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해기점 하나가 관할권과 안보를 바꾸는 이유
< 이 글은 저자가 기존에 학회 발표 및 투고한 논문을 기반으로 작성한 것임을 먼저 밝혀둡니다. 새롭고 독창적 연구라기 보단, 앞서 훌륭한 성과를 남기신 선배 연구자님들의 연구에 조금이나마 보태는 마음으로 임하였습니다. 선구적인 연구를 통해 영해기점 설정에 대한 학문적 깊이를 남겨주신 여러 연구자님의 노고에 감사드림을 먼저 전합니다>
서해를 떠올리면 많은 사람들은 먼저 북방한계선(NLL), 중국어선, 서해 5도, 연평해전 같은 단어를 생각합니다.
하지만 바다에서 이 점 하나는 생각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영해기점은 단순한 좌표가 아닙니다. 어디까지가 우리의 영해인지, 어디에서 어떤 법을 적용할 수 있는지, 외국 선박이나 정부선박의 활동에 어디까지 대응할 수 있는지를 가르는 출발점입니다. 다시 말해, 영해기점은 바다 위의 작은 표시가 아니라 국가의 관할권과 해양주권이 시작되는 기준점입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서해, 그것도 서해 5도와 경기만 인근 해역에는 아직도 이 기준이 충분히 정비되지 않은 구간이 남아 있습니다. 이 글은 그 공백이 왜 단순한 기술적 미비가 아니라 주권과 안보, 그리고 국민 보호의 문제인지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육지에서는 담장이나 도로, 지번이 경계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바다는 눈에 보이는 선이 없습니다. 그래서 국제법은 연안국이 바다의 폭을 측정할 때 기준이 되는 선을 두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선(baseline)입니다.
기선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해안의 저조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그어지는 통상기선(normal baseline)이고, 다른 하나는 해안선이 복잡하거나 섬이 많을 때 섬과 섬, 또는 돌출부를 직선으로 연결하는 직선기선(straight baseline)입니다. 해양법상 영해, 접속수역, 배타적경제수역(EEZ), 대륙붕의 범위를 따질 때 이 기선은 출발점이 됩니다. 그래서 기선 설정은 단순히 선을 어디에 긋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바다를 어떻게 관리하고 어디까지 통제할 수 있느냐와 연결됩니다.
쉽게 비유하면 이렇습니다.
집이 있다고 해서 마당의 경계가 저절로 명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디를 경계로 삼느냐에 따라 내 땅의 범위와 관리 책임이 달라집니다. 바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섬이 우리 땅이라는 사실과, 그 주변 바다의 법적 기준선이 충분히 정비되어 있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서해는 단순한 주변 해역이 아닙니다.
환황해권 시대와 맞물리면서 對중국 무역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한-중 해양경계획정이 진행 중인 가운데 중국은 서해를 황해라 부르며 내수화 야욕을 지속적으로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해양 주권 확보를 위해 독도 만큼 관심이 필요한 해역입니다. 또한, 우리나라 주요 도시들이 서해에 포진되어 있으며, 반도체 산업 등 수도권 공업지역의 중요성이 남동임해공업지역만큼 성장하고 있다. 따라서 서해를 단순하게 바라봐서는 아니된다
특히, 서해 5도는 군사적으로 민감한 공간일 뿐 아니라, 어업과 여객 운송, 항만 물류가 이어지는 생활과 산업의 해역이기도 합니다. 특히 경기만과 인천 앞바다는 수도권으로 이어지는 해상 관문이라는 점에서 전략적 의미가 큽니다. 인천항은 우리나라 물동량의 많은 부분을 처리하고, 서해안 항로는 대외 교역과도 직결됩니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해역에서 한국의 직선기선 체계는 소령도 부근을 끝으로 북쪽 방향에서 충분히 이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즉, 서해 5도와 경기만 인근의 일부 수역은 우리에게 중요한 바다임에도, 직선기선을 통해 보다 명확하게 관리할 수 있는 구조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영해기점 미설정은 단순한 행정상의 미비가 아니라, 관할권 행사 기준의 불명확성과 안보 대응력의 약화를 초래하는 구조적 공백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최근 서해를 둘러싼 해양 질서는 결코 정적이지 않습니다.
중국은 서해와 인접 해역에서 점진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해 왔고, 구조물 설치, 군사활동, 해양 진출 강화 등은 서해가 더 이상 방심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영해기점과 기선은 단지 지도 위의 선이 아니라, 국가가 어떤 태도로 서해를 관리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법적·정책적 언어가 됩니다.
이 지점에서 많은 분들이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직선기선이 충분히 설정되지 않았다 해도, 서해 5도는 분명 우리 영토 아닌가? 그렇다면 그 주변 바다도 당연히 우리 영해 아닌가?"
실제로 헌법재판소는 2017 헌마 202 사건에서 대체로 그런 방향의 판단을 내렸습니다.
서해 5도 주민들이 직선기선 기점을 설정하지 않은 것은 입법부작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지만, 헌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직선기선이 별도로 정해져 있지 않으면 원칙적으로 통상기선, 즉 해안의 저조선을 기준으로 12해리 영해가 성립하므로, 별도의 기점이 없다고 해서 영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헌재는 “영해는 이미 존재한다”는 점을 전제로,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 공권력 불행사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이 판단은 법률 문언에 비추어 보면 일정 부분 타당합니다.
국제해양법과 국내 영해법 체계상, 통상기선으로부터 12해리 영해가 성립한다는 점 자체는 부정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바로 이 지점이 제가 비판적으로 짚는 부분입니다. 헌재의 판단은 영해의 존재 여부에는 답했지만, 기점과 기선의 구체적 정비가 부족할 때 발생하는 관할권 행사 기준의 불명확성, 그리고 안보 관리 수단의 축소까지는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일반인이 체감하기 어렵게 만드는 이유는, 바다의 공백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법과 안보는 늘 그런 보이지 않는 경계에서 차이가 납니다.
서해 5도 주변 해역에 통상기선만을 전제로 할 경우, 연평도와 소청도 사이 약 27해리 해역이 영해 밖의 수역, 즉 배타적경제수역으로 남게 됩니다. 이 말은 해당 수역이 곧바로 “우리 바다가 아니다”는 뜻은 아니지만, 영해와 같은 수준의 전면적 관할권을 행사하는 공간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특히 이 구간에서 항행사고나 선박충돌 같은 사건이 발생할 경우, 형사관할권 행사에 상당한 제약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제기됩니다.
배타적경제수역은 연안국의 권리가 인정되는 수역이지만, 선박 항행과 관련해서는 공해적 성격이 강합니다. 따라서 선박 충돌이나 기타 항행사고가 발생했을 때, 해양법상 기국주의(flag state jurisdiction) 원칙이 강하게 작동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그 선박이 어느 나라 국적을 달고 있느냐가 형사관할권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뜻입니다. 결국 “우리 바다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사고가 나더라도, 우리가 즉시 전면적으로 형사관할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단지 법조문을 어떻게 읽느냐의 차원에 머물지 않습니다.
서해 5도와 육지를 오가는 여객선, 어선, 상선이 다니는 길목에서 이런 관할권의 공백이 남는다면,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해야 하는 국가의 역할도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점을 “국민 보호 기능의 약화”로 설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관할권 문제가 법적·제도적 공백이라면, 안보 문제는 훨씬 더 직관적입니다.
서해 5도와 경기만 인근 해역은 수도권과 연결되는 전략적 공간입니다.
그런데 이 해역의 상당 부분이 직선기선을 통해 보다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채 영해 밖 수역으로 남는다면, 외국 선박, 특히 외국의 정부선박이나 군함의 활동에 대해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규범적 대응 수단도 그만큼 좁아질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점을 중요한 안보상 취약성으로 봅니다.
물론 “영해를 넓히면 외국 군함이 완전히 못 들어오게 되는가”라고 물으면, 그렇게 단순하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해양법에서는 무해통항권(innocent passage)이라는 개념이 있고, 군함의 통항 문제 역시 국가별 입장 차이가 존재합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영해 안에서는 군함과 정부선박에 대하여 연안국이 사용할 수 있는 통제 장치, 예를 들어 유해한 통항에 대한 판단, 사전통고, 일시 정지, 퇴거 요구 같은 법적 수단의 근거가 훨씬 분명해진다는 점입니다. 반대로 영해 밖의 수역에서는 선박의 항행의 자유가 훨씬 강하게 작동합니다.
즉, 문제의 본질은 “외국 선박이 오느냐”가 아닙니다.
유해한 행위에 대해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법적 범위를 스스로 좁혀 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이 더 정확합니다.
결국 영해기점 미설정의 본질적 문제는 외국 군함 통항의 존재 자체보다도, 서해 5도와 경기만이라는 전략적 요충지에서 국민 보호와 국가안보를 위해 작동할 수 있는 규범적·절차적 대응 수단의 범위를 축소시킨다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질문은 분명해집니다.
서해의 영해기점 공백이 문제라면, 어디까지 어떻게 정비하는 것이 현실적일까?
이 안은 소령도 다음에 가지도를 새로운 기점으로 두고, 소령도와 가지도*를 직선기선으로 연결하는 방식입니다.
* 가지도: 가지도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에 속하여 연평도 인근의 작은 섬이다. 인근 수역에 가지초라는 명칭이 있어 그에 맞추어 가지도로 명명될 뿐 정식 명칭은 현재 없는 것으로 확인된다. 그리고 해도에만 표시되어 있을 뿐, 무인도서나 특정도서로 관리되고 있지 않다. 해양수산부 영토관리과의 의견에 따르면 현재 무인도서의 보전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실태조사 이뤄질 예정임으로 그 과정에서 가지도에 대한 정식 명칭 등 국가 관리가 들어갈 예정이다. 직선기점으로 활용될 여지가 있는 만큼 해양영토관리 차원에서 빠른 시일 안으로 정비가 필요한 실정이다.
이 방안의 장점은 명확합니다. 한 번에 너무 멀리 나아가기보다, 연평도 권역 쪽으로 기점을 단계적으로 전진시키는 방식이기 때문에 외교적·안보적 부담을 상대적으로 낮추면서도 관할 공백을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이 구간(소령도와 가지도 사이의 거리)은 약 37해리 정도로, 국제 비교상 과도하다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며, 육지와의 연계성 측면에서도 비교적 설명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안은 서북방 전체를 한 번에 크게 확장하기보다, 국제법적 정당성과 정책적 실현 가능성을 함께 고려한 점진적 접근이라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논문은 최종적으로 가지도안을 가장 현실적인 절충안으로 평가합니다
반면 소령도와 소청도를 단일 선분으로 잇는 안은 훨씬 더 강한 효과를 가집니다.
기준선이 단순하고, 더 넓은 해역을 포섭할 수 있으며, 서북방 해역의 관리 기준을 보다 명료하게 제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실제로 이 안 역시 국제 비교상 무리한 수준은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다만 강한 안이 늘 가장 좋은 안은 아닙니다.
소청도안은 한 번에 크게 나아가는 만큼, 국제법적 설명 책임도 커지고, NLL 질서와 정전체제, 북한의 주장, 주변국의 반발 가능성까지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즉, 국익 차원에서는 매력적일 수 있지만, 외교·안보 관리의 부담도 그만큼 커집니다. 그래서 논문은 소청도안의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현시점에서는 가지도안이 더 현실적이라고 판단합니다.
서해 영해기점 문제를 들여다보면, 결국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 문제는 단순한 좌표의 문제가 아닙니다. 더 넓게 보면 국가가 서해를 어떤 공간으로 인식하고, 어떤 방식으로 관리하려 하는가의 문제입니다.
헌법재판소의 판단처럼, 법리상 통상기선을 통해 일정 범위의 영해는 이미 인정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필요한 것은 영해의 존재를 선언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해 5도와 경기만 인근 해역에서 관할권의 기준을 더 명확히 하고, 국민 보호와 안보 대응이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법적 구조를 정비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서해의 영해기점 정비는 단순한 법기술이 아니라 정책적 결단의 문제입니다.
너무 보수적으로 머물면 관할권 공백과 안보 공백이 계속 남을 수 있고, 너무 급격하게 나아가면 외교·안보상의 부담이 커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시점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접근은, 국제법적 설명 가능성과 현실적 실행 가능성을 함께 고려한 단계적 정비, 다시 말해 가지도안을 중심으로 한 점진적 접근일 수 있습니다.
서해에는 아직도 비어 있는 선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을 어떻게 채우느냐는, 단지 지도를 고치는 일이 아니라 우리의 해양주권과 국가안보, 그리고 국민을 보호하는 국가의 책임을 어디까지 구체화할 것인가에 관한 선택입니다.
박장호·윤귀호·최정호, "서해 연안 영해기점 미설정에 관한 비판적 고찰", 해사법연구 제38권 제1호, 한국해사법학회(2026.03), 227-272쪽
박장호·윤귀호·최정호, "서해 연안 영해기점 미설정에 관한 비판적 고찰", 해양환경안전학회 학술대회 논문집 2025년도 공동학술대회, 111쪽
중앙일보, 정재홍 기자, "제1연평해전·대청해전 승리 상징 ‘참수리 325호’ 고속정, 고철로 폐기",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11589 (최종방문일: 2026.04.05.)
연합뉴스, 양영석 기자, "서해 불법조업 중국어선 지난 3년간 2배↑…"어민 생존권 위협", https://www.yna.co.kr/view/AKR20201005068600063 (최종 방문일 2024.04.05.)
해양교육포털 해양교육센터, 해양경계, https://www.ilovesea.or.kr/eduGarden/eduTemplet.do?menuCode=010200(최종 방문일: 2026.04.05.)
해양교육포털 해양교육센터 해양영토, https://www.ilovesea.or.kr/eduGarden/eduTemplet.do?menuCode=010200 (최종 방문일: 2026.04.05.)
금성출판사, 우리나라 영역, https://dic.kumsung.co.kr/web/smart/detail.do?headwordId=4812&findCategory=B002002&findBookId=27(최종방문일: 2026.04.05.)
연합뉴스, "서해에 구조물 설치한 중국, 해상훈련도…서해 내해화 수순 밟나", https://www.youtube.com/watch?v=9r1ebQtVmT4 (최종방문일: 2026.04.05.)
위키백과, 서해 5도, https://ko.wikipedia.org/wiki/%EC%84%9C%ED%95%B4_5%EB%8F%84(최종방문일: 2026.04.05.)
연합뉴스, 김지헌 기자, "외교부 "중국 서해 관리시설, PMZ 밖으로 이동 완료", https://www.yna.co.kr/view/AKR20260203085300504(최종방문일: 2026.04.05.)
MBC 뉴스투데이, 중국 "서해에서 군사활동"‥선박 진입 금지 , https://www.youtube.com/watch?v=w99Gwsgy7QI&list=PPSV(최종방문일: 2026.04.05.)
인천투데이, 이종선 기자, 서해5도 중국군함 출몰...해양주권 수호 방안 시급 , https://www.incheon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205909(최종방문일: 2026.04.05.)
인천투데이, 김각봉 기자, "북방한계선 이남 연평도와 소청도 사이는 영해가 아니다?", https://www.incheon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36349 (최종방문일: 2026.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