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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한장 Sep 19. 2022

주간 씀 모음 13

8월, 구름


나란히


나란히 서자 손등에 살짝 맞닿았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만큼 거리는 가까웠다. 덜컥 겁이 났다. 가까워졌다는 것은, 이제 다시 멀어질 일만 남았다는 뜻 같았으니까.

손등 너머에선 나와 같은 당황스러운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평온하고 부드러웠다. 눈앞에 펼쳐진 새벽녘 바닷물처럼. 그래서 나도 조금 마음을 놓았다.



골목길


막 골목길을 빠져나간 뒷모습이 눈가에 아른거렸다.

그럴 리가 없다.

비록 우리가 자주 가을 한정 단밤 주스를 마시러 찾아오곤 했던, 익숙한 추억이 담긴 골목길이었지만 그렇다고 네가 다시 나타날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이런 계절에?

지금은 습하고, 끈적거리며, 불쾌하기 짝이 없는 7월의 장마철이다. 네가 좋아했던 서늘한 가을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그래도 이것이 일종의 변덕이라면, 나는 쫓아가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 낯익은 뒷모습을 따라 어디로 가게 될지도 모른 채 하염없이 길을 걷던 그 시절처럼.



하늘에는


가벼운 하늘에는 손톱처럼 빛나는 달이 걸려 있었다. 무더운 여름이었고, 낮은 저물 줄 몰랐다. 부서지는 파도에 씻겨나간 것처럼 달은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그 아래에서 밧줄 하나가 하늘거렸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나를 유혹했다. 나른한 태양 아래에서 쏟아지는 잠기운처럼 거부하기 힘든 몸짓이었다.



구름


저는 구름을 참 좋아해요. 어느 정도냐 하면 수업시간에 배운 높새구름, 양털구름, 뭉게구름, 새털구름, 안개구름 같은 구름의 이름을 모두 기억할 정도로요. 다른 건 아무리 봐도 외우질 못해서 기억력이 나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데, 신기하죠. 구름에 관한 건 눈에 쏙쏙 들어와서 통 나가질 않으니 말이에요.

그중에서 저는 뭉게구름을 제일 좋아해요. 여름철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유유히 떠다니는 뭉게구름을 본 적 있나요? 그 시원스러운 모습에 저는 더위도 잊고 한참 동안 올려다보곤 한답니다. 솜털처럼 부드러운 구름이 크기는 또 얼마나 큰지! 커다란 뭉게구름 안에는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가 통째로 들어갈 수도 있을 거예요.

그렇게 큰 구름 위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사실, 저는 그 위에 새하얀 마을이 있다고 상상하곤 해요. 아직 누구에게도 얘기한 적 없지만요. 그 하얀 마을에는 집도, 시냇물도, 사람도, 학교도 모두 솜털처럼 몽글몽글해서 하늘 위를 둥실 떠다녀요. 더 커다란 구름 위에는 하얀 성도 있고, 넓은 영화관이나 아파트 단지도 있을 거예요.

그 위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어떨까요! 아래에서 올려다본 구름이 저렇게 부드러워 보이는데, 위에서 내려다본 세상이 부드럽지 않을 리가 없어요. 모든 것이 새하얗고 몽글몽글한 세상을 저는 가끔 꿈도 꾼답니다.

언젠가 저 위에 올라가 보는 것이 제 꿈이에요. 대단한 사람들은 예쁜 달님 위에도 가고, 작은 화성 위에도 간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니까, 구름 위에 올라가는 걸로 만족하려고 해요. 그 정도는 저에게도 가능한 작은 꿈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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