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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한장 Sep 12. 2022

주간 씀 모음 12

어느 아침


아침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지하철에 늘 사람이 많았을 뿐이다. 그리고 하늘이 파랗게 물든 만큼 무더위도 다가왔을 뿐이다. 때로는 어린 까치들이 어미를 따라 종종거리며 돌아다녔고, 바람에 떨어진 나뭇잎이 날아와 몸을 때리기도 했다. 이따금 쏟아지는 소나기는 옷을 적시고 갔으며, 어린 학생들은 우산을 나눠 쓰고 지나갔다. 그저 그럴 뿐.

그래서 나는 아침마다 걷기로 했다.



재료


깊은 고독과 외로움은 최고의 재료다. 그 안에 침전했을 때 나는 비로소 숨을 쉴 수 있다.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나의 오감은 끝없이 확장되고 사고는 육신의 제약을 벗어나 우주를 거닌다. 이토록 자유로울 수 있을까? 홀로 세상을 맞이하는 개인에게 이 같은 해방은 그 어떤 신도 줄 수 없는 축복인 것을. 나는 이 고독함 속에 자리 잡고 창작의 나래와 광기의 함정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영원토록 인생을 향유하리라.

그러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단 한 명의 존재가 이 모든 것을 내게서 앗아갔다. 깊은 꿈의 정원에서 거닐던 존재를 추방하는 잔혹한 아침 햇살처럼, 그 한줄기 빛은 내 모든 어둠을 걷어내고 세상을 향해 던졌다. 광명이 나의 눈을 찌른다. 이토록 밝은 빛이 어느 세상에 존재했단 말인가?



느림


한적한 금요일 아침, 나는 느릿느릿 걷는다.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겠지. 그렇다고 쫓아갈 필요는 없다. 그저 느긋하게.



놀이


놀이는 아쉬운 마음에 울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친구들은 그에게 충분한 시간을 쏟았다. 어떻게 해야 함께 즐길 수 있는지, 잘 맞는 건 무엇이고 그렇지 않은 건 무엇인지, 낮에 할 때와 밤에 할 때 공기는 어떻게 다른지, 장소에 따라 필요한 것과 쓸모없는 것은 무엇인지, 느릿느릿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그 모든 것을 친구들과 이야기했다.

지금은 놀이의 곁에 아무도 없다. 간혹 찾아오는 친구도 짧고 효율적인 시간 안에 그를 소비하고 떠났다. 즐겁고 농밀했던 시간이 눈앞에서 아른거렸지만, 과거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틈새


“도와주세요!”

틈새에 발이 빠진 어느 동물이 소리쳤다.

“누구 없어요? 도와줘요!”

소리가 메아리치며 허공에 퍼졌다. 대지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광활했고,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넓었다.

그는 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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