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글 모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설한장 Sep 26. 2022

주간 씀 모음 14



실수였다. 메모지까지 써 붙이며 신경 써서 확인하던 사항을 왜 최종 점검 때 빠트리는 걸까. 아무래도 이 고비만 넘기면 끝난다는 일종의 고양감이 사람을 무디게 만드는 모양이었다. 같이 준비하던 팀원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고 하는 걸 보니 나에게만 일어난 현상은 아닌 듯했다. 이렇게 흘러갈 운명이었던 걸까. 허탈한 마음이 컸다.

그래, 오늘은 빵을 먹어야겠어. 오늘따라 낯설어 보이는 회사 건물을 나오며 왠지 모르게 그런 다짐을 했다.



십 분


십 분만 더.

아침마다 몽롱한 정신 속에서 되뇌던 말이다. 아늑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일은 끔찍했고, 달콤한 잠의 마수는 나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다. 그럴 때면 나는 어김없이 십 분만 더, 하며 베개 속에 얼굴을 파묻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십 분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날 기다리고 있을 네가 싫증내기엔 충분한 시간이었으니까.

이윽고 모든 것에 질려버린 네가 사라져 버릴까 봐 무서웠다.



괜히


그는 인터넷 창의 북마크를 열고 익숙한 주소를 눌렀다. 괜히 한 번 들어가 본 게 얼마 전이었을까. 이제는 완전한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화면에는 그의 사진이 있었다. 주름도 없고 눈에는 생기가 넘치는 그 얼굴은 지금 거울에 비치는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사진 위에는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그만 좀 웃어.’ 환하게 웃고 있는 그를 향한 말일까. 그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우울한 표정 그대로.



재회


지금 이 손을 놓으면 다시 재회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일말의 아쉬움을 그렇게 중얼거렸다. 어차피 놓을 거면서 그런 생각은 왜 하는지.

선택은 우리의 길을 바꾼다. 나의 길은 이미 달라졌다. 뒤돌아본다고 한들 다른 선택 앞에 있던 길의 모습이 아른거리기나 할까.



소꿉친구


누군가와 소꿉친구처럼 깊은 친밀감을 나누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설령 당신이 큰 용기, 약간의 사교성, 모나지 않은 섬세함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상대를 만나기 위해서는 크나큰 행운이 함께해야 한다.

“그러니까 말이야.”

너는 소리 내어 읽던 글에서 눈을 떼고 나를 바라보았다. 물방울 같은 눈동자가 반짝였다.

“나같이 좋은 사람이 먼저 놀러 가자고 할 때 순순히 따라오지 그래?”

매거진의 이전글 주간 씀 모음 1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