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의 윤리학

제1부: 낙인의 윤리학 — 실패는 죄인가? (규격화의 폭력성)

by 잼민아씨

실패라는 주홍글씨: 효율성의 칼날 위에 선 인간


"인간은 단지 도구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다." — 임마누엘 칸트


현대 사회의 흐름은 인간의 실존을 데이터와 생산성이라는 효율적인 수치로 확인하곤 한다. 우리는 대학에 입학함과 동시에 학점, 어학 성적, 대외활동이라는 일련의 규격이 흐르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인다. 칸트는 인간의 존엄성이 그가 지닌 유용성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에 있다고 말했지만, 오늘날의 대학 사회는 학생을 학문의 주체로 바라보기보다 사회의 요구에 부응해야 하는 준비된 인적 자원으로 대하는 경향이 짙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강의실에 앉아 있는 시간조차 온전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시간은 곧 뒤처지는 것이라는 강박이 늘 나를 따라다녔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정작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만 반복했다. 남들은 저 멀리 앞서가는 것 같은데 나는 방향성조차 찾지 못했다는 사실이 나를 가장 깊은 불안 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러한 개인의 불안은 사실 명확한 구조적 배경을 갖는다. 통계청의 2023년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청년층의 삶의 만족도는 전 연령대 중 낮은 축에 속하며, 고립감은 매년 심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 매체와 자기계발 담론은 여전히 개인의 노력과 의지를 신화화한다. 대기업 취업이나 수도권 자산 보유 등 어떤 규격화된 성공에 도달하지 못한 이들을 향해 사회는 위로 대신 "준비가 부족했다"거나 "도전정신이 결여되었다"는 차가운 시선을 보낸다. 이러한 시선은 통계적으로 증명된 구조적 부조리를 개인의 나태함으로 둔갑시키는 심리적 폭력으로 작용한다.


방향을 잃고 헤매던 나날들 속에서 나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내 안에서 솟구치는 자책이었다. 남들은 다 아는 정답을 나만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스스로가 한없이 미련하게 느껴졌다. 나를 숨 쉬는 인격체가 아니라 오직 결과물로만 평가받아야 하는 존재로 대했던 나 자신이 스스로를 가장 먼저 비난하고 있었다. 이는 현대 철학자 한병철이 피로사회에서 분석했듯, 외부의 강압이 아니라 스스로를 착취하는 성과주체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오늘날의 인간은 스스로를 착취한다. 그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며, 자기 자신과 전쟁을 치른다"는 그의 말처럼, 나는 나 자신의 가장 가혹한 심판관이었다.


이 심리적 폭력의 정점에는 능력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자리 잡고 있다. 마이클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을 통해 이 시스템이 어떻게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지 폭로한다. 승자는 자격이 있어 이겼고 패자는 자격이 없어 졌다는 논리는 승자에게는 독선적인 오만을, 패자에게는 견딜 수 없는 굴욕감을 안겨준다. 나의 방황이 단순한 게으름으로 치부될 때, 나는 실패가 도움이 필요한 상태가 아니라 교정되어야 할 무능으로 정의되는 능력주의의 차가운 교리 아래 신음해야 했다.


불안은 일상의 아주 평범한 순간마저 침식했다. 친구와 나누는 가벼운 대화조차 이래도 되는 걸까라는 의구심에 잠식당했다. 사회는 개인이 고유한 가능성을 꽃피울 때까지 기다려주는 비옥한 토양이 되기보다, 낙오자를 빠르게 걸러내는 거름종이가 되기를 선택한다. 시스템이 방관하는 사이, 갈 길을 잃은 개인은 소외감을 느끼며 홀로 남겨진다. 사회는 개인을 기다려줄 의무가 있으며, 존엄은 성공한 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기본권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결국 우리가 진정으로 물어야 할 것은 나는 왜 실패했는가?가 아니라, 왜 이 사회는 단 하나의 성공 방식만을 정답이라 말하며 그 외의 삶을 불안하게 만드는가?이다. 오직 성취만을 강조하는 문화는 우리에게 승리하는 법만을 가르치지만, 진정한 인간의 권리는 때로는 멈출 권리, 방황할 권리, 그리고 정해진 규격 밖에서도 존중받을 권리를 포함해야 한다.


자책의 굴레 속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나의 가치가 타인의 평가나 취업의 성패로만 결정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시간 역시 나의 소중한 삶이며, 그 방황이 곧 나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칸트의 말처럼 우리가 그 자체로 목적성인 존재라면, 나의 불안과 방황은 잘못이 아니라 내가 나만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진통일 뿐이다. 이제 나는 사회가 미리 써둔 정답지를 내려놓고, 그저 나라는 존재를 담담히 인정하려 한다. 그것이 나를 짓눌렀던 시선에서 벗어나, 가장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나를 지켜내는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