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식] 쿠마일의 정략결혼 상대가 에밀리였다면?

# 브런치 무비 패스 여섯 번째 이야기

by 정일원

러닝타임(running time) : 영화와 드라마의 상영 길이를 시간으로 나타낸 단위.

축구 : 11명의 ‘뜀박질’이 만드는 한 편의 영화 혹은 일련의 드라마. [편집자 주]


* 영화 [빅 식](2017)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을 속삭이는 에밀리와 쿠마일 / 사진: [빅 식] 스틸컷

“시카고 컵스가 잘하고 있어.”

“아 저는 야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요.”


에밀리(조 카잔 분)의 아버지 테리(레이 로마노 분)가 주인공 쿠마일(쿠마일 난지아니)과의 어색함을 날리고자 건넨 야구 이야기. 갑자기 분위기가 더 싸해진다. 파키스탄 출신의 쿠마일은 미국에 살지만 야구에 별 흥미가 없다. 대신 뭇 파키스탄 사람들처럼 야구의 조상 격인 크리켓을 즐긴다.


영화 [빅 식(The Big Sick)](2017)의 주인공 쿠마일은 1,400년간 이어지고 있는 파키스탄의 ‘정략결혼’ 문화에 반기를 든 로맨티시스트다. 스탠드업 코미디가 업(業)인 쿠마일은 우연히 자신의 공연을 보러 온 에밀리와 사랑에 빠진다. 쿠마일과 에밀리는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과 편견, 그리고 에밀리의 희귀병으로 말미암은 시련을 극복하고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

에밀리와 우연히 사랑에 빠지는 쿠마일 / 사진: [빅 식] 스틸컷

파키스탄의 정략결혼 문화를 거부하고 사랑을 쟁취한 쿠마일도 조국 파키스탄과 ‘정략결혼’한 크리켓만큼은 배척하지 않는다. 영국은 19세기 후반부터 인도 제국의 식민 통치를 위해 크리켓을 인도의 상류층에게 보급했다. 인도인이 크리켓의 규칙을 준수하고, 심판 판정에 복종함으로써 제국에 대한 충성심을 기르길 원했던 것이다. 인도의 상류층을 중심으로 전파된 크리켓은 힌두, 무슬림 등 종교집단의 호응을 얻으면서 인도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갔다.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되면서 크리켓은 양 국의 정치·종교적 갈등이 폭발하는 장이자 일종의 완충지대의 역할을 수행했다.

크리켓뿐만 아니라 영국은 폴로, 골프 등 다양한 스포츠를 인도에 소개했다. 물론 영국의 상징적인 스포츠인 축구도 예외는 아니었다. 크리켓보다 단순한 규칙에, 공 하나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축구인데 왜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크리켓보다 인기를 끌지 못했을까. 16세기 잉글랜드 남부에서 시작된 크리켓은 18세기에 이르러 영국의 ‘국기(國技)’가 됐다. 반면 축구는 1863년이 되어서야 귀족학교 출신의 엘리트들이 규칙을 통일하고 축구협회를 만들었다. 상류층은 하층민의 생활을 교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축구를 전파했고, 19세기 말 영국이 본격적으로 여가사회로 진입하자 중·하류층이 적극적으로 축구를 소비하면서 점점 영국에서 축구의 대중화가 이루어졌다. 상류층의 아마추어리즘과 하류층의 프로페셔널리즘이 갈등을 겪은 후 축구는 비로소 현대축구의 꼴을 갖추게 됐다. 인도 제국에 대한 식민 통치가 한창이었던 기임을 고려하면, ‘완제품’인 크리켓을 보급하는 것이 영국 입장에서 훨씬 수월했을 터다.

축구공을 만드는 파키스탄의 어린이들 / 사진: businessnmsuedu 갈무리

영국의 영향으로 빠르게 축구를 접한 인도는 20세기 중반 아시아축구를 선도했다. 1950년 월드컵에서 아시아 국가 최초로 본선행 티켓을 따낸 인도는 “맨발로 경기에 참가하겠다”고 주장하다가 참가 자격을 박탈당했다. 1951·1962년 아시안게임에서 각각 이란과 한국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건 인도축구는 이후 쇠락의 길을 걸으며 아시아축구의 변방으로 밀려났다. 파키스탄은 축구보다는 ‘축구공’이 유명하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축구공의 65%가 파키스탄의 시알코트 지역에서 탄생한다. 5각형 가죽 조각 12개와 6각형 가죽 조각 20개를 무려 1,620번의 바느질로 엮는 수작업을 통해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축구공을 만들어낸다. 문제는 축구공 생산 과정에서 아동의 노동력이 착취된다는 것. 어린이들이 어렵게 축구공 하나를 만들면 100~150원 정도의 수입밖에 얻지 못하는 불합리한 구조가 세상에 알려지자, 1997년부터 1998년까지 나이키는 막대한 매출 감소와 주가 폭락(37%)을 겪었다.

[빅 식]의 쿠마일처럼 ‘정략결혼’ 문화에 항거하기 위한 움직임은 인도에서도 있었다. 영국 식민 통치의 잔재인 크리켓을 몰아내고 전통 스포츠인 카바디(변형 투기종목으로 술래잡기와 피구, 격투기가 혼합된 형태의 경기)를 즐기자는 주장이 있었지만, 인도 정부는 영국으로부터 독립 후 혼란한 사회를 통합고자 오히려 크리켓을 적극 장려했다. 그 결과 인도는 물론 인도와 분리된 파키스탄도 크리켓과 점점 더 깊은 사랑에 빠졌다.

쿠마일과의 사랑을 재확인하는 에밀리 / 사진: [빅 식] 스틸컷

[빅 식]의 쿠마일은 에밀리와 다투면서 “나는 1,400년 묵은 문화와 싸우고 있다”고 소리친다. 만약 부모님이 소개해준 정략결혼의 상대가 다름 아닌 에밀리였다면, 쿠마일은 에밀리와 정략결혼을 했을까? 만약 영국이 크리켓 대신 축구만 소개했다면, 파키스탄 사람들은 축구를 지금의 크리켓만큼 사랑했을까? 정략결혼이든, 연애결혼이든 중한 것은 사랑을 함께할 ‘그 사람’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