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계주
내가 어린 시절 엄마가 아이를 키우며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는 삯바느질도 하셨고 그러다 어느 날 계를 하시기 시작을 하셨다.
계주라 하면 드센 여자를 떠올리겠지만 엄마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조용하고 얌전한 사람이었다. 대신 책임감은 무척 강한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안 계신 것은 아니지만 아이가 여럿이니
한 푼이라도 벌어 살림에 보태고 싶으셨던 것 같다.
풍족하게까지는 못해도 돈이 없어 공부를 포기하게 하는 일은 없는 환경을 아이들에게 만들어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뭐든지 처음이 어렵지 막상 시작하니 엄마의 신용이 싸여 쉽게 계원을 모았다. 멀리서도 계를 들겠다고 왔다. 못 든 사람은 "다음엔 꼭 나 좀 껴줘요!"라 하며 돌아갔다.
그 시절 은행은 세금을 떼지만 계에는 그런 것이 없어 목돈 모으는데 일반인들이 계를 더 선호했다.
앞번호를 받으면 대출이자보다 싼 이자로 돈을 쓸 수 있고 뒷번호를 받으면 정기적금보다 비싼 이자로 돈을 모을 수 있다. 일명 이것이 번호계였다.
계주만 든든하면 은행보다 훨씬 좋았다.
아마 한 달에 두 번은 곗날이었던 같다.
곗날이 되면 계원을 맞이하여 안부인사 나누랴 돈을 받아 확인하랴 엄마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계원이 열다섯 명쯤 되니 복잡했고 엄마는 절절맸다.
난 그런 엄마 모습이 안쓰러워 뭐라도 돕고 싶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일찍 오는 날이 곗날이면 나는 돈을 받아 확인하고 아줌마의 이름과 돈의 액수를 확인하여 종이에 적고 전체 합을 계산해 엄마께 주었다. 그때가 초등학교 3, 4학년이었는데 계산을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잘했다.
그럼 엄마의 일은 쉽게 마무리가 되었다.
엄마는 힘들지 않게 계를 태워주고 임무를 다하셨다.
엄마는 나에게 "고맙다." 하셨다.
난 엄마가 수월히 지낼 수 있어 그것만도 기뻤는데...
어떤 때는 계원들이 먹는 갈비탕을 나도 먹은 적이 있다.
그 시절 갈비탕은 특별한 외식이었다.
우리 엄마가 타는 날만 가서 먹었다.
엄마가 지불할 거니까 당당히 먹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엄마를 보며 "저런 딸을 두어 좋겠수~"라 했다. 또는 "어린애가 듬직하네~"라 하면 엄마는 너무 좋아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