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지 않고 함께 있기
지난 여정이 내 안의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알아차린 그 감정에 이름을 붙여보는 시간이었다면, 이번 여정은 내가 알아차리고 이름 붙인 그 감정들 곁에 조용히 기대어 앉아 호흡을 함께 나누어 보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거울 속 낯선 내 모습이나 불쑥 튀어나오는 힘든 마음을 억지로 밀어내지 말고, 그 불편한 마음들이 우리 안에 잠시 편히 머물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연습을 여러분과 함께 시작해 보려 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불편한 감정이 찾아오면 무의식적으로 방어하며 뒷걸음질부터 쳤습니다. 슬픔이 밀려올 때면 TV 소리를 키우거나 휴대폰을 보며 딴청을 피웠고, 화가 나도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에 억지로 참기만 했었고, 혹은 불현듯 불안이나 공허함이 찾아올 때면 그 감정에 압도될까 두려워 바쁜 일상 속으로 숨어버리기도 했었지요. 하지만 우리가 도망칠수록 감정은 더 끈질기게 뒤 따라왔고, 결국 그 마음들은 원인 모를 통증이나 깊은 피로감이 되어 우리를 더 지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사실 내 안의 어두운 감정을 마주하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입니다. 저 또한 마음이 흔들리면 서둘러 밖으로 나갔고, 가슴이 답답해지면 사람들을 만나 소란스럽게 떠들며 잊으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밖으로 돌수록 속마음은 더 차갑게 식어갔고, 외면했던 어둠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져 있었습니다. 이제는 도망치던 발걸음을 멈추고, 감정을 더 이상 예쁘게 포장하지 않은 채 그 무게를 온몸으로 느껴보려 합니다. 이것이 제가 말하는 ‘머물기’입니다.
슬픔이 찾아오면 그 차갑고 눅눅한 기운을 피하지 않고, 화가 날 때는 심장에서 전해지는 뜨거운 떨림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입니다. 물론 오랫동안 닫아 두었던 마음의 문을 열 때, 그 안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이러다 무너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외면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그 곁에 머무르는 시간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낯설었던 ‘나 자신’과 친해지는 유일한 통로가 되어줄 것입니다. 이 머무름의 과정을 통해 감정을 고쳐야 할 문제가 아닌, 안아줘야 할 존재로 바라보기 시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내 마음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감정과 함께 머물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판단을 멈추는 것’입니다. “이런 일로 슬퍼하는 건 유치해”라는 생각이 내 감정을 짓밟지 않게 하세요. 감정에는 옳고 그름이 없습니다. 마치 구름이 흐르고 비가 내리는 날씨를 비난하지 않듯, 우리 마음의 날씨도 일어나는 그대로 두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감정과 함께하는 머무는 시간은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나의 쉼터이자, 잃어버린 나를 다시 만나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피하고 싶었던 그 감정들은 우리를 해치려는 괴물이 아니라,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다 지쳐 잠든 어린 시절의 우리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우는 아이에게 이유를 묻기 전 그냥 꼭 안아주듯, 내 안의 감정이 서러움을 토해낼 때 외면하지 말고 그저 곁에서 등을 토닥여 주세요. 혼자라면 두렵겠지만 이제는 제가 곁에서 함께하고 있고, 무엇보다 여러분 안의 진실한 자아가 스스로를 지켜보고 있으니까요. 이제는 도망치거나 외면하지 않고, 일그러지고 얼어붙은 아픈 마음과 나란히 앉아 그 온기를 나누어 보는 겁니다. 그 고요한 머무름 속에서 비로소 당신의 진짜 삶이 다시 숨 쉬기 시작할 것입니다. 조금 아프더라도 솔직하게 내 마음의 방 한 칸을 내어주기로 마음먹었다면 우리는 그만큼 더 단단해질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