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전원을 내려버린 시간
어느 날부터인가 내 안의 감정들이 서서히 흐릿해지는 게 느껴졌다. 내 마음이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의 것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일상은 어제와 다름없이 흘러갔다. 해야 할 일은 여전히 산더미 같았고, 나는 사람들과 어울려 적당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내 삶의 현장에 서 있었지만, 정작 모든 것이 낯선 이의 이야기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유리벽 너머로 남의 집 잔치를 구경하는 손님이 된 것만 같았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차가운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특별히 슬픈 일도, 기쁜 일도 없는 이 무미건조한 상태가 어쩌면 어른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삶이 아닐까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가슴 한복판을 가만히 짚어보면 그곳엔 아무런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 텅 빈 구멍 하나가 휑하게 뚫려 있는 것만 같았다. 겉으로는 평범한 직장인이었지만, 내면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이 무감각한 상태를 오랫동안 ‘괜찮은 것’이라 믿으며 살았다. 고통을 피하려고 감정을 차단했더니 일상은 전보다 훨씬 수월하고 매끄럽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음이 평온해졌다고 믿을수록 몸은 바닥으로 꺼지듯 무거워졌다. 아무리 잠을 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았고, 세상의 색은 모두 바랜 것처럼 무미건조하게 보였다. 슬픔을 느끼지 못하게 되자 기쁨 역시 그 길을 따라 떠나버렸다는 사실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회사에서 나는 늘 흔들림 없는 사람으로 통했다. 어떤 불합리한 처사 앞에서도 감정을 보이지 않고 차분하게 대안을 찾았기 때문이다. 동료들은 나를 “이성적이고 내공이 깊다”며 칭찬했다. 그러나 내 마음 한구석에는 설명하기 힘든 허탈함이 남았다. 나는 정말 어른답게 강해진 걸까, 아니면 그저 영혼이 무뎌진 걸까. 사실은 화를 낼 힘조차, 서운함을 느낄 최소한의 의욕조차 바닥나버린 상태였는데 말이다.
내 안의 감정 볼륨을 줄이기로 했던 것은 단 한 번의 커다란 사건 때문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실망들이 겹겹이 쌓여 굳어져버린 결과였다. 기대했지만 아무런 응답도 없었던 날들, 진심을 꺼냈으나 무관심만 돌아왔던 기억들…. 그때마다 나는 ‘더 이상 느끼지 말자. 그래야 덜 아프고 살 수 있으니까.’라고 결심했다. 그 결정은 고통으로부터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었지만, 동시에 나를 숨만 쉬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내린 선택이 나를 소외시키고 있었다.
퇴근 후 불 꺼진 집에 돌아오면 습관적으로 소파에 몸을 파묻고 TV를 켰다. 화면 속 사람들은 크게 웃고 울며 화를 냈지만, 내 마음은 그 어떤 장면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리모컨을 쥔 손에 힘을 뺀 채 의미 없이 시간만 흘려보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무감각한 상태에 익숙해졌고, 그 익숙함은 나를 일상의 유령처럼 만들었다. 내가 이 공간에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이 무감각이야말로 내 마음이 보내는 가장 절박한 신호였다. 아픔은 견뎌내기라도 할 수 있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는 상태는 나를 내 삶의 주인이 아닌 낯선 이방인의 자리로 밀어냈다. 좋아하던 음악은 소음이 되었고, 소중한 사람의 기쁜 소식에도 가슴이 뛰지 않았다. 감정의 연결이 끊기자 살아있다는 실감마저 사라진 채 마음의 전원이 꺼진 자리에는 온기 없는 기계음만 차갑게 맴돌고 있었다.
몸의 신호는 마음보다 훨씬 빠르고 정직했다. 늘 속이 더부룩했고 이유 없는 두통이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지만 병원에서는 “신체적으로는 지극히 정상입니다. 스트레스 관리 좀 하세요”라는 진단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검사 결과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데, 가슴을 납덩이처럼 짓누르는 이 거대한 무게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감정을 잃어버린 마음은 몸을 통해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문득, 이 무감각이 질병이 아니라 마음이 보내는 마지막 구조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오랫동안 홀로 버텨온 마음이 더는 감정의 파도를 견딜 힘이 없어 스스로 전원을 내려버린 상태였던 것이다. 마치 과전류가 흐를 때 화재를 막으려 차단기가 내려가듯, 내 마음 역시 나를 살리기 위해 잠시 어둠 속으로 물러나 있었던 것이다. 무감각은 삶을 포기한 흔적이 아니라 더 이상 산산조각이 나지 않기 위해 마음이 선택한 최후의 보호막이었다.
어느 날 저녁, 설거지를 하던 중 컵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평소라면 묵묵히 치웠을 일이었지만 그날은 달랐다. 흩어진 파편을 보는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 무너져 내리며 눈물이 터져 나왔다. 컵이 깨진 게 슬퍼서가 아니었다. 무감각 아래 꾹꾹 눌러 담아두었던 서러움이 그 작은 틈을 타 쏟아진 것이었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숨이 넘어갈 듯 울었다. 그 울음은 “나 너무 힘들어, 제발 나 좀 봐줘”라고 오래도록 삼켜왔던 마음이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내뱉은 첫 마디였다.
그 처절한 울음 속에서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내 안에 여전히 뜨거운 온기가 흐르고 있으며, 감정이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라 숨죽인 채 꿈틀대고 있었다는 분명한 신호였기 때문이다. 무감각은 영원히 굳어버린 상태가 아니라, 마음이 다시 흐르기 전까지 잠시 숨을 고르며 나를 지켜주던 시간이었다. 얼어 있던 땅속의 샘물이 마침내 지표면을 뚫고 천천히 솟아오르는 기분이었다. 그 미세한 떨림이 내 안에 서서히 번지고 있었다.
이제 나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무미건조한 하루를 보내더라도, 그 상태를 두려워하며 나 자신을 다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고요함 속에 머물러 나를 기다려 주는 법을 배우고 있다. ‘아, 오늘은 마음이 쉬고 싶은 날이구나.’라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면, 이상하게도 무감각의 터널은 이전보다 훨씬 짧아진다. 온전히 느껴지는 날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날 사이를 오가며 나는 조금씩 진짜 내 삶을 다시 되찾아가고 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