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이라는 거대한 구멍

by 잼민아씨

상실은 단순히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삶의 지도를 그려주던 북극성이 갑자기 소멸해버린 것이며, 정성껏 가꾸던 화단에서 가장 크고 화려했던 꽃이 예고 없이 뿌리째 뽑혀 나간 자리였다. 꽃이 뽑힌 자리에는 깊은 구멍이 생겼고, 뒤섞인 흙더미 사이로 날카로운 통증이 비어져 나왔다. 나는 그 구멍을 메우려 애썼지만, 내 의지는 번번이 상실이라는 거대한 중력에 이기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이별 후의 성장은 결코 우아한 모습이 아니었다. 그것은 억지로 몸을 일으켜 책상 앞에 앉았으나, 여전히 귓가를 맴도는 그의 서늘한 말투와 어떤 표정도 읽을 수 없던 그 차가운 눈빛에 무너져 내리는 비루한 과정의 반복이었다. 노트북의 커서는 비어버린 내 마음처럼 깜빡였지만, 나는 단 한 문장도 채우지 못한 채 짐승 같은 울음을 토해내며 다시 침대 속으로 파고들었다. 사랑이 증발해버린 자리에는 냉기만이 감돌았고, 나는 그 차가운 목소리의 환청을 견디며 내가 얼마나 사랑받지 못했는지를 뼈아프게 시인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 지독한 무너짐 끝에서 나는 비로소 보았다. 꽃이 뽑혀 나간 구멍이 깊으면 깊을수록, 그곳으로 더 많은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타인이라는 존재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을 때는 결코 보이지 않았던, 나의 민낯과 나의 결핍, 그리고 내가 나를 위해 단 한 번도 내어준 적 없던 여백이 그곳에 있었다.

나는 이별 후에야 제대로 나를 마주 보게 되었다. 그를 사랑하느라 방치했던 나의 예민한 피부를 어루만지고, 그의 기분을 살피느라 무시했던 나의 감정들을 하나씩 호명해 보았다. 그 과정은 상처 난 살점을 도려내는 것만큼 아팠지만, 동시에 내가 얼마나 진실된 마음으로 사랑을 일구었는지를 확인하는 숭고한 증명서였다. 내가 느낀 그 거대한 공허함은, 역설적이게도 내가 그만큼 거대한 진심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야 한다. 상실의 구덩이에 앉아 평생 울고 있을 수는 없다. 이제 나는 그 비어버린 자리를 타인의 애정이나 확인되지 않는 약속으로 채우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나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아주 작은 선택들로 그 구멍을 메워가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향의 차를 우려내고, 나를 웃게 만드는 책 장을 넘기며, 타인이 아닌 나 자신과 정성스러운 대화를 나누는 일.

행복은 거창한 도달점이 아니라, 상실의 틈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빛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에 있었다. 무너졌던 그 시간들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나는 아파본 만큼 타인의 슬픔에 공명할 수 있는 넓은 가슴을 얻었고, 홀로 서본 만큼 내 삶의 무게를 지탱할 단단한 다리 근육을 얻었다.

이별 후의 시간은 나를 미워하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나를 더 깊이 이해하고 환대하기 위한 필수적인 통과의례였다. 나는 이제 그 구멍 난 자리를 흉터라 부르지 않고 '빛의 통로'라 부르기로 했다. 그 통로를 통해 들어온 빛이 나의 내일을 비추고, 나는 그 빛을 따라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 진짜 행복에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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