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나의 외할머니
내가 일곱 살쯤 되자 엄마는 외할머니 생신이면 시골에 내려가 하룻밤을 주무시고 오셨다.
생신상을 차려 드리고 우리가 먹을 고춧가루도 빻고 깨도 씻어 말려 짠 참기름을 여러 병을 머리에 이고 오셨다.
외할머니는 엄마의 이복동생인 삼촌가족과 살고 계셨다.
이렇게 해마다 가셨는데 어느 해 엄마가 내려가니
할머니가 일어나지를 못하셔서 물으니 밤에 손주 물 뜨러 내려가다 대청마루에서 마당으로 떨어져
다쳤다고 하셨다.
엄마는 할머니를 서울병원으로 모셔와 진찰을 받으니 고관절이 골절되었다 했다.
한 달을 우리 집에 머물며 수술을 받고 많이 아물어 내려가셨다.
이제 열심히 운동하시면 다시 걸을 수 있으니 운동하시라 당부하고 엄마는 올라오셨다.
몇 달이 지나 할머니가 편찮으시다는 연락을 받고 엄마가 급히 내려가니 또 마당으로 떨어지셨다는데 이번엔 머리에도 피떡이 앉고 이불에도 피칠이 되어있어 엄마가 물을 데워 할머니를 다 씻기고 이불도 빨아 다시 꾸며드리고 왔다 하시며 "너의 외숙모는 뭘 하는지... 애들도 할머니가 다 키워 주었으면 노인네 좀 챙겨주지,,." 하시는 것이었다.
아무 말없던 엄마에게서 원망 섞인 소리가 나오기 시작을 했다. 엄마의 마음속에도 부모님께 충분히 해드리지 못하는 것이 슬픔으로 남았나 보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나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왔다.
엄마는 또 급히 내려가셔서 삼촌께 "왜 미리 연락 안 했냐?" "그렇지 않아도 누이 불러다라고 자꾸 그러시는 것을 안 했다"했다. "누이도 사느라 바쁜 걸 뭐 하러 자꾸 부르냐?" 했다는 것이다.
엄마는 오열을 하셨고 장례를 치르고 올라오셨다.
올라오셨어도 마음은 시골 할머니께 가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할머니의 돌아가신 모습이 자는 듯하더라! 너무 편해 보여서 좀 위로가 된다!"라 하시며 눈물을 훔치곤 하셨다.
한숨 섞인 소리로 엄마는 자주 "딸노릇도 제대로 못하고... 가여운 엄마.... "라는 말을 하셨다.
아마도 이 말은 나를 비롯한 이 나라의 딸들이 대를 이어서 하는 말인 것 같다.
엄마도 하고 나도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