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간절하다, 새로운 언어에의 습득
중국어를 전공으로 했다. 20대와 결혼 직전까지 중국어 하나로 먹고살았다. 중국어 원어민에게 한국어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중국어 강사를 하고 중국-대만 무역회사를 다녔다. 중간중간 통역도 다니고 공역으로 역사 관련 책도 나왔다. 결혼하곤 중국어 원어민들에게 전화 한국어 수업도 했다. 언어를 전공해서 언어로 먹고살았으니, 전공에 대해 시쳇말로 '뽕을 뽑'은 것이다. 그러나 먹고살기 위해서만 중국어를 한 것은 아니다. 외국어 배우는 것은 늘 즐겁고 새롭고, 어쩌면 나를 확장하는 가장 의미 있는 행위 중 하나였다. 지금도 진행형인, 단지 멈춰있을 뿐인 나의 영역이다.
첫 외국어는, 대부분 그러하듯 '잉그리시', 영어이다. 시골에서 선행학습 따위 관심 없는 엄마 덕에, 14살 중학교 1학년 입학 후에 ABCD를 배웠다. 신세계였다. 다른 언어를 읽고 말하고 쓰는 것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이제 '하우아유 암 파인땡큐 앤드유'를 배운 아이를 낙심시킨 사건이 있은 후(따로 기록해둘 예정이다), 영어는 더 이상 내게 울림 있는 외국어가 되지 못했다. 그 후 내내 영어 트라우마는 내 삶을 좌지우지했고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나를 비웃었으며, 지금까지도 일정 부분 그 영향을 미친다.
고등학생이 되어 방과 후 수업을 선택하게 되었다. 나는 고2가 되면 문과 진학 예정이었고, 그러면 일본어가 제2외국어였기 때문에, 방과 후 수업으론 이과 제2외국어인 프랑스어를 신청했다. 프랑스어에 흥미를 느껴서는 아니고, 순전히 다른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에 대해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프랑스어는 쉽지 않았다. 단어마다 남성, 여성이 있었고 발음과 억양은 연습해도 늘지 않았으며(r 발음의 에흐? 에르?! 는 지금도 생각날 때마다 해보곤 한다, 물론 잘 안 된다) 동사는 주어와 시제에 따라 모두 변했는데, 달리 방도가 없이 외워야만 했다. 그래도 매일 한 시간씩 듣고 샹송 시간도 자주 있었기에 어느 순간부터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장밋빛 인생'이나 '낙엽'같은 유명한 샹송은 지금도 다 부를 수 있다, 살짝 끈적거리면서 멋들어진 불어의 느낌 충만하게.) 1년 반을 매일 들었지만, 지금 기억에 남는 건 1부터 20까지 숫자와 '방 하나를 예약하고 싶어요' 문장, 몇몇 단어뿐이다. 지금은 유럽의 많은 언어 중 불어는 들으면 '앗! 프랑스어다' 하는 정도의 귀만 갖고 있다.
고2가 되어 일본어를 시작했다. 일본어는 일취월장이었다. 배우고 싶은 언어였고, 그렇다 보니 너무나도 재미있었다. 한자 쓰기 빼면 어려울 게 없었다. 프랑스어를 배우다 일본어를 배우면 외국어 공부 같지가 않았다. 일주일에 두 번 밖에 일본어 시간이 없는 것이 서러울 정도였다.
'국민학교'(국민학교 졸업한 옛날 사람이다) 시절부터 아빠에게 '세뇌'되다시피 하여, 대학 전공은 생각할 것도 없이 중국어였다. 친정아빠는 어린 날 두고 '너의 시대에는 중국어를 영어만큼 공부해야 될 거다, 중국어를 공부해 두는 것이 필히 도움이 될 거다'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당연히 중국어를 해야 하는 줄 알았다. 입학해서 ㄱㄴㄷ 격인 '뽀포모포'를 했는데, 동기들은 죄다 제2외국어나 학원 학습으로 원어민처럼 발음해댔다. 기가 죽어서, 기가 죽고 싶지 않아서 죽도록 했다. 그 중국어로 먹고살고, 약간의 영향으로 남편도 만나고 지금도 중국어 관련된 '꿈'을 마음에 품고 있다.
25살부터 2년 정도, 인생의 아웃사이더를 자처한 적이 있는데 그 당시 고대 인도어(산스크리트어)를 잠깐 배운 적이 있다. 인도철학을 공부했었는데, 산스크리트어가 기본 언어 중 하나였다. 한 학기니까 4개월 정도. 중간고사까지 기본 자모를 배우고, 기말고사에 엄마, 아빠 같은 단어를 시험 본 기억이 난다. 나름 필요하다 해서 배웠는데, 지금까지도 그것은 '고행'으로 기억한다. 글씨 연습은 그림 그리기나 마찬가지였다. (아랍어도 처음 배울 때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에 겨우 글자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학기가 끝나고 더는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일말의 미련도 없이 그만두었다. 경험만으로 충분한,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외국어였다.
애셋 엄마로서 육아의 절정에 있느라 당장은 꿈을 못 꾸지만, 영어를 제대로 해 보고 싶고 중국어도 최소 유지만이라도 하고 싶다. 시간이 되는 대로 그리할 것이다. 육아에서 꽤 많이 자유로워지면, 독일어와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다. 철학적인 언어로 독일어만큼 매력적인 언어가 없는 것 같다. 스페인어는 주변에 하는 친구로 인해 흥미가 생긴다. 독일어는 읽기 위주, 스페인어는 회화 위주로 공부하고 싶다. 공부하고 싶은 게 많아 육아가 자꾸 뒷전이 되려고 하는, 주객전도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언어를 배우는 것은, 내 안의 세계와 사고를 확장시키는 일이다. 비록 제대로 외국어를 공부한 것은 중국어뿐이지만, 그 과정과 경험에서 내 안의 많은 부분이 열리게 되었다. 중국과 중화권 문화를 직접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되는데, 이는 '한국어'를 통해 중국과 중화권 문화를 인식하는 것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외국어로 사고하고 소통할 때, 뇌의 다른 부분이 작동함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다. '나'라는 작은 우주를 팽창시키는 여러 방법 중 나는, 글쓰기와 더불어 외국어를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