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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베베 Apr 18. 2023

퍼포먼스 이론은 왜 철학이 필요한가

David Z. Saltz / 번역・발췌: 아리타



David Z. Saltz (2001), “Why Performance Theory Needs Philosophy,” Journal of Dramatic Theory and Criticism 16(1).



학자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한 이래로 나는 이중생활을 해왔다. 나는 박사 학위와 교수직을 모두 연극에서 취득했지만 미국 미학회 회의에서 여러 논문을 발표하고 이 학회의 저널인 미학 및 예술 비평 저널에 여러 에세이를 발표하기도 했다. 미국 미학 협회와 JAAC의 독자층은 거의 대부분 미국 내 철학계에서 일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게다가 이들 철학자 중 대부분은 현대 연극 및 공연 이론과 비평 담론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몇 안 되는 주요 이론적 패러다임 중 하나인 영미 ‘분석적’ 전통에 속해 있다.




수년 동안 나는 청중이 연극학자인지 철학자인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말하기와 글쓰기 방식을 택하는 데 익숙해졌다. 실제로 나는 연극학자와 철학자를 위한 작업을 한 프로젝트의 두 가지 측면으로 생각한다. 


연극 학회나 저널에 발표하는 논문은 보통 철학자를 위한 논문보다 특정 연극 텍스트나 공연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논문에는 다른 이론가에 대한 암시나 인용을 더 많이 포함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철학적인 청중을 위해 쓰는 논문은 내가 발전시키고 있는 독창적인 논증에 훨씬 더 초점을 맞춘다. 실제로, 가상의 예시(철학자들이 ‘사고 실험’이라고 부르는 것)가 실제 연극이나 공연의 예시만큼이나 효과적으로 내 목적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 연극학자들을 위한 내 논문은 이론을 사용하여 특정 사례를 설명하고 그러한 이론적 입장의 비평적・문화적・역사적 적용과 함의에 중점을 둔다. 반면 철학자를 위한 논문은 이론적 입장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나는 내가 옹호하는 입장에 대해 가능한 한 가장 강력한 사례를 구축하고, 대안적인 입장에 반대하는 데 대부분의 에너지를 쏟는다. 이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부분 중 하나는 관련된 모든 입장을 가능한 한 명확하고 모호하지 않게 표현하고 이러한 입장의 근간이 되는 철학적 전제를 파악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미국 철학자들이 실천하는 ‘이론’은 미국 연극 및 공연학계 대부분의 학자들이 실천하는 ‘이론’과는 다른 세계이다. 즉, 두 이론가 그룹은 서로 다른 두 담론 세계를 차지한다. 이 이론가들이 근거로 삼는 이론적 텍스트와 그들이 응답하는 이론적 텍스트는 거의 겹치지 않는다. 


미국의 연극 및 공연 이론가들은 영미 철학자들이 수행한 작업을 그저 알지 못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들은 분석 철학이라는 개념 자체에 불쾌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한동안 분석적 전통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아주 쿨하지 못한 일이었다. 미국 연극 및 공연학계의 학자들은 철학적 통찰력과 영감을 얻기 위해 같은 캠퍼스의 철학자들이 수행하는 연구를 참조하기보다, 유럽 대륙 쪽을 바라보는 것을 훨씬 더 편안하게 느낀다. 이 분열은 제도적 정치보다 더 깊은 것이다. 많은 퍼포먼스 이론가들은 분석 철학자들이 수행하는 작업의 본질에 대해 정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분석 철학의 스타일이 지나치게 기술적이고 건조하며 지루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주장 자체가 지나치게 ‘실증주의적’이고 역사주의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우려가 완전히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 파편적인 것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인상에 기인한 것이다.


철학적 미학 분야와 관련해서 특히 오해가 많다. 많은 공연 이론가들은 예술 철학자들이 아름다움과 숭고함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정의하는 데 몰두하고, 서양 백인 남성 예술가들의 고전적인 정경만을 고려한다고 생각한다. 연극 이론이 비슷한 편견과 한계로 특징지어지던 시기, 즉 196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대체로 그랬다(늘 중요한 예외가 있긴 했지만). 그러나 변화하는 문화적 조류는 다른 학계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 철학계의 기슭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학 및 예술 비평 저널의 논문은 여전히 베토벤과 베르메르를 언급하지만 뿐만 아니라 재즈와 록을, 제프 쿤스와 마사 스튜어트 또한 언급한다.




공연과 연극 분야의 이론가들은 비평을 공격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분석 철학자들은 자신의 입장에 대한 날카롭고 상세한 비판을 환영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견해에 동의하는 철학자보다 동의하지 않는 철학자가 훨씬 더 유용한 경우가 많으며,  반박이 더 강력하고 설득력 있을수록 자기 입장을 명확히 하고 구체화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 


분석철학의 개별 작업은 전형적으로 내부적으로도 극적인 형태를 취한다. 전형적인 접근 방식은 철학자가 먼저 입장을 정립한 다음 그 제안에 대한 반론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최고의 철학은 결론을 서두르지 않는데, 이러한 방식은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비철학자에게는 매우 실망스러울 수 있다. 게다가 우여곡절 끝에 나온 결론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심지어 뻔해 보이기도 한다. 많은 철학적 입장의 중요성은 그 입장을 담론의 맥락에 놓을 때만 분명해진다. 궁극적으로 지지되는 입장은 그 과정에서 거부된 입장보다 덜 중요한 경우가 많다. 

반면, 연극 및 공연 학계에서 실행되는 이론은 결론의 심오함에는 큰 비중을 두지만, 그 결론을 뒷받침하는 논증의 질에는 훨씬 덜 비중을 두곤 한다. 따라서 반직관적인 결론은 매우 유혹적이다. 특히 역설은 많은 퍼포먼스 이론에서 긍정적인 미덕이다. 역설을 초래하는 주장은 일관성이 없다고 배척당기보다, 오히려 심오한 것으로 칭송받는다. “X는 Y이면서 동시에 Y가 아니다”는 매우 만족스러운 정식이다. 예컨대 연기에서 배우의 정체성을 ‘내가 아닌 것’과 ‘내가 아닌 것이 아닌 것’의 결합으로 본 리처드 스케줄러(Richard Scheduler)의 설명은, 연기의 상태를 설명할 때 연기 이론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정식이 되었다. 스케줄러의 정식이 중요하고 유용하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나는 배우의 정체성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서 가치가 있는 것은, 개념적 장애물을 식별하고 엄격한 철학적 질문을 요구하는 공연 이론의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방식이라고 제안한다.




공연 및 연극 이론에서 우리는 너무나 자주 인용을 통해 논쟁을 벌인다.  그럴듯하게 들리고 우리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주장을 우리가 존경하는 사람이 발표하면, 우리는 그 주장을 비판 없이 채택하고 적용한다. 연극 및 공연 이론의 너무 많은 주장이 다음과 같은 문구에 그 타당성을 걸고 있다. “아무개가 우리에게 증명/가리킨/밝힌 대로...” 공연 이론은 자신이 채택한 철학적 원리를 뒷받침하는 독창적인 주장을 거의 발전시키지 않기 때문에(실제로, 원래 그러한 입장을 발전시킨 이론가들이 제공한 주장조차 거의 익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이론에 기생할 따름이다. 이론 담론의 흐름은 대개 독점적으로 공연 이론'에만' 흘러들어갈 뿐, 다른 학문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다시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제 공연 및 연극 이론가들이 음지에서 벗어나 이론 담론의 학제 간 드라마에서 본격적인 주체로 등장해야 할 때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취하는 입장과 그 입장의 근거가 되는 이론적 가정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커버 이미지 출처 : https://www.performancephilosophy.org/2020/09/04/performance-philosophy-problems-2021-call-for-particip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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