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감정은 동정이 된다
몇 년간 방 한 켠에 방치되었던 아이패드 미니를 켰다. 고등학교 시절, 아이패드는 2G 폰 대신 카메라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덕분에 아이폰이 계곡물에 빠지며 함께 삼켜버린 기억의 빈자리를 오래된 아이패드 속 고등학교 사진들이 대신 채워줄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마주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처음과 끝을 제외하자면 유난히도 힘든 시기였고 차마끄집어내기 싫은 일들로 가득했지만 —
사진에 담긴 장면들은 이상하리만큼 잔잔했다.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순간들만 담았기 때문일까.
사진 속의 나는 생각보다 평온했고, 그게 조금은 맘에 들었다.
새벽이면 북받쳐 오르는 억울하고 아쉬운 감정들은 근 몇 년간 블로그에 털어놓았다.
아직도 어이가 없어 눈물이 나곤 하지만, 그래도 그 무수한 시간을 견뎌온 지금의 나는 꽤 행복한 것 같다.
고장 난 사람은 자신이 고장 났다는 사실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저 ‘다들 이렇게 살겠지’라며 궂은 위안을 얻을 뿐이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다.
사람 많은 곳에서 숨을 쉬지 못하고, 매일 같은 악몽을 꾸고, 말수와 웃음이 없는 무기력한 날들이 이어지는
— 죽음과 그 모든 것이 당연한 일상은 없다는 것을
남에게는 별 것 아닌 일이 나에게는 별 일이라는 것을 늦게나마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
‘잘 지내’라고 말했지만, 앞날을 축복하지는 않았다.
성장통이 아닌 그저 고통을 겪으며 너덜너덜해지기를, 누군가가 느꼈을 아픔의 반의 반만이라도 공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언젠가는 영영 고립되어 어둠 속에서 홀로 자신을 마주하기를. 연민과 동정을 경멸하지만 결국은 그 동정마저 갈급하게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랐다.
순수한 사랑을 믿지 않으면서도 쉽게 사랑을 말하던 자기부정적인 말과 행동이 언젠가는 단단히 무너지기를 빌었다.
그렇게 불온한 기도를 드렸던 나는, 이제 알게 되었다.
미완의 감정은 결국 동정으로 맺음 지어진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