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늘어나는 애견카페와 노키즈존

아이 부모는 줄고 반려견 가정은 늘고..

by 나무가조아

의사들이 세부 전공을 정할 때 소아과를 지원하는 지원자가 거의 없다시피 한다고 한다. 저출산으로 개업 소아과도 줄어들고 소아응급실을 운영하는 병원도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더불어서 노키즈존을 표방하는 카페나 음식점도 점차 늘고 있다.

요즘엔 반려견 동반 카페나 음식점도 늘고 있고 애견을 데리고 갈 수 있는 쇼핑몰도 많아졌다. 내 개인적 경험으론 최근 갔던 닭갈비 집에서 애견 메뉴도 팔고 있었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사람이 식사할 때 함께 온 반려견을 위한 음식의 준비까지 배려심 넘치는 메뉴가 눈을 끌었다. 분명 생각해 보면 좋은 현상이기는 하다.


현대사회에서 나타나는 모든 현상은 결국 그 시간대를 살아가는 세대의 삶과 생각이 반영되어 나타난다. 저출산의 심각성을 부르짖고 예산을 투입해 출산율을 높여보려는 정부의 노력이 그래서 참 허망하다. 출산으로 당장 수당 몇 푼을 쥐어준대도 낳아서 키우는 것이 어디 돈만으로 해결이 되는 것이던가? 당장 반려견 양육에 대한 인식이나 반려 환경의 변화만도 못한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를 향한 시선이 냉정하기 그지없는 지금에 와서 개보다 키우는데 몇 배 이상의 품이 드는 데다가 심지어 좀 커서 주관이 생기면 부모와 싸울 수밖에 없는 사람을 낳겠다는 용기는 예전에 비해 많이 필요해진 것은 아닌지..


우리 사회가 점점 인간에 대한 관대함이 줄어드는 느낌이다. 사회적 시선에서 이상한 사건이나 이상한 부모가 늘어나니 그럴 수밖에 없다지만 차라리 동물에게 관대해지는 것이 더 쉬우므로 그쪽으로 사회 전체가 방향을 튼 거 같이 느껴지기도 하다. 연이어 터지는 아동학대 사건으로 사회와 부모가 아동을 돌보지못하는 피곤함이 가중되어져서 그런 걸까? 물론 마찬가지로 동물학대 사건도 무척 많다. 그러나 우리는 어쩌면 동물학대보다는 아동학대에 더 크게 분노하지 있지 않나 싶다. 뉴스를 보면 분명 동물학대보다는 아동학대 사건에 대해 더 강력하게 비판적인 어조의 기사가 많다. 그래서 어쩌면 저 천인공노할 학대에 대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이 키우는 것에 대해 더 냉엄한 잣대를 들이댈 것을 주장하는 듯 하다. 물론 그것이 당연한 일이긴 하겠으나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는 주눅이 들고 무섭기까지 하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반려견 훈련사의 훈련으로 행동이 교정되는 것보다 몇백배의 힘과 노력이 필요하다.


좋은 부모가 되기란 참 어렵다. 좋은 반려견의 주인이 되는 것은 그에 비해 쉽다. 그런 차이점이 지금의 이런 사회변화를 만든 것은 아닐까? 고양이와 아이 둘을 키우는 나로서는 이런 세상이 참으로 안타깝다. 이제 소아과에 더 이상 가지 않아도 진료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아이들이 컸고, 아이를 데리고 다니지 않아도 되서 집에 두고 노키즈존에 입성할 수 있게 되니 ‘맘충’ 이란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어 감사해야 하는 걸까?


내 아들들이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솔직히 지금 현재로서는 내 알바가 아니다. 물론 결혼을 해서 일가를 이룬다면 기쁠 거 같긴 하다. 하지만 미래에 생길지 안 생길지조차 모르는 내 아들의 부인이 어딘가에서 ‘맘충’이 되고 내 손주가 어딘가에서 민폐가득인 존재가 될 수도 있다면, 그런 세상에서는 내 아들들이 반려견을 키우며 기쁘게 삶을 살아가기를 나도 더 권장하고 싶다.


그래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이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출산과 양육수당만 만들지 말고 반려견 수당도 준비할 생각은 없는지 말이다. 이미 그런 세상이 왔는데 왜 이렇게 한발 느린지 정신 차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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