화를 함에 있어서 이런 덧붙임의 말하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때가 많다. 얼마전, 집 근처에서 한 달에 한번 열리는 플리마켓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마켓 마감 한 시간쯤 도착해 이리저리 구경하던 중, 한 아기 옷 가게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맘에 드는 블라우스가 내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마켓 첫날에다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마감 직전 시간이라 그런지 옷 가게 주인은 얼굴 만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보였다. 

 블라우스를 집어 카드를 내밀고 계산을 하며 그냥 뒤돌아나올까 하다가 “블라우스가 참 예뻐요. 지난 달에도 여기서 사장님의 코디대로 사서 딸아이 입혔는데 너무 예쁘더라구요. 옷센스가 남다르신 것 같아요.” 라고 두어 마디를 살포시 흘렸다. 그 말에 그제서야 내 얼굴을 자세히 살피던 사장님이 알은 체를 했다. “아 맞다, 기억나요 그때 첫 손님이셨는데. 예쁘게 입히셨다니 제가 다 기분이 좋네요” 라고 화답했다. 옷가게 주인의 얼굴이 일순 조명을 켠 듯 환해졌다. 그리고 옷이 담긴 쇼핑백에 서비스라며 검은 리본핀도 함께 챙겨주셨다. 나는 그 때 덧붙인 예쁜 말 한마디로 리본과 함께 사장님의 얼굴을 밝혀주었다는 뿌듯함도 동시에 얻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나도 그런 따뜻한 말을 들은 적이 있던가? 생각을 더듬다 문득 작년 9월쯤의 일이 떠올랐다. 2학기 학부모 상담주간에 있었던 잊지 못할 한마디. 그날은 연거푸 5건의 상담을 하느라 이미 기력이 쇠한 상황이었다. 찬물을 들이키며 아픈 목을 가다듬고 그날의 마지막 상담전화를 걸었다. 마지막 상담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반 여부회장의 아버님. 학교생활 전반에 대한 이런저런 상담을 한 뒤 정해진 시간이 지나 통화의 종료를 알리는 말을 건네는데,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온 아버님의 한마디가 내 가슴에 콕 박혀들었다.

 “선생님, 요즘 각종 언론에 보도되는 선생님들의 안타까운 소식들로 참 힘드시죠? 힘내라는 말 전하고 싶었습니다. 응원하겠습니다”

 마음을 어루만져 준 세상 온기로운 한 마디로 인해 그날 약국을 가지 않고도 피로회복제를 사 마신 느낌이었다. 별 생각없이 끊을 수도 있었던 전화통화 말미에 덧붙여 준 그 예쁜 말 한마디. 나는 그 한마디를 힘들 때마다 언제든 꺼내어 힘을 충전할 수 있도록 가슴 속 깊이 각인해두었다.

 이러한 덧붙이는 예쁜 말은 생면부지의 누군가와의 통화에서도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 이주전 주문한 해외배송 상품이 감감무소식이라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이 들어 주말임에도 불구 게시판에 상담을 요청했다. 두 어시간 후 상담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상담 직원은 거듭 배송지연에 대해 사과를 했고 평일에 바로 상황확인 후 연락을 주겠다며 내내 죄송하다를 연발했다. 수화기 넘어로도 미안한 기색이 다분히 느껴지는 어투였다. 나는 그 직원에게 “주말인데도 연락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불안함이 사라졌습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라고 한 마디를 내었더니 그제서야 수화기 넘어로 들려오는 밝은 목소리.“ 고객님도 좋은 하루되세요 감사합니다.” 나는 나의 그 두어마디 말이 주말출근에다 배송지연 상담까지 겹쳐 힘든 하루를 보냈을 직원에게 단 5분이라도 상쾌한 순간을 보냈기를 속으로 바랬다.

 누군가에게 전하는 예쁜 말 한마디는 어찌보면 참 사소하지만 정신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며 마음의 여유가 없는 요즘 사람들에겐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용건만 간단히’라는 말이 더 익숙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누군가에게 용기내어 한 두 어마디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은 어색하고 귀찮기도 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어색함과 귀찮음을 잠시 참아내고 따듯한 한 두어마디를 입으로 내면서 누군가의 하루를 기쁘게 해 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가성비 좋고 의미있는 일이 있을까? 누군가의 기분 좋은 하루는 결국 돌고 돌아 내게도 돌아올 테니까.

 피터레이놀즈의 그림책 단어수집가에서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간단하지만 힘이 센말. 괜찮아 고마워 미안해 보고 싶었어. 덧붙여 말할 때는 대단한 문장이 아니어도 된다. 그저 상대방의 상황을 고려해 그 입장에 서서 그가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 곰곰 떠올리면 된다.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간단하지만 힘이 센 말들. 힘내. 고마워. 대단해.수고가 많아. 괜찮아. 등 한 마디를 덧붙인다면 앞서 언급한 카페사장님의 기발한 메뉴판에서의 2천원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수백만원의 값어치를 하는 말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첫째 아이 유치원 하원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장을 보러 근처 마트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지난번 요구르트가 붙어있던 브랜드의 우유가 내 시야에 들어온다. 지난 기억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져 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장바구니에 그 우유를 담는다. 계산대에 올리고 카드를 건넨 뒤 알바생에게 “좋은 하루되세요” 한 마디를 기분좋게 내며 품안에 우유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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