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화) 판단이 HR을 만든다.-6

기록에 대한 회신의 의미

"HR의 결정은 왜 기록으로 남겨야 할까?"

말로 한 판단은 조직에 남지 않는다.


Saas형 ERP를 도입하기 전, 나는 충분히 준비했다고 생각했다.


영업, 구매, 재무 등 부서별로 필요한 기능을 하나씩 확인했다. 불편한 점과 필수 요건도 정리했고,

그 내용을 회의록으로 남겨 공유까지 했다. 그렇게 여러 번 논의한 끝에 조건에 맞는 툴을 골라 도입했다.


그런데 오픈 직후부터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저희가 원한 건 이게 아닌데요."

"그 기능은 빠져 있는 것 같아요."

"우리 팀이 사용하기엔 불편하고 안 맞아요."


속으로 생각했다. 분명히 같이 확인했는데...

하지만 각 부서에서 그 내용을 확인했다는 회신을 제대로 받지 못했었던 것 같다.

"네 이 기능이면 됩니다."라는 한 줄도, "이 부분은 다시 검토해 주세요."라는 한 마디도 말이다.


기록은 있었다. 그런데 확인이 없었다. 그게 흠이 됐다.


기록했다고 끝난 게 아니다.

HR이 흔히 하는 착각이 있다.


공유했으면 전달된 것이고, 전달됐으면 합의된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조직에서 공유는 시작이지, 완료가 아니다. 회의록을 보냈다는 것과, 그 내용을 상대가 확인하고 동의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기록의 완성은 '작성'이 아니라 '확인'이다.


말은 순간이고, 기록은 구조다.

HR이 결정에 의해서 이렇게 이루어질 수 있다.

- 회의 중 구두 합의

- 회의록 작성 후 메일 공유

- "문제없으면 진행하겠습니다."


그때는 충분해 보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엇갈린다. 내가 기억하는 합의와, 상대가 기억하는 요청이 달라진다.

결과는 남고, 확인되지 않은 맥락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기록하지 않은 확인은, 동의가 아니다.


조직은 기억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사람은 자기에게 유리한 부분만 기억하고, 상황은 시간이 지나면 재해석된다.

ERP 도입 때도 그랬던 것 같다. 각 부서가 기억하는 '우리가 요청한 것'과 내가 기억하는 '합의한 내용'이 달랐다. 회의록은 있었지만, 그게 최종 확인된 내용인지 아닌지를 증명할 수가 없었다.


회신 없는 공유는 절반짜리 기록이다.


HR이 반복 설명에 지치는 이유

많은 1인 HR이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 "분명 공유했는데요."

- "회의록에 다 나와 있잖아요.":

- "그때 아무 말이 없었잖아요."


그런데 상대는 이렇게 답변이 나올 것이다.


- "그거 제대로 확인을 못 했어요."

- " 저는 동의한 적 없는데요."


말은 소리고, 소리는 공기 중에 사라진다. 공유된 기록도, 확인받지 못하면 같은 운명이다.

HR이 지치는 이유는 기록을 안 해서가 아니라, 기록을 완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록의 완성은 회신이다.

거창할 필요 없다. 이 세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1. 무엇을 결정했는가

2. 관계자와 확인했는가

3. 이견이 없음을 확인받았는가


작성하고, 공유하고, 확인받는 것. 이 세 단계가 쌓이면 그 조직의 HR 철학이 된다.

기록은 작성으로 시작해서, 확인으로 완성된다.


HR은 사람을 다루지만, 운영은 구조로 해야 한다.

공유만 한 판단은 그날의 메일함 어딘가에 묻힌다.

확인받은 판단만이 조직에 남는다.


다음 화에서는 이런 질문을 던져 보자.

기준은 조직을 지킨다. 하지만 때로는 기준이 기회를 막는다.

"이번만 예외로 하죠."

이 말이 나오는 순간 HR의 판단이 시험대에 오른다. 다음 화에서는 기준을 버리는 순간이 아니라, 기준을 다루는 방법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한 번 정한 기준을 언제 깨야 할까?"


원칙과 예외 사이에서의 판단법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