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시대의 카피라이터

라이팅 빅뱅

by 일조

UX라이팅, BX라이팅, CX라이팅, 프로덕트 라이팅, 콘텐츠 라이팅...... 상업적 글쓰기로 밥을 벌어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이 이렇게나 많은 시대에 살고 있다니! 감사하면서도 어리둥절하다.


광고문안 작성가, 즉 카피라이터로 생계를 이어온 지 어언 18년. 라이팅 앞에 고정으로 붙어 있던 '카피'를 제치고 등장한 다른 단어들을 접하면서 내 밥그릇의 위태로움과 새로이 등장한 더 커 보이는 밥그릇들에 대한 군침이 동시에 느껴진다.


사람들이 유튜브를 시청하는 시간이 TV 보는 시간을 넘어서면서부터 앞으로는 글자를 읽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 수 있겠다는 위기의식을 느꼈었다. 하지만 기우다. 스마트폰 스크린을 보며 거의 모든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오히려 글자의 힘이 점점 더 커지는 것을 느낀다. 글자는 소통의 주요 수단으로 점점 더 많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특히 상업적 목적으로 쓰이는 글이 일방적 메시지에서 상호 대화로 성격이 명확히 바뀌었다는 것도 느낀다.


예전에 카피를 쓸 때 선배들에게 주야장천 들었던 말은 "말하듯이 써라." 였었다. 문어체로 쓰지 마! 네가 읽어 보면서 씹히는 부분은 무조건 고쳐 써! Vigible하고 Tangible하게 써야지! 기업이 하고 싶은 말을 소비자가 듣고 싶은 말로 -그 당시엔 고객, 사용자, 유저라는 말보다 소비자라는 말을 썼다- 바꿔주는 역할이 카피라이터였으니 소비자가 듣고 싶은 대화체로 써라는 것은 당연한 주문이었고 내가 해내야 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라이팅은 그 당시 말하는 대화체 수준이 아니다.


정말 말 그대로 '대화'를 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대중에게 하는 연설이 아니라 나와 똑같이 살고 있는 사람을 마주하고 앉아 있다고 상상하고 그 사람과 대화하며 카피를 써야 한다. 말만 하면 다행이다. 한 술 더 떠서 버추얼로 앉혀 있는 사람 속마음까지 상상해 보고 이런 글을 보면 이렇게 생각하겠지? 그럼 이렇게 행동을 하겠지? 내가 이렇게 말을 건네면 행동을 다시 바꿔볼 수도 있겠지? 식으로 내 카피를 볼 사람의 마음, 반응, 행동을 상상해 보며 카피를 써야 한다. 앞에 무슨 무슨 수식어를 달고 있는 라이터들은 요즘 다들 이렇게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 아냐면 내가 스마트폰에서 접하는 대부분의 글들이 내 속마음을 꿰뚫어 본 듯한 이야기를 십년지기 친구처럼 친근하게 건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에 “주거 명작” “세상에 없던 솔루션” "소리 없이 강하다" 이런 류의 카피는 바로 스킵 된다. 어텐션이 쉽지 않다. 그래서 요즘은 카피라이팅에 다른 종류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대체 그 기술을 어디서 누구에게 어떻게 익힐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당연히 내 밥그릇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는 UX시대에 카피라이터가 살아남는 법, 변질되지 않고 변화하는 법, 스킵 당하지 않고 행동을 이끌어내는 카피를 잘 만들어 내는 법, AI를 부사수로 부리며 시대의 맥락을 뽑아내는 법 등에 대해 나름 해 온 고민과 실제 업무에서 적용해 본 방법들과 생각지도 못했던 오류들을 마주했던 경험 등을 풀어낼 생각이다.


나에게는 하루하루 생존 일기지만 이 글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요즘 시대에 먹히는 카피 쓰기에 대한 가이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원한다. 이 글을 쓰면서 매일 조금씩이라도 내가 더 나은 카피라이터로 패치될 수 있기를. 나의 카피라이팅 능력이 0.1%씩이라도 증폭되기를.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카피를 1년, 2년, 바라건대 딱 30년만 더 쓸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분들이 술자리에서 또는 밥자리에서 내 글을 이야기하고 잠시라도 생각해 보며

카피라이터라는 멋진 업을 선택한 기쁨을 오래오래 품어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