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에 호소하기란
문자보다 그림이 빠르다. 말 그대로 문자보다 그림이 발명된 시대가 훠어어어어어어어어얼씬 더 빠르다. 문자는 기원전 3,500년경에 발명되었다. 그림은 4만 년 전 구석기시대에 발명된 것으로 보인다. 글자 이전 시대 사람들은 그림으로 소통하였다. 그림만으로 소통해 사회와 문명의 기초를 일구었다. 최초의 글자 또한 그림의 형상화였다. 2023년, 글로벌 시대가 된 지금에도 만국 공통어는 없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 보면 만국 공통 이미지는 있다는 걸 본다. 예를 들어 화장실 그림이다. 웹 페이지를 구성하다 보면 솔직히 카피라이터 입장에서는 카피를 먼저 읽게 하고 그림을 보게 하는 것이 편하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다. 하지만 실제 사용자의 입장이 되어 보면 정반대다. 글자와 이미지가 같이 있는 페이지에서 먼저 시선이 가는 것은 단연코 그림이다. 그것이 고정된 그림이든 움직이는 그림이든 상관없다. 문자보다는 그림에 먼저 시선이 간다. 이것은 의지라기보다 우리 뇌 안쪽 고대뇌에 기억된 유전자 같은 것이 그림을 먼저 해석하려 드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카피를 쓸 때 그림처럼 보이려고 애쓴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하면, 최대한 보는 사람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카피를 쓰려고 하는 것이다. 최소한의 이미지가 덧붙여지는 상황이 안 되더라도 내 카피를 보고 그림을 연상했으면 싶은 마음으로. 이렇게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인상에 남기는데 글자보다 그림이 유리해서다. 글자는 해석 여지에 따라 기억에 남길지 말지 뇌가 거른다. 하지만 그림은 봐 왔던 다른 것들과는 다른 특징적인 무언가가 있다면 뇌는 무조건 기억으로 패스시키는 것 같다.(거듭 말하지만 나는 뇌과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같다'라는 추정 어를 계속 쓰는 것을 양해 바란다). 그림이 그려지는 카피는 이런 것이다. ‘타원형 상판’이라는 스펙을 카피로 쓸 때는 ‘손재간 좋게 빚은 송편처럼 동그스름한’이라고 써 보는 것이다. ‘시원한 여름수박의 맛’을 카피로 풀 때는 ‘투명한 볼에 얼음 한 사발 부어놓고 숟가락으로 퍼 넣은 수박을 한 입 떠먹었을 때의 맛'이라고 일단 써 보는 것이다. 이렇게 형상이 그려지고 상황이 떠 올려지는 카피를 쓰려고 한다. 내가 쓰는 카피가 한순간이라도 더 보는 사람의 기억 속에 머물렀으면 하는, 이왕이면 인상적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렇게 쓴다. 하지만 쉽지 않다. 사람은 보는 만큼 써지는 존재이기 때문에 나의 기억 속에 인상으로 남겨진 이미지로 쓰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다니며 기억 속에 스틸 컷들을 저장해 놓는다. 가능한 많은 경험을 해 보며 그 경험의 풍경을 글로 기록해 놓는다. 시각에 호소하기란, 카피라이터의 당연한 모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